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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42 : 고기의 환상을 넘어…'고기로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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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닭을 죽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릴 때만큼의 감정도 소모하지 않고 닭의 목을 비틀었다. 잠깐, 정말 찰나의 100분의 1 정도의 순간 동안 미안함, 불편함, 찝찝함 같은 것들이 느껴질 것 같았지만 금세 짜증과 피로에 묻혔다. 이런 식면 사람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르포입니다. 닭과 돼지와 개…. 식용 동물을 키우는 동물농장 9곳에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담은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가 오늘의 책입니다.

처음에 읽은 건, 닭고기를 위한 닭, 육계 농장에서의 체험을 서술한 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닭을 키우는 농장인데 왜 닭을 죽이는 장면으로 끝냈냐면…. 상품 기준에 못 미치는 닭은 계속 솎아내고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남은 닭들은 이른바 '도태', 혹은 '비활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이면을 담은 책입니다.다 알고 있는 얘기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축사 안에서 본 것들 가운데 모르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닭장이 있었고 닭이 있었고 똥이 있었고 알이 있었다. 하지만 축사 속에 내가 예상한 대로의 모습을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에서 제공하는 건 통계가 아니라 '클로즈업',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지독한 클로즈업입니다.

"걸러낸 병아리들은 이런저런 불합격자들과 함께 쓰레기장으로 옮겨졌다…. 오래 놔두면 깔린 병아리들은 압착기로 모양을 낸 것처럼 커다란 덩어리로 뭉쳐졌다. 병아리들이 한 마리 한 마리의 경계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겨 붙어 있었는데 얼마나 세게 눌렸던지 바구니의 촘촘한 격자무늬마저 살덩어리에 그대로 찍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병아리가 있어서 살덩어리 속 어딘가에서 약하게 삐약대는 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나는 돼지를 사랑하는 일이 치즈버거나 탕수육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 종일 먹고 싸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들어놨으니 돼지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고장 난 아이스크림 기계마냥 쉴 새 없이 똥을 싸 대는 엉덩이를 보고 있으면, 특히나 날이 저물어갈 때는 울컥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개 농장에선 모든 개들에게 어미젖을 떼고 난 다음부터 짬밥만 먹인다…. 아침에 개밥을 주다 보면 내 자신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짬밥을 놔두면 건더기는 가라앉고 주황색 액체는 굳기 시작하면서 회색으로 변한다. 그건 누구 말마따나 몸에 이로운 곰팡이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 먹어보고 한 말은 아니니 알 수 없는 것이다.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 밥을 부어줬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도 새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둘의 차이는 그것을 그릇에다 부은 게 어제인지 오늘인지 뿐이었다."

"한 가지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나는 여기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 출판사 시대의창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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