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마음의 호수가 아닌 화장실의 호수를 건넌다.
쉬는 시간마다!
늘 줄줄 새는 수도꼭지, 막혀서 넘치는 변기, 남자 고등학교 화장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교복 바지에 오물이 묻을까 봐 까치발을 들고 소변을 보던 학생들의 모습도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건 뭐 실내화를 나막신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짜증만 늘어가던 어느 날. 원작자 김동명 시인에게는 죄송하지만 학교 신문에 위와 같은 내용의 짤막한 글을 썼습니다. 원고지 단 3줄짜리 글.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니들이 화장을 'X판'으로 쓰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선생님의 호통과 함께 화장실 청소의 강도는 두 배 이상 세졌고, 청소 주기는 더욱 짧아졌습니다. 역시 펜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피곤하고 때론 귀찮았지만 그래도 신문반 활동은 고교생활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신문반 하면 내신 점수를 잘 주냐. 신문 만드는 게 수능에 나오냐."는 부모님의 걱정에도 그냥 재미있어서 했던 일,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대입에 신문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좋아서 한 것뿐!
학부모들이 나서 아이의 서클 활동을 정하고, 새로운 서클을 만들도록 돈을 주고 컨설팅까지 받는 현실이 됐습니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학생부종합전형, 학종의 폐해입니다. 여기에 더해 고액의 대필이 난무하는 자기소개서,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교내 수상 이력 등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돈 많은 부모가 일일이 챙겨주지 않으면 좋은 대학은 엄두도 못 낸다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결국 정부가 다시 내놓은 큰 틀은 '단순하고 공정한 입시'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입시지옥', 5지 선다형 시험 기계, 대학 서열화, 성적 줄세우기라는 부작용으로 직결됩니다.
학종은 금수저 전형이어서 안 되고, 수능 위주의 정시는 줄세우기의 부활이어서 안 되고, 할 수 있는 정책이 도대체 뭔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론도 여러 갈래로 갈려 있습니다. 수능을 절대평가화해서 사실상의 '자격고사화' 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수능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수능 하나만 놓고도 수능 과목 숫자만큼 많은 개편안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이제 과제는 이렇게 파편화돼 있는 여론의 퍼즐을 맞춰 커다란 그림을 만드는 겁니다. 단순하고 공정하면서도 학생들을 시험기계로 만들지 않는 대입제도 개편안, 초고난이도 퍼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교육부가 지난해 8월부터 10개월 동안 대입제도 개편을 논의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여론수렴과 토론 과정은 없었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된 최종 결론도 도출할 수 없었습니다. 학부모 눈치, 학교 눈치, 사교육 시장의 눈치, 온갖 여론에 대한 눈치 보기만을 거듭하다가 제대로 된 결론은 내지 못한 겁니다. 이제 진짜 토론과 의견 수렴을 거쳐 대입 제도 개편안을 도출할 마지막 기회입니다. 학부모, 학생, 교사, 교육 공무원 등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의견을 내놔야 합니다.
모두 큰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의견은 제대로 내놓지 않는 교육 정책에 대해 이번 기회에 심도 깊게 짚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학종의 장점은 뭔지, 학종의 단점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수능의 장점과 단점은 뭔지, 수능과 학종의 조합은 어떻게 할 건지, 모든 의견을 쏟아내야 합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이 심화된다고 해서 부담스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의사결정, 정책 결정에서 만장일치 오히려 독재의 상징일 뿐입니다. 특히 교육 정책의 경우 더욱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