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리포트+] 성범죄자 오명에 청와대 청원까지…온라인 '마녀사냥' 이대로 괜찮나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8.04.11 17:36 수정 2018.04.13 14:56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성범죄자 오명에 청와대 청원까지…온라인 마녀사냥 이대로 괜찮나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충격적인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주도에서 택시기사가 24개월 아기를 납치해 성폭행했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청원에는 어제(10일)까지도 6만 명이 참여했는데요. 오늘(11일) 오후 해당 청원 글은 갑자기 게시판에서 삭제된 상태입니다.
관련 사진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한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9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택시기사가 아동을 납치했다고 볼만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었으며, 아동이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제주지방경찰청청원과 반대되는 수사 결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딸 납치됐다" 신고한 여성…범인으로 지목된 택시기사는 '혐의 없음'

SBS 취재진은 제주지방경찰청을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월 11일, "24개월 된 딸이 납치됐다"는 한 여성의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라고 밝힌 A 씨는 60대 택시기사 B 씨를 납치범으로 지목했습니다. A 씨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한 해안에서 아이를 재우고 있는 B 씨를 발견했습니다.

택시기사 B 씨는 "납치가 아니라 A씨로부터 아이를 잠시 돌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A 씨와 지난해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B 씨는 A 씨에게 언제 오는지 묻기 위해 전화를 건 기록을 경찰에게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A 씨에게 돌려 보내졌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 같았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그런데 이틀 뒤인 13일, A 씨는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다시 신고했고 23일에는 B 씨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아동에게서 성폭행으로 인해 발생할 만한 상처는 없었습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도 택시기사 B 씨의 진술이 '진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B 씨를 불기소(혐의없음) 처분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고A 씨에게 알렸고, 당시 A 씨도 이를 수긍했다고 경찰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그래픽
[제주지방경찰청 관계자]
■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성범죄자'로 몰려…가족들까지 고통 호소

그런데 지난 5일, A 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주도에서 24개월 안 된 아기가 강제 추행당했어요'라는 제목으로 "경찰이 불기소 증거 불충분이라는데 말이 되냐"며 글을 올렸습니다. A 씨는 해당 게시물에 '글을 널리 퍼트려주세요'라는 댓글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삽시간에 인터넷 카페와 SNS 등에 퍼졌고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에 제주지방경찰청이 공식 SNS 계정에 수사 결과를 알리는 게시물을 올렸지만, A 씨의 글만 접한 일부 누리꾼들의 비난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혐의가 없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왔는데도 누리꾼들에 의해 '성범죄자'로 몰린 택시기사 B 씨는 A 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택시기사■ 허위 사실로 고통받는 피해자들…무고죄 처벌 강화해야 할까?

이처럼 정확하지 않은 온라인 게시물 등에 의해 피해자가 생기는 일은 종종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9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아이가 버스에서 먼저 하차했는데 함께 탑승한 엄마는 내리지 못해 해당 버스기사에게 세워달라고 요청했지만, 기사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욕을 했다"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당시 해당 버스기사는 인신공격 등의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조사 결과, 해당 글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일각에서는 죄 없는 사람을 마녀사냥 해 범죄자로 몰아가는 무고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3천여 건에 그쳤던 무고죄는 5년 만에 2천 건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그래픽
무고죄 증가 그래프//형법상 무고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기소율이 높지 않고 구속된 피의자가 중형을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실제로 2016년 무고로 기소된 2,104명 중 5%에 해당하는109명만 구속됐고, 나머지 95%는 불구속기소 되거나 약식명령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팀장은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고소는 인정하는 게 당연하지만, 사실 관계가 성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소인이 피고소인을 형사 처벌할 목적으로만 고소했다면 무고죄를 적용해 엄격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승 팀장은 "무고로 인한 피해자들은 사건에 휘말리는 것만으로 생계에 영향을 받거나, 사회적 단절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수사기관 역시 이 같은 무고의 심각성을 고려해 무고죄 형량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안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