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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말진 기자의 '대선 1주년' 복기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8.05.09 19:03 수정 2018.05.10 13:5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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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말진 기자의 대선 1주년 복기
● 5월 대선, 벌써 1년
 
오늘(9일)은 19대 대통령 선거가 있은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도 내일이면 1년째다. 당시 대선 취재팀의 막내, 이른바 '말진 기자'로 대선을 취재했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 당시 후보를 나름 열심히 따라다녔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벌써 1년'이다.
 
여러 현장과 사건을 경험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라지만 대선은 과연 '사이즈가 다른' 판이었다. 이른바 잠룡들이 후보가 되고 경쟁 끝에 국가 권력이 교체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 과정을 때로는 신나게 기록했고 때로는 무기력하게 끌려갔다. 단순히 개인적인 감상을 넘어, 기자로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참 많았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야당 말진'에서 '여당 말진'이 되는 건 신분 상승보다 추락에 가까웠다. 그럴 여유도 없었거니와, 솔직히 깜냥도 안 됐다. 두고두고 아쉬웠다.

1년이 지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그 때문이다. 타이밍을 한번 놓쳤지만 '1주년'이면 또 묘하게 얘기가 된다. 대선이 끝나고 수많은 분석과 백서, 특집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여기서는 철저히 취재기자의 관점에서 본 지난 대선의 특징과 그로 인한 고민, 소회들을 풀어봤다. 지금은 다른 부서에 몸담고 있으니 '전(前) 말진 기자의 대선 복기' 쯤 되겠다.

● "SNS가 다 했다"

지난 대선을 돌아봤을 때 가장 인상 깊은 변화는 단연 'SNS의 역할'이다. 과거 다른 대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SNS의 역할이 커졌다. 각 후보들은 SNS로 유세 현장을 생중계했고 캠프별로 카톡방을 만들어 일정과 워딩을 출입 기자들에게 알렸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장에 가지 않아도, 전화를 돌리지 않아도 기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온 셈이다.

특히 대선 막판 일부 캠프에서 선보인 '페이스북 유세 라이브'는 압권이었다. 유권자는 TV를 보지 않더라도 사무실이나 카페에 앉아 지지하는 후보의 유세를 볼 수 있게 됐고 나아가 현장의 열기까지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오로지 방송이 독점했던 영역이다.
대선후보 5인급기야 기자들마저 현장보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캠프에서 힘을 주는 주요 유세 일정의 경우 주로 저녁 시간대 잡힌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기자 입장에서는 혼잡하고 인터넷도 잘 안 터지는 유세 현장보다는 기자실에 차분히 앉아 이어폰을 귀에 꽂고 후보의 워딩을 받아치는 게 훨씬 더 편하고 효율적이다. 기자 역시 주요 일정이 저녁에 몰린 선거전 막판, 그렇게 기사를 썼던 기억이 있다. 몸은 편했지만 앞으로 기자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을 했더랬다.

'후보 카톡방'의 등장도 큰 변화였다. 후보 카톡방에 초대되는 게 사실상 대선 취재의 시작이었다. 모든 일정과 워딩이 카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나중에는 굳이 기자실에 나가지 않더라도 카톡방을 보면 그날 무슨 일이 있는지, 캠프 분위기는 어떤지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카카오톡은 있었지만, 이번만큼 단톡방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출발은 후보 측과 기자들의 '상호 편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선이 다가오고 일정이 많아질수록 단톡방의 단점도 드러났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단톡방을 만들었다지만 많게는 100여 명이 모여 있는 단체방에서 제대로 된 의사소통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일정과 워딩의 일방적인 전달이 이어졌고 기자 개개인의 발언권은 작아졌다. 취재원에게 전화를 거는 게 아니라 카톡방을 훑어보는 게 기자의 주요 일과가 됐다. 그만큼 취재의 영역은 줄어들었고 깊이는 얕아졌다. 워딩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현장에 나갈 필요성 역시 줄었다.

