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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41 : 이 시스템에 사는 방법…'당선, 합격, 계급'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8.06.10 07:3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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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떤 시스템의 일부다. 입시(入試)가 있는 시스템. 세계는 둘로 나뉘어 있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려면(入) 시험(試)을 쳐야 한다. 시험 한쪽은 지망생들의 세계, 다른 한쪽은 합격자의 세계인 것이다…. 이 시스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런 시스템이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시험, 그리고 당선과 합격, 그것은 곧 합격자, 당선자 계급으로의 진입. 민주 공화국에 살면서 무슨 계급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사회도 계급 사회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징후가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입시가 있는 시스템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살아야 할까요.
   
오늘 읽는 책은 장강명 작가의 논픽션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입니다.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천동설을 믿었다. 그는 점성술도 믿었다. 그래도 그는 작은 섬에 틀어박혀 오랜 기간 아주 정밀하게 달과 별, 행성과 혜성의 위치를 관찰했다. 브라헤는 파티에 갔다가 소변을 너무 오래 참는 바람에 방광이 터져 죽었다. 브라헤의 기록을 물려받은 케플러는 그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케플러의 법칙'을 세웠고, 천문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천동설은 영영 사라졌다. 그러니 브라헤가 한 작업들은 모두 값진 일이었다. 설사 브라헤가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못했더라도."

"문학 권력, 문단 권력이라는 '긴 이야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변호사나 아나운서,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방식은 어떠한지를 살피고 싶었다. 노동시장에서 채용 전문가들이 공채 제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걸 문학공모전과 비교하고 싶었다. 논증할 수 없는 막연한 이야기보다는 수치, 통계, 실명으로 말하는 증언을 찾고 싶었다."

"공채는 고도성장기 한국 기업에 딱 맞는 인재 선발 방식이었다. 일할 사람은 많이 필요했고, 어차피 그들에게 대단히 전문적인 업무를 맡기지는 않을 터였다. 구직자들은 먼저 그룹 단위로 실시하는 공채 시험에 합격하고, 나중에 자신이 어느 계열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통보받았다. ... 그 시험을 합격한 연도에 따라 '기수'가 생겼다. 몇 년도 입사 기수라든가 사시 몇 회라든가 하는 질서가 생기고, 그게 업계 내부의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큰 축이 된다."


"한국에서 신춘문예는 시행하자마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제도가 그렇게 쉽고 빠르게, 확고하게 이 땅에 자리 잡은 이유는 뭘까? 나는 그것이 과거제도의 전통 때문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제도는 대규모 공개 시험을 거쳐 엘리트를 채용하는 공채 시스템의 원형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은 민주주의보다 900년 이상 먼저 이 땅에 왔다....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서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간판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다가 마침내 인간의 가치를 상징하는 데까지 이르고야 만다. 그때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존재 증명을 위한 투쟁이 된다.... 한국 소설 시장과 노동시장에서 간판이 그토록 중요한 근본 원인은 그곳이 '깜깜이 시장'이기 때문이다.... 깜깜이 시장에 불을 밝혀서 간판의 위력을 떨어뜨리면 되지 않을까?"
 
*출판사 민음사와 장강명 작가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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