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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회 공전 한 달 새 180도 바뀐 예산정책처 분석보고서…왜?

[취재파일] 국회 공전 한 달 새 180도 바뀐 예산정책처 분석보고서…왜?
정부는 지난 4월 6일 ‘청년 일자리와 지역 대책’을 위한 3조 9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을 국회에 제출했다. 애초 여야는 4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방송법으로 파행으로 치달았고,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태, 드루킹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며 4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은 단 1원도 논의되지 못했다. 결국 지난 14일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추경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오늘 밤 본회의에서 처리를 앞두고 있다.

추경 심사는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이지만, 이 심사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 있다. 바로 국회예산정책처이다. 정부에서 예산안이 넘어오면 내용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해 의원들이 심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기관이다. 예산정책처의 예산분석보고서는 국회의원들이 예산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적극 참고하기 때문에 정파를 초월한 객관성이 핵심이다. 분석보고서는 특히, 국회 각 상임위원회의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이하 예결위)의 검토보고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어느 자료보다 전문성과 중립성이 중요하다.

예산정책처는 보통 정부에서 예산안을 제출하면, 바로 분석 작업에 착수한다. 지난달의 경우 6일 정부 예산안이 제출됐고, 13일 추경 심사를 위한 첫 예결위 회의가 잡혀 있었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됐다면, 분석 기간은 딱 일주일이었던 셈이다. 예정처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분석관들이 총동원돼 분석 보고서 작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흘 뒤, 예정처는 보고서 발간심의위원회를 열어 보고서 발간을 확정했다. 실제로 인쇄소에 가제본을 맡기었다. 하지만, 국회 공전으로 추경 심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보고서 발간은 미뤄졌고, 실제 최종본은 여야가 국회 정상화 합의를 한 직후인 지난 14일 저녁 정식 인쇄돼 배포되었다.

보고서 발간이 ‘스톱’되어 있던 시점인 지난달 중순, 예정처 내부에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제보를 접했다. 보고서 작성이 완료되고, 발간심의위도 통과했는데, 갑자기 보고서 내용을 모두 ‘수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SBS와 접촉한 내부 제보자의 말에 따르면, “10일 심의위원회에서 완성본이 완료된 뒤 목~금요일쯤 국회의장 보고를 거치면서 전반적으로 수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내용의 수정이었는지 물었더니 “분석 내용이 너무 좀 세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좀 톤 다운을 하던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검토를 하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분석관들이 그 주 주말 내내 나와서 ‘수정’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국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면, 그 다음주 월요일, 즉 13일이 추경 심사 첫 날이었기 때문에 작업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진짜 수정이 필요한지 확인을 하려면, 발간심의위에서 통과해 당시 의장에게 보고됐다는 완성본과 최근 발간된 최종본의 내용이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야만 했다. 사실 지난달 나왔다는 완성본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보를 받은 4월 중순부터 관련 있을 만한 곳과 사람들과 접촉한 끝에 가제본을 입수하게 되었고, 내용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았다.

