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에도 낙관론자들은 '8년 주기설'에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장기간 합숙 훈련으로 조직력을 다지며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은 2002년과 비교는 어렵더라도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한 2010년의 과정에선 참고할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 사상 최강?…2010 대표팀
깜짝 발탁한 이승렬과 기대주 이청용의 연속골에 힘입어 에콰도르(2대0)를 꺾은 대표팀은 일본으로 건너가 두 번째 평가전을 준비합니다.
일본 언론이 먼저 들썩입니다. 경기 직전까지 상대국을 띄우는 게 일본 언론의 관행이긴 하지만 우리 대표팀을 향해 상당히 후한 평가를 내립니다.
'사상 최강'
한국은 적진에서 통쾌한 한일전 승리로 입증합니다. 선제골을 넣은 박지성의 '사이타마 산책 세리머니'는 축구팬들 뇌리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반면 지금 우리는 32개국 중 최약체라 자평합니다. 면면을 보면 조금 박한 평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최고리그 프리미어리그에서 정상급 공격수로 꼽히는 손흥민, 오스트리아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 빅리그 구단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황희찬이 이룬 투톱의 파괴력은 어느 때보다도 위력적입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 출신 스포츠 저널리스트 파일로 홀랜드는 "월드컵 출전국의 전력을 분석할 때 유럽 리그에서 10골 이상 넣는 공격수 숫자를 헤아려 승부를 예측하곤 한다"면서 "영국에서 한 시즌에 20골 가까이 넣는 손흥민 정도의 공격수를 갖춘 팀은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프랑스리그에서 이번 시즌 11골을 넣은 권창훈의 부상 낙마가 아쉽지만, 전방만 놓고 보면 '양박' 박지성과 박주영,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이 이끈 8년 전 대표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 문제는 수비
물론 공격과 수비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는 현대 축구에서 공격과 수비를 분리해 전력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수비가 흔들리면 화려한 공격진도 위력을 낼 수 없습니다.
지금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이유는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경기력 때문일 겁니다. 수비는 아시아 팀을 상대로도 허둥지둥했고, 공격진은 상대 밀집 수비에 막혔으니까요. 최종예선 10경기에서 득점은 11골에 불과했고, 실점은 그에 딱 하나 모자란 10골이었습니다.
따져보면 8년 전에도 예선 당시 위기가 있었고, 그때도 문제는 수비였습니다. 3차 예선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고, 최종예선 초반 북한과 경기에서도 막내 기성용의 데뷔골 덕분에 간신히 비겼을 정도로 위태로웠습니다. 월드컵 직전에는 주전으로 낙점했던 곽태휘 선수가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서 부상으로 낙마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신태용 감독이 체력과 자신감 회복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배경입니다. 신 감독은 "월드컵에선 모든 선수가 자신의 능력 120%를 발휘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1대1 능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이상 스리백, 포백 등 수비 전술보다 더 중요한 게 조직력이고, 끈끈한 조직력은 상대보다 한 발 더 뛰겠다는 집념과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2주…기적을 꿈꾸기엔 충분한 시간
야속한 건 시간일 겁니다. 보스니아전이 끝난 뒤 스웨덴과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 남짓입니다. 수비 조직력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름은 어떤 기적도 꿈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공교롭게도 8년 전 우리에게 큰 상처를 입었던 일본이 보여줬습니다. 안방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라이벌 한국에 완패를 당한 뒤 오카다 감독에게 날아든 첫 번째 질문은 "사퇴할 생각은 없는가"였습니다. 감독은 고개 숙여 사죄하며 "월드컵 본선에선 여름날 파리처럼 상대를 성가시게 하는 집요한 수비를 보여주겠다"며 믿음을 호소했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현장에서 소리 내 비웃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딱 그만큼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 깜짝 발탁한 선수들의 평가전 활약, ▶ 월드컵 성공을 경험한 고참과 당돌한 신예의 신구조화 ▶믿음직한 주장의 리더십 ▶ 유럽 무대에서 검증된 공격진 구성 등 8년 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품게 하는 요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