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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토크] 멀쩡한 회사가 갑자기 부도를?!

하륭 기자 ryung@sbs.co.kr

작성 2018.07.25 11:42 수정 2018.07.25 12: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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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약속 장소에 나왔는데 친구가 없다. 재촉하는 것 같아 10~20분을 기다리다 전화를 하니, 졸린 목소리로 내일 보면 안 되겠냐고 묻는다. 이 정도로 친구와의 관계가 무너지지는 않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면 상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약속은 작게 보면 주말을 망칠 수도 있지만,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이번 취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L사는 골프 전문 의류업체였다. 미국에서 상표권을 사들여온 후, 2009년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연간 200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던 회사는 2016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견실하다고 평가받던 기업이 왜 갑자기 부도에 직면하게 되었을까? 당시 회사 실무자는 A 사장이 개인적인 용도로 약 40억 원을 횡령하였다며 그 증거자료를 보여줬다. A 사장은 회사 돈으로 홍콩에 있는 딸에게 돈을 보내거나 가족 보험료, 자녀 청약금, 대출이자 등으로 부인과 함께 사용하였다. 2015년엔 L사 회장 이 모 씨가 실무 경험이 전혀 없던 부인을 회사 임원에 앉혔다고 협력업체 관계자는 주장했다. 또한, 이 회장의 아내가 소유한 송파구의 건물로 본사를 이전하여 이득을 취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자질이 없죠. 심하게 말하면 그런 사람들을 쓰레기라고 봐요. 자기 한 사람을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피해를 보잖아요. 그 사람으로 인해서 회사도 망하고, 가정도 엉망이 되고… 그런 사람들은 이 업계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L사에 납품 거래를 하던 협력업체 오은균 대표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냈다. 당시 L사와 거래를 하고 있던 80여 개 업체가 받지 못한 돈이 180억 정도였고, 18개 업체는 문을 닫아야 했다. 오 대표의 회사는 6억 원 정도를 못 받아 정상적인 금융거래가 막혔고, 아직도 빚에 허덕이고 있다.

"완전 사기꾼이지. 그 당시 만났으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악에 받쳐 있었지. 연락도 안 되고, 전화번호도 바꾸고. 도의적으로 회사가 어려우니 같이 협력해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으면 됐을걸. 말 한마디 없이……"

다른 협력업체 대표 역시 L사로부터 돈을 받지 못했다. 기존 L사의 대표이사들은 연락 두절되었고, 화의신청을 통해 40% 정도 변제를 받았다. 2016년 이후부터 나머지 금액에 대한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갚아나가고 있으며, 회사는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 직원도 한 20명 있다가 지금은 8명 있어요. 그 나머지는 다 정리됐고, 또 다른 공장도 60명 가까이 됐는데 지금은 반으로 다 줄였고……"

피해자 C 씨는 업체 간의 불합리한 거래에 대해서 성토했다. "협력업체에서 납품하면 보통 4, 5개월짜리 어음을 주니깐. 그것도 또 5개월 이상 연기되고. 이러다 한 시즌 장사 안 되어버리면 그대로 무너지잖아요. 이런 구조는 구매업체가 돈도 없이 경영을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겁니다." 어음에 대한 부당성은 이런 사태를 바라보는 전문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주선 변호사는 "어음 제도를 폐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금 결제 구조를 혁신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 제도 때문에 피해가 더 커집니다. 그리고 법정 관리, 회생 절차에 들어가는 대표 이사들의 범죄 행위는 적극적으로 고소해서 처벌받게 하고, 청구권이 발생하면 됩니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약속어음 제도 폐지를 준비하고 있다. 약속어음제도 폐지 방안이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중심으로 '약속어음 단계적 폐지 기반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고 2020년 약속어음제도 폐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약속어음 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는 위의 협력업체 피해 사례와 유사하다. 기업 간 갑을 거래 관계에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약속어음 폐지로 인하여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자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구매업체의 부도에 따른 연쇄도산 확률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사소한 약속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기업 간 거래에서의 약속은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그 약속의 틀을 다시 공정하게 확립하는 건 정부의 역할이다.

(영상취재 : 하 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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