제보자의 말대로 실제로 달라진 곳은 모두 41곳에 달했다. 추가된 내용이 6곳, 삭제 5곳, 수정 30곳이었다. 
취재파일 01
내용을 살펴보았다. 우선 청년 일자리 관련 부분이다. 가제본에서는 “상당수가 한시적 재정사업으로 편성되어 있어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그런데 최종본에서는 이 문구가 빠져 있다. 대신 “상당수가 한시적 재정사업이므로 청년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중장기적 대책과 함께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바뀌어 있다. 
취재파일 02
구조조정 인력과 지역 관련 부분이다. 가제본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자동차산업 퇴직인력 전환교육 및 재취업지원 사업의 경우 아직까지 자동차산업 퇴직인력을 채용할 기업의 수요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최종본에서는 이 문장은 아예 삭제되었다. 그 자리에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산업 퇴직인력을 채용하는 중소·중견기업에 인건비를 지원할 계획이다”라는 문장이 대체되어 있다.  
취재파일 03
이른바 주경야독 장학금 부분이다. 가제본은 이 장학금에 대해 “동 사업은 기존 산업체 재직자를 지원하므로 연도내 고용창출이라는 추경편성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지원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등 사업계획이 미비하므로…”라 했다. 하지만 최종본에서는 “단기적인 추가 고용 창출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도 “선취업 후진학을 통한 고용창출 확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장기적인 사업 효과성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또, 가제본에서 지적했던 지원대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등 선취업 유도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철저한 사업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수정하였다.
취재파일 04
이 밖에도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을 설명하면서 가제본에서는 “청년의 경우 여전히 중소기업 취업을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한시적 사업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지원기간 종료 후 인건비 부담 증가를 고려했을 때 사업장에서 신규 고용을 적극적으로 창출하기 어려울 여지가 있다”고 하고 있다. 최종본에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청년층의 중소기업 취업 선호하지 않을 가능성’은 쏙 빠졌고, “한시적 사업으로서 지원기간 종료후 기업의 부담 증가 등을 고려했을 때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로 분석내용이 바뀌었다. 
취재파일 05
청년내일채움 공제 설명 부분이다. 가제본에서는 지난해 실적을 평가하면서 “2017년 예산도 편성분 1,970억원 중 54.7%인 1,077억원을 집행하여 실적이 부진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최종본에서는 똑같은 내용에 “51,970억원 중 1,077억원을 집행하여 54.7% 수준의 집행률을 보였다”고 ‘부진’이란 부분을 빼버렸다.
취재파일 06
대부분이 추경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꾸거나, 상당히 ‘톤 다운’하고 있다. 긍정적이었거나 중립적이었던 것이 부정적으로 바뀐 경우는 한 곳도 없었다. 전체적인 내용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의장보고 후 ‘지시’가 있어서 ‘수정’이 이루어진 것일까? 국회의장실 측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하였다. “지난달 6일 정부 추경안 제출때 예정처로부터 개괄적인 내용만 보고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13일 의장과 국회 내 기관장들 티타임에서 10분 정도 분석보고서 내용을 보고받았지만, 그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실제 추경심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새롭게 바뀌는 내용들을 “업데이트하라”는 정도의 “말씀”만 있었다고 했다.
취재파일 07
예정처도 정색하며 부인하였다. 보고서 발간 책임을 맡고 있는 조용복 예정처 예산분석실장은 “보고서는 최종 인쇄 직전까지 수정을 거듭한다”며 “보고서 문장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간결하게 쓰려고 하고 있다”고 해명하였다. 객관성과 중립성의 책임을 띤 예정처 분석관들이 그렇다면 왜 처음에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문장을 써서 ‘객관적’으로 고치는 과정을 거친 것이냐고 물었다. 조 실장은 “분석관도 신입부터 과장급까지 능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른바 ‘데스킹’이 필요하다”고 설명햇다. 그러면서 수정된 부분은 “한 달 사이 바뀐 경제지표와 정부 사업들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 가제본과 최종본을 비교해 봤을 때 새로 추가된 부분은 6곳, 새로운 수치로 바뀐 곳은 전체 수정 30곳 중 7곳뿐이었다. 

예정처 내부에서는 의장실과 예정처의 이런 해명에 대해 여전히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주말까지 반납하고 급하게 ‘방향성’ 자체를 수정하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그 시점이 의장 보고 직후였기 때문에 더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정처의 성격조차 흔들리고 있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기 소신을 가지고 분석을 했는데, 계속 톤 다운되고 아예 검토내용에서 삭제되면 자기 업무에 대한 열의가 있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분석 보고서 자체가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도 꺼내놓았다. 이렇게 대규모로 ‘수정’된 보고서는 “검토 보고서가 아니고, 추경에 대한 홍보 자료 또는 정부 내부 자료나 마찬가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도 직후,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최 의원은 우선 보고서 수정 과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지난달 추경분석보고서 수백부를 인쇄했다가 폐기하고 최근 최종본을 재발간했다”, “추경분석보고서 발간 과정에서 인쇄소와 정상적인 계약체결이 없었다”는 추가의혹까지 제기하며, 국회에 이런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예산정책처는 국회의 재정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으로 전문적인 연구·분석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예산정책처법 제2조에서는 “예산정책처는 국회의장 소속이지만, 직무상 독립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정처 내부에서는 “윗선 지시로 수정이 이뤄졌다”하는데, 정작 ‘윗선’으로 지목된 곳에서는 ‘강력 부인’하는 상황, 국회의 책임있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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