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송하다는 말 나올 때까지 맞았다"…목격자에서 범인이 된 소년
2000년 8월, 당시 10대 소년이었던 최 모 씨는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우연히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길가에 세워진 택시 운전석에 기사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겁니다. 택시 기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최초 목격자인 최 씨는 "현장에서 남자 2명을 봤다"고 진술했습니다. 사건 당시 최 씨가 입은 옷과 신발에서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경찰의 폭언과 폭행 등 강압 수사에 못 이겨 한 거짓 자백이 최 씨의 발목을 잡았고, 검찰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최 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 "유흥비 필요해서 죽였다"…진범 자백했지만 흐지부지된 수사
최 씨에게 실낱같은 희망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수감 생활 중 진범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온 겁니다. 사건 발생 후 2년 8개월이 지난 2003년 3월 경찰은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습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김 모 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당시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습니다.
게다가 김 씨의 친구인 임 모 씨로부터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털어놨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봤다"는 진술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고, 김 씨와 임 씨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습니다. 최 씨의 길고 긴 수감생활은 다시 이어졌습니다.
최 씨는 출소 후 2013년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재심까지의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광주고등법원은 최 씨가 불법 체포·감금 등 가혹 행위를 당한 점과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점 등을 들어 재심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이에 항고했고 대법원이 2015년 12월 검찰의 항고를 기각한 뒤에야 재심이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 11월 최 씨에 대한 재심에서 "당시 피고인이 자백한 살해 동기와 경위가 객관적 합리성이 없고 목격자의 진술과 어긋나는 등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크다"며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진범 대신 옥살이 한 최 씨가 16년 만에 누명을 벗은 겁니다. 선고 직후 최 씨는 "출소하고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붙은 살인 꼬리표가 가장 힘들었다"며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서 좋다"고 털어놨습니다.
재심 직후 경찰은 2003년 당시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 씨를 체포했습니다. 김 씨는 또다시 범행을 부인했지만, 검찰은 그를 구속기소했습니다. 1·2심에서 재판부는 "김 씨의 기존 자백과 증인들의 진술이 일관되게 일치하므로 피고인이 범행을 위해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