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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과기정통부, 인공강우 시연행사 돌연 취소 "날이 너무 맑아서"

[취재파일] 과기정통부, 인공강우 시연행사 돌연 취소 "날이 너무 맑아서"
● 날씨가 너무 맑아서 '인공강우' 못 보여준다

어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대적인 인공강우 실증 시연을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비가 아닌 사람이 만든 '인공 비'가 내린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기상청장까지 참석해 오후 3시 인천의 한 연구소에서 시연이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 기획된 시연행사가 시작 4시간을 앞두고 돌연 취소됐습니다. 인공강우 시연이 갑자기 취소된 이유는 '날씨가 너무 맑다'는 겁니다.

사람이 만든 인공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기 위한 행사인데 날씨가 너무 맑다는 이유로 행사가 취소되다니 아이러니합니다. 비가 오는 날 인공강우 행사를 열어야 했던 걸까요.

● 빗방울 씨앗 뿌렸더니 1mm '증우' 효과

인공강우는 수분이 풍부한 구름에 인공적으로 '빗방울 씨앗(응결핵)'을 뿌려 일정 지역에 비나 눈을 내리는 기술입니다. 씨앗이 주변의 물을 빨아들여 지표면에 떨어질 정도로 무거워지면, 빗방울 되어 땅에 떨어지는 겁니다. 따뜻한 구름에는 물을 흡수하는 염화칼슘이나 염화나트륨을 뿌려 물방울을 성장시키게 하고, 0도 이하의 차가운 구름에는 요오드화은과 드라이아이스를 뿌려 빗방울을 얼리는 형태로 인공강우를 만들어 냅니다.

국립기상과학연구원은 이미 2008년부터 수차례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수십 번의 실험 가운데 40% 정도 '인공 비'를 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비는 마른하늘 내린 게 아니라, 습하고 구름이 낀 날씨이거나 비 오는 날에 성공한 것입니다. 대부분은 이미 비가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원래 내릴 비보다 조금 더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 양도 1mm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에서 인공강우를 연구하고 있고 성공 사례도 많지만, 맑은 날 건조한 날에 사람이 만든 '인공 비'가 내리긴 어렵습니다.

● 미세먼지, 가뭄, 산불 해결사? '불가능'

왜 인공강우를 연구할까요? 정부차원에서 이를 연구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지금까지 인공강우를 가뭄과 산불,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데 이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증우량은 1mm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많은 빗방울 씨앗을 뿌려도 내리는 비의 양을 1mm 이상으로 늘리긴 어렵다는 것이 국립기상과학원의 설명입니다.
미세먼지
물론 1mm의 비가 내리는 것이 가뭄과 산불을 해결하는 데 조금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문제는 인공강우를 성공할 수 있는 기상 조건이 재해상황 당시 기상조건과 정반대라는 겁니다. 가뭄과 산불은 아주 건조한 조건의 날씨일 때 발생하는 재해입니다. 대부분은 한반도가 고기압에 갇혀 맑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런 날씨 조건에서는 인공강우가 불가능합니다.

인공 강우는 현재 습한 조건에 구름도 많은 날씨에서만 가능합니다. 미세먼지도 그렇습니다. 미세먼지가 많아지고 높아지는 것은 우리나라에 고기압이 자리 잡아 대기 정체현상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국 먼지까지 몰려오면 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습니다. 대류가 활발해야 인공 비도 잘 만들어지는데,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대기가 정체되어 있고, 인공 강우도 불가능합니다. 설령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나타났을 때 인공강우가 성공하더라도 현재 기술 수준인 1mm 강수로는 미세먼지 해소가 매우 어렵습니다.

● 실험보다 시연 먼저…홍보에 급급

인공강우 기술의 한계점은 사실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언론에서도 수차례 보도가 되었습니다. 비가 내릴 조건일 때만 성공할 수 있고, 우리가 정작 필요한 때는 사용 불가능한 기술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공강우는 20년 넘게 국가 재난을 해결할 묘책이 될 것처럼 홍보되고 있습니다. 1995년에도 극심한 가뭄을 인공강우로 해결해보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고, 대대적인 인공강우 실험을 시연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공개시연에서 비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최근 '국민체감 과학기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도 국민체감형 실증시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국민이 느낄 수 있는 과학기술을 선보이려던 것이겠지만 인공강우 기술은 현재로선 희망고문과 비슷해 보입니다.
장마 끝나자 또 폭우
인공강우는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연구해오던 기술입니다. 이번에 기상청 상위기관이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행사를 직접 개최하려던 데에는 과기정통부 소속 항공우주연구원이 만든 '무인 항공기'의 역할이 컸습니다. 성능 좋은 '무인항공기'를 개발했고, 이를 인공강우 씨앗을 뿌리는 데 활용해보겠다는 겁니다. 기상청의 기상항공기와 과기부의 무인항공기가 함께 씨앗을 뿌리면 비가 더 잘 만들어지지 않겠냐는 겁니다. 항공기와 무인기를 동시에 활용한 인공강우 시연은 세계 최초라고 자평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연하기로 한 유인기와 무인기를 함께 활용한 인공강우 시연은 리허설을 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사전 실험이나 연구 데이터가 없었습니다. 유인기와 무인기를 동시에 활용한 강수증가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과학적인 연구성과도 없는 상황에서 홍보부터 시작한 겁니다. 인공강우는 계속 연구해야 할 분야고 관심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연구해보지 않은 기술을 시연회부터 열어 홍보에 이용하려는 것은 지난 1995년과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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