물론 취재 기자에게 '현장'은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세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워딩을 받아치며 행간의 의미를 포착하고, 현장에 나와 있는 캠프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 있어야 취재가 가능한 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꼭 가야 한다'와 '꼭 안 가도 된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 앞으로 대선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현장 취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고민을 안게 됐다. '그래도 기자는 현장이지' 라는 클리셰는 상황과 여건 앞에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 '정책 선거'의 전면 등장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변화는 '정책'이 비로소 선거의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선거 보도가 정책이 실종된 '경마중계식 보도' 일색이라는 지적은 언론학 교과서와 언론 단체 보고서의 단골 등장 메뉴였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문재인 캠프에서 선보였던 '문재인 1번가'는 그 변화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오로지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후보들의 정책을 접했던 유권자들은 이제 인터넷 쇼핑하듯 후보의 정책을 직접 살펴보고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대다수의 정치 전문가들은 지난 대선의 최대 히트상품으로 '문재인 1번가'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언론의 정책 선거 보도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뜻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후보 동정기사에 한두 줄 공약을 붙이거나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와 시청자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나 시청자가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 정보가 언론 기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풍부하고 세밀하다면 언론의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큰 틀에서 이러한 변화는 물론 환영할 만하다. 우리 정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유권자 입장에서도 혹시 모를 왜곡이나 언론의 게이트키핑에 대한 우려 없이 직접 정보를 선별하고 판단할 수 있게 됐다. 당연히, 언론의 역할은 그만큼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공수표처럼 남발되는 선심성 공약을 면밀히 검증하고 단순히 정책을 나열하기보다 심층 분석할 필요성이 커졌다. 기자의 입장에선 더 많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차별화된 기사만이, 높아진 유권자의 안목을 충족시키고 끌어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1번가지난 대선 보도에서 각 언론사의 팩트체크 코너를 비롯해 나름 새로운 시도가 없지는 않았지만, 큰 흐름을 만들어내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언론사는 '팩트체크'라면서 다른 언론사 과거 기사를 그때그때 검색해서 붙이는 정도에 그쳐 눈총을 받았다. 후보 일정과 메시지에 정책 한두 줄 붙는 기사나 네거티브 공방 기사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약과 주요 정책으로 제목을 뽑는 경우가 확실히 많아진 건 지난 대선 보도에서 나타난 중요한 변화였다.

덧붙이자면 탄핵 정국으로 말미암아 조기 대선이 펼쳐진 것 또한 정책 선거를 불러일으킨 중요한 요인이었다. 상대적으로 유세 기간이 짧아지고 정치적 변수가 줄어들면서 각 후보들은 정책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정책 발표 자리의 형식은 다양해지고 메시지도 분명해졌다. 다만 지난 대선의 특수성을 떠나 이미 한번 커진 정책 보도의 중요성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 '기자 노릇' 힘들어 졌지만…길은 있다.

나쁘게 말하면 대선 보도에서 언론의 입지는 줄어들었고 기자 노릇하기는 그만큼 힘들어졌다. 물론 이 경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환이라고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언론이 더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이유가 그만큼 늘었다는 게 지난 대선을 취재하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언론을 하나의 세력이 아니라 민주주의 시스템의 한 부분이자 제도라고 본다면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뀌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SNS 덕분에 대선 취재는 전보다 편해졌다. 가만히 앉아서도 취재하고 기사는 쓸 수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주요 비중을 차지했던 후보 동정 기사나 공방은 일정 부분 SNS나 캠프 자체 홍보 채널에 맡겨두고 그만큼 늘어난 여력을 심층 분석 기사에 쏟는 게 앞으로의 방향이 되어야 맞다. 받아쓰기식 기사는 지양하되 다양한 관점이 담긴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할 수도 있다. 선거철이면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세를 면밀히 검증하고 팩트 체크를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다. 줄어든 입지만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셈이다.
대선 사전투표소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상당수의 유권자는 언론을 통해 선거를 접하고 정보를 획득한다는 사실이다.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후보의 공약과 정견을 직접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다수의 유권자는 방송과 기사로 선거를 이해한다. 위 고민을 그저 기자들의 밥그릇 고민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입지가 줄었다고 해서, 해야 할 역할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양질의 선거 보도가 늘어나면 그만큼 더 깊고 열심히 취재하는 매체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선거 보도에서 언론의 역할은 더 커질 거라는 게 지난 대선에서 배운 나름의 교훈이다. "우리가 정직하고, 명예롭고, 공정하고 정확한 이상 언론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 마틴 배런(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실제 주인공)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 '역사의 기록자'로서…

마지막으로 철저히 개인적인 소회를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대선이라는 큰 판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취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후보들이 조직을 구성하고 싱크탱크를 비롯한 인력 풀을 짜 주요 공약과 정책을 준비하는 과정, 경선을 거쳐 본선 전략과 집권 비전을 세우는 일련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그저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말진 기자로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도 버거웠고 그 흔한 단독 보도나 날카로운 검증 기사는 시도조차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기록자'로서 대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었던 건 기자로서 큰 행복이자 기쁨이었다.

취임 1년을 맞은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어쨌든 출범 과정부터 지켜본 정권이 순항하고 있다는 건 기자로서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다. 그때는 어느 부서에 몸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대선은 어떤 선거가 될지, 우리는 어떤 보도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