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청년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국적은 미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꼭 필요한 존재고,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영국을 방문한 것이 좋은 일이고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다음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현장에서 갑자기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청년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곳에 나왔나, 왜 트럼프를 지지하나,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등등. 그 청년은 그 질문 하나하나에 답을 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가끔 욕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물리적 폭력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자제시키고 (한 중년 여성이 그 역할을 자처하시더군요) 또다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 모든 목소리가 존중받은 'STOP TRUMP' 집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런던 시내 중심에서 벌어진 'STOP TRUMP' 집회와 행진에 참가한 인원은 25만여 명에 달합니다. 영국인들은 지난해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영국 여왕의 초청을 받고도 영국 내 여론 악화로 방문을 미루다 이제서야 오게 됐는데, 이번 방문에선 시위대를 피하기 위해 런던 일정은 잡지 않았다는 현지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영국인들이 이렇게까지 트럼프 대통령을 반대하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영국은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으로 불려왔습니다. (방문 전까진) 두 국가의 관계가 악화될만한 큰 현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영국 방문과 동시에 진행한 영국 일간지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메이 영국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유럽연합과 공동시장을 유지하는 방안)'를 비판하며 유럽연합과의 관계를 철저히 단절하라'고 공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집회에 나온 참가자들의 '비판'은 다양했습니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은 기본적인 '인간애'에 반하는 '파시즘 정책'이라는 비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 것은 독재라는 비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치부한다는 반 페미니즘적인 트럼프의 태도에 대한 비판 등 수많은 목소리가 런던 시내 가득 울려 퍼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직설적이고 또는 원색적인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직접 준비해 나온 손팻말과 현수막엔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의미 있는 메시지가 많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60대 이상쯤 돼 보이는 어르신들이 펼쳐 든 현수막이었습니다. '세상을 향한 우리의 메시지: 벽이 아닌 다리를 만듭시다.' 이 메시지는 직접적으론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론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회 현장에서 런던 시민들이 보여준 '나와 다른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도 결국 벽이 아닌 다리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일테니까요.
"Where there's room for many voices, there's space for hope."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