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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사면과 평창 로비…삼성의 은밀한 뒷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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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저희 취재진은 수상한 이메일 여러 통을 확보했습니다. 이메일에는 삼성이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 IOC 위원들을 상대로 탈법, 편법 로비를 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보도를 하기 전까지 솔직히 저희는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성공한 올림픽이라는 국민적 자부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 또 국익을 해치는 것 아니냐는 반론들을 끊임없이 곱씹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진실은 불편하더라도 감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안은 단지 한 특정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의 유착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라고 저희는 생각했습니다.

결과를 위해서라면 편법과 탈법을 묵인하고 그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하는 시대를 이제는 더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SBS는 판단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가 취재한 내용을 하나씩 풀어드리기에 앞서 지난 2009년 12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특별사면된 시점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보신대로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 이건희 삼성 회장을 단독 특별 사면했습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복귀해서 유치 활동에 힘을 보태는 것과 올림픽 공식 주요 후원사인 삼성이 편법, 탈법 로비를 위해서 회사의 자금과 조직을 동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IOC 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상으로 봐도 공식 후원사 삼성은 특정 후보 도시 지원이 금지돼 있는데도 회사 자금과 조직을 동원해서 편법, 탈법 로비에 나선 겁니다.

특히 오늘(9일)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 공소장에도 삼성은 지난 2007년부터 4년 동안 뇌물을 제공하면서 2009년 말에 특별 사면을 받는 등 혜택을 누린 거로 적시돼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 SBS가 취재한 특별 사면과 평창 올림픽, 정경유착의 은밀한 뒷거래에 대해서 자세히 전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2010년 삼성에 전달된 IOC 위원 27명의 이름이 담긴 비밀 리스트부터 보시겠습니다.

전병남 기자입니다.

<기자>

2010년 5월 7일, 이영국 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삼성 관계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사흘 뒤 회의 때 쓸 거라면서 내용의 검토를 요구합니다.

'Confidential list' 즉 비밀 리스트라는 제목 아래 영문 이름이 빽빽하게 나열돼 있습니다.

모두 27명, 2010년 당시 국제올림픽 위원회 IOC 위원들로 올림픽 개최지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발신자는 파파 마사타 디악,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이자 당시 아프리카 IOC 위원이던 라민 디악의 아들입니다.

라민 디악의 이름을 앞세운 명단에는 국제육상연맹 전 현직 임원들과 아프리카 지역 IOC 위원 12명을 포함한 국제 스포츠계 거물들의 이름이 적혔습니다.

라민 디악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IOC 위원들로 파악되는데 삼성은 이 명단을 '디악리스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중간에 적힌 '프랑스가 진다면'이라는 문구, 평창의 경쟁 상대이던 프랑스 안시가 1차 투표에서 탈락하면 포섭할 수 있는 IOC 위원들이라는 뜻으로 추정됩니다.

이 리스트의 목적은 삼성 관계자 간 이메일 안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황성수 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윤주화 경영지원실 사장에게 보고한 이메일입니다.

파파 디악과의 미팅 결과라면서 파파디악을 라민 디악의 대리인으로 세워 리스트 속 26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평창을 위한 로비 활동을 하는 게 라민 디악의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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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파파디악은 IOC 위원 27명의 명단만 삼성 쪽에 보낸 게 아니었습니다. 국제육상경기연맹 후원금과 로비자금, 그리고 성공보수까지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SBS가 이 돈의 전체 규모를 계산해 봤더니 정확히 얼만지 모르는 성공보수를 빼고도 약 1천2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0억 원이나 됐습니다.

계속해서 이한석 기자입니다.

<기자>

파파디악이 삼성 측에 IOC 위원 27명의 명단을 보내고 18일 뒤인 5월 25일, 파파디악이 당시 삼성전자 황성수 상무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제목은 Strictly Confidential, '절대적 기밀'이라며 보안을 강조합니다.

파파디악은 IAAF, 국제육상경기연맹과 삼성 간 후원 계약 액수를 제시합니다.

