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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B 재판 ⑤ - '일국의 대통령'으로 재판받는 MB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8.06.11 15:07 수정 2018.09.10 17:3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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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MB 재판 ⑤ - 일국의 대통령으로 재판받는 MB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금씩 잊히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전직 대통령 구속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5월 3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됐지만, 검찰 조사를 거치며 웬만한 것들이 다 나와 별로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 논리가 팽팽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진실에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20여 년 이상 제기된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의 진실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재판 실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정 왼쪽 문이 열리면서 구속된 피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나왔다. 변호인들이 모두 기립해 예를 갖추며 이 전 대통령을 피고인석으로 모셨다. 변호사들의 태도는 자신의 의뢰인을 대한다기보다 대통령을 대하는 듯 깍듯했다. 실제로 변호인단의 좌장격인 강훈 변호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이 전 대통령을 모셨고, 최병국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여당 의원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 또한 피고인 신분보다 '일국의 대통령'을 자신의 첫 번째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듯 보였다. 건강이 좋지 않다고 변호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그는 구속돼 위축된 상태로 재판을 받는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당당했다. 이 전 대통령은 첫 재판에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억울하지만 재판에 나온 이유를 설명했다.

이명박 : "(주변에서) 진술을 거부하고 재판도 거부하자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 지낸 사람으로서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초 건강을 이유로 '선별적 재판'을 받겠다고 주장했다. 신청된 증인이 없어 주로 증거 조사로 진행되는 자신의 재판에 굳이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불구속 피고인이 아니라 감옥에 수감된 구속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재판을 보이콧하며 궐석재판을 이어간 것 정도다.

재판장은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을 특별히 대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피고인이 선별적으로 재판에 출석하는 방식은 법에 나와 있지 않다고 일갈했다. 재판 출석은 피고인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판이 연기된 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 나와 피고인석에 앉았다.

(2018년 6월7일, 3회 공판)
이명박 : 재판장님, 저는 가능하면 재판에 응하려고 하는 쪽으로 해왔습니다. 그런데 한번 재판하면 3일간 제가 거의 밥을 못 먹습니다. 사람이 살고 봐야 되니까. 저도 봐가면서 제가 자진해서 나가겠다 이야기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변호인 대신 본인이 직접 발언 나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재판에 나오기가 힘들다는 이 전 대통령은 종종 기침을 하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자신이 납득이 되지 않을 때면 답답한 듯, 변호인이 아닌 본인이 직접 발언을 이어갔다.

이명박 : 다스 전직 경리과장, 경리차장, 운전 기사 등 여러 직원들이 이야기하는데, 이상은 회장은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러니까 원 주인이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 위치에서 자세한 걸 알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람을 잘못 파악한 거에요. 무서운 사람이에요 이상은 회장이. 자기 소유에 대해 내 회사인데 내거다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 없죠.

이 전 대통령은 다스가 형 이상은 회장의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이어서 주장했고, 도곡동 땅 대금을 사저 비용으로 쓴 것에 대해서도 직접 설명했다.

이명박 : 퇴임하기 전에 농협이 주거래은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농협에다가 내가 집을 퇴임하고 나면 경호실도 들어와야 되고 이런 사정 때문에 집을 새로 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맏형이 '대통령 나온 사람이 은행에 돈을 빌려. 마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된 겁니다. 그래서 내가 고맙다고 하며 그래도 이건 차용서를 써야 한다고 했고, 형이 "그래 차용서 써라. 어떻게 하든지 내가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겁니다.

이 전 대통령이 비슷한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자 재판장은 제지를 하기도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재판장 : 그 말씀은 하셨으니 넘어가시는 게.
이명박 : 자본금을 보냈다는 겁니다. 김재정 이름으로 돼 있다고 검찰 조서에도 나와 있기에. 그럼 내가 아닌 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은행에서 찾아주면 좋고 안 그러면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찾을 의무는 검찰이 져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꼭 찾아야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얘기를 많이 해서 미안합니다. 더 이야기할 힘도 없습니다.


● 주변 돌아보고 말 붙이는 여유 보이기도

재판에 나와서도 별다른 말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현재는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은둔을 이어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몸이 아픈 와중에도 재판장과 주변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려 했다. 틈이 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여유도 보였다. 재판 중에도 방청을 와 있는 측근이나 가족들은 보며 눈짓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휴정 중에는 앞줄에 앉은 측근들에게 "괜찮다"며 말하고, 악수를 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이 끝나고 방청석에 앉아 있는 지지자에게 "연세도 많으신데 건강하세요"라며 악수를 하고 법정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