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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37 :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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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콩나물에 좋은 양념들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먹을거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쳤다. 작은 그릇에 예쁘게 담고 깨소금을 좀 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참기름이나 들기름, 들깻가루를 더 치거나 덜 치면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콩나물 무친 것을 덜어서 삶아낸 물에 다시 넣고 끓이면 콩나물국이 된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요리를 합니다. 매일매일, 3년 6개월 동안. 이날은 어떤 음식을 만들었는지 레시피를 적습니다. 요리책인 듯 아닌 듯, 레시피인 듯 아닌 듯한 책, 강창래 작가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입니다. 맨 처음 읽은 대목은 '무치는 마음을 닮는 나물'…. 콩나물과 시금치나물 무치고 콩나물국 끓인 내용이 담긴 글입니다.
이 남편은 왜 요리를 하게 됐을까요. 그걸 맛있게 먹는 아내, 그저 남편 아내의 익숙하면서 낡은 역할이 바뀐 것뿐인 건 아니었습니다.

"화를 내면 음식도 화를 낸다. 짜증 난상태에서 만든 음식은 짜다. 오늘 아침에 부엌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나 보다. 몰입해서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물을 무쳤다."

"늘 고맙다. 때가 되면 꼭 선물을 마련해 보내온다. 잊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번 설에는 굴비였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비 하라는 마음일까. '굴비'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응원해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아내는 대패삼겹살을 겨우 두 점 먹었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고소한 맛을 음미하면서. 나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돼지고기를 저렇게 맛나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다. 다시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에 가슴이 저미게 아팠던 게 겨우 이 주쯤 전이다."

"평생 글을 써왔지만 내 삶의 한 부분을 이렇게 영원히 살려두고 싶었던 적이 없다. 사십 년 동안 함께한 사람과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내를 간호하면서 힘든 하루하루를 누구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낯선 부엌일을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적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암 투병이라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헤쳐가면서 드물게 찾아오는 짧은 기쁨을 길게 늘이고 싶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내는 암 투병 중입니다. 남편은 곁에서 돌봅니다. 무어라도 더 몸에 좋고 건강에 좋은 걸 먹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떡라면 말고는 해본 게 없던 남편이 본격 요리에 나서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순간순간 요리의 기쁨, 삶의 환희를 느끼고 이를 글로 적어두고 싶었다고 합니다.

여백이 많은 책입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예상했던 그러나 아니었으면 하는 그 대목이 온전히 기록돼 있지는 않습니다. 독자가 채워가면 됩니다.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하루에 한두 편씩 천천히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이러라고 그런 거였어'라는 마지막 장 제목이 가슴에 특히 남습니다.

(* 출판사 루페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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