국제육상연맹 주관 대회인 다이아몬드 리그에 삼성이 2010년 250만 달러, 2011년과 12년 각각 350만 달러씩 총 3년간 950만 달러,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우리 돈 110억 원을 후원해달라고 합니다.

또 자신의 아버지인 라민디악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의 정치 홍보 자금 150만 달러, 약 17억 원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이 돈은 자신의 컨설팅 회사와 사적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합니다. 떳떳한 돈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파파디악은 나아가 2011년 1월부터 6월까지 '캠페인 비용' 150만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2011년 7월은 남아공 더반에서 올림픽 유치도시 선정 투표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직전 6개월 동안의 로비 활동비를 의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또 눈에 띄는 단어가 있습니다. success fee, 성공보수입니다. 평창유치가 확정됐을 때 받는 금전적 대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 파파디악이 요구한 돈은 금액을 명시하지 않은 성공보수를 제외하고도 1,250만 달러, 우리 돈 140억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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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 디악은 삼성에 올림픽 유치를 위한 로비 대상으로 추정되는 IOC 위원들의 명단을 넘겼고 동시에 약 140억 원 규모의 후원 계약을 요구했습니다. 

방금 보신 대로 콕 찍어서 국제 육상 연맹이 주관하는 대회를 후원해 달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삼성은 이런 요구를 과연 들어줬을지 정경윤 기자가 확인해봤습니다. 

<기자> 

국제육상연맹이 주관하는 다이아몬드 리그 영상입니다. 2010년 8월 파리에서 열린 대회 이름 앞에는 '삼성'이 붙어 있습니다. 

삼성 다이아몬드 리그.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육상 경기를 치르는데 경기장 곳곳에도 삼성의 배너가 노출됩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삼성 로고는 다이아몬드 리그에 이런 방식으로 등장했습니다. 

파파디악도 자신이 운영한 스포츠 컨설팅 회사 '파모찌'의 홍보자료에서 삼성이 이 기간 다이아몬드 리그의 타이틀 스폰서, 즉 대회 이름에 대한 권리를 갖고 경비 대부분을 부담하는 높은 단계의 후원을 해왔다고 밝혔습니다. 

파파 디악이 2010년 7월 30일 삼성 다이아몬드 리그 계약 성사를 홍보하는 이메일을 삼성 측과 공유한 걸로 볼 때 계약은 이즈음에 성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SBS의 취재에 세계육상연맹의 공식 파트너로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3년간 후원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세한 내용은 끝내 확인해 주지 않았습니다.

파파디악이 요구한 대로 140억 원대의 돈이 전달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특히 후원 규모를 물었지만 여기에 대해선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세부계약 내용은 계약 시 통상적으로 삽입되는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밝히기 어렵다면서 스포츠 마케팅과 글로벌 사회공헌 차원에서 후원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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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삼성이 거래했던 파파디악과 라민디악,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도 알아봐야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인 두 사람은 국제 스포츠계 거물급 인사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걸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수사 대상에 올라 있습니다. 특히 리우와 도쿄 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이현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파파디악의 뒤에는 아버지 라민디악이 있습니다. 세네갈 출신의 라민디악은 올해 85살로 1958년 프랑스 챔피언십에서 멀리뛰기 우승을 차지한 선수 출신입니다.

이후 세네갈 체육부 장관과 국회 부의장까지 역임하고 1999년에는 IOC 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

1999년부터 장장 16년간 국제육상경기연맹 회장이었습니다. 라민디악의 위세를 등에 업고 아들 파파디악은 국제 스포츠 마케팅 시장에 진출합니다.

파파디악은 지난 2007년 국제육상경기연맹의 마케팅 컨설턴트가 됩니다.

'파모찌'라는 이름의 컨설팅 회사를 차려 국제육상연맹과 기업들 사이 후원계약의 대리인으로 나섰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아버지인 라민디악은 뇌물을 받고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을 눈감아준 혐의로 프랑스 검찰에 기소됐습니다.

아들인 파파디악은 지난 리우 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도와주는 대가로 올림픽 유치위 관계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령이 내려진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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