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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교육부의 부끄러운 민낯…거부는커녕 국정화 앞장

[취재파일] 교육부의 부끄러운 민낯…거부는커녕 국정화 앞장
박근혜 정권이 국민들의 반대에 맞서 끝까지 밀어붙인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최순실과의 국정농단에 이은 또 하나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결론 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28일 7개월간의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이렇게 규정했다. 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결정했고, 이병기 전 비서실장 등이 위법부당한 수단과 편법까지 동원해 국정화 정책을 강행했으며 교과서 편찬 내용 수정에까지 개입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에도 황교안 권한 대행은 마지막 순간까지 국정역사교과서 보급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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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화 논리를 적극 홍보하고, 국정화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한 기관은 교육부였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업의 주무부처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육부의 행동은 상식과 도를 넘었다. 교육부는 2014년 1월 13일 역사교육지원팀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10월 5일 국정화 비밀TF를 또 만들어 11월 12일까지 한 달가량 운영했다. 국정화 비밀TF는 기존 역사교육지원팀과 다른 부서에서 차출된 21명으로 구성됐다. 임무는 청와대 비서실 지시사항 대응 및 역사교과서 국정화 로드맵 작성, 홍보업무였다. 이 비밀TF가 국정화에 우호적인 여론조성을 위해 계획하고 추진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여당(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역사교과서 국정화 우호 발언메시지, 연설문 등을 작성하여 전달
2. 민간단체를 통한 성명서 발표 및 집단 시위
3. 학계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칼럼, 기고문 등재
4. 현행 검정교과서가 편향되었다는 자료 개발 및 배포
5. SNS 동향 파악 및 국정화 우호 여론 확산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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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또 민간사회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국정화 지지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일도 서슴지 않았다. 기고문을 작성한 뒤 기고자를 섭외하고, 특정주제에 대해 외부인의 기고 계획을 수립, 추진했다. 또 기고 전 기고자로부터 기고문을 받아 검토, 수정하는 한편 국정화 찬성 성명서를 보여주고 논거를 정리해 제공하는 역할도 했다고 조사위원회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교수 102명이 2015년 10월 16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선언을 하는 데 적극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을 다시 구성했다. 추진단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전담하고 있는 국정역사교과서 편찬에도 적극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 역사전문직들을 동원해 국사편찬위원회와 별도로 각 단계별 교과서 원고인 초고본, 원고본, 개고본에 대해 검토했다고 조사위원회는 밝혔다. 초고본을 검토한 뒤 집필진에 제시한 수정의견은 중학교 525건, 고등학교 400건 등 모두 925건에 달했다. 교육부가 수정·보완토록 한 현대사 부분은 이승만 정부, 박정희 정부, 새마을운동 관련 서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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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2016년 11월28일 공개한 뒤 교육부는 자치단체에 이례적으로 공문까지 보내 홍보를 요청했다. 광역자치단체뿐 아니라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까지 50여 쪽 분량의 홍보책자와 책자내용을 요약한 수백 장의 작은 리플렛을 보냈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고, 자치단체들도 대부분 홍보에 시큰둥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동력을 잃고 사실상 생명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여론에 귀를 막고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보려고 몸부림을 친 것이다.
[취재파일] 교육부의 부끄러운 민낯…거부는 커녕 국정화 앞장
앞서 2016년 11월 2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참석한 교육감 대부분도 국정화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다. 회의에는 대구와 경북을 제외한 15개 시도 교육감이 참석했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및 폐기가 긴급안건으로 상정됐다. 울산을 제외한 14명의 시도교육감들은 성명을 통해 "대통령과 측근들에 의해 자행된 국정농단, 교육농단의 정황이 낱낱이 밝혀지는 현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한 국정교과서는 국민의 신뢰조차 상실한 사망선고가 내려진 정책이다"며 국정화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 무렵 국정화 반대여론도 60.4%에 달했고 찬성은 19.7%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요구에 대해 "현장검토본의 내용을 보고 평가해 달라, 이념 편향성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며 국정화 중단요구를 일관되게 거절하고 정해진 시간표를 따라 달려갔다.

조사위원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관련 25명을 수사 의뢰하기로 한 가운데 교육부 전·현직 간부 7명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교육부 내부적으로 징계절차를 밟도록 요청한 대상자도 10여 명에 이른다. 구체적 잘잘못은 사법기관에서 밝히겠지만 인과응보다.

고석규 조사위원장은 "교육부 내 일부 직원이 국정화 관련 업무를 개인적으로 거부하는 등 소극적 저항을 했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저항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상명하복의 위계문화가 뿌리 깊은 공무원 조직에서 항명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직위를 걸고 바른말을 하고 옳은 주장을 펴는 고위공무원들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은 많이 아쉽다. 다른 부처도 아니고 학생들을 바르게 길러 낼 책무가 있는 교육부여서 더 그렇다. 대꼬챙이 같은 선비정신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지만 한 두 사람만이라도 여론에 귀를 열고 자존감만은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교육부 국정 교과서 교육 부서
정부는 지난 3월 20일 국가공무원법 57조에 단서조항을 달아 공무원들이 소신을 펼 수 있도록 법률로 보장했다.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어떤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정책의 일방적 지시가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다행이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국민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마음을 받든다면 필요도 없을 법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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