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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치지 않는 독수리 농약 중독…뭘 먹었길래?

[취재파일] 그치지 않는 독수리 농약 중독…뭘 먹었길래?
겨울철 월동을 하러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는 몽골에서 날아온다. 초원지대에서 야생 동물의 사체를 먹고 지내다가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면 먹이를 찾으러 남쪽으로 이동해 오는 것이다. 하늘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검독수리와 달리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 죽은 동물을 먹는 습성이 있다. 머리에 털이 없어 독수리의 독은 한자로 대머리 독<禿>을 쓴다.

천연기념물 243-1호이자 멸종위기 2급인 독수리는 10월 말부터 우리나라를 찾는다. 강원도 철원, 경남 고성 등에서 무리를 지어 겨울을 보낸다. 대표적 월동지를 벗어난 일부 개체들은 충청권에도 거의 매년 모습을 보인다.

독수리가 즐겨 찾는 곳은 시야가 탁 트인 넓은 들녘과 축사밀집지역이다. 농경지나 하천 등에 방치된 가축 사체나 야생동물의 사체를 쉽게 찾기 위해서다. 4대강 수문을 열자 금강 변 에서도 가끔 목격된다. 모래톱 등에서 죽은 잉어나 붕어를 뜯어먹곤 한다. 하지만 죽은 동물만 찾다 보니 독수리에게는 늘 먹이가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경남 고성이나 철원 등 월동지에서는 돼지비계 등을 먹이로 주는 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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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사체를 찾아 먹이 활동을 하던 독수리들이 몽골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독극물 수난을 당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충남 청양의 한 농경지에서는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16마리가 발견됐다. 14마리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움직이지 못하지만 살아 있는 2마리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데리고 갔다. 독수리 몸에 외상은 없었다. 자치단체는 독수리 사체를 국립환경과학원으로 보냈다. 부검 전 AI검사에서도 음성으로 나왔다. 그런데 독극물 검사에서 고농도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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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위 내용물에서 나온 농약은 살충제 성분인 ‘카보퓨란’이다. 검출량은 최대 106.8mg으로 치사량의 42배나 된다. 독수리 간에서도 2.168mg이 나왔다. 영국곡물생산협회에 따르면 메추라기를 대상으로 한 카보퓨란의 치사량은 2.5~5.0mg이다. 독수리는 대체 뭘 먹고 농약에 중독된 걸까?

독수리 폐사체가 발견된 농경지 주변에서는 야생조류의 사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개나 고라니로 추정되는 사체 일부가 발견돼 청양군이 국립환경과학원으로 독수리 사체와 함께 보냈다. 환경과학원은 발굽의 모양으로 보아 고라니로 판단했다고 한다. 살점과 내장이 사라졌고 거의 뼈만 남은 상태여서 농약성분 검사를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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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학원은 이 고라니 사체를 독수리가 뜯어먹은 게 거의 확실하다는 입장이다. 로드킬 등으로 죽은 고라니 사체는 배고픈 독수리에겐 좋은 먹잇감이기 때문이다. 도로에 방치된 고라니 사체를 먹다가 독수리가 차에 치여 크게 다친 경우도 있다. 환경과학원은 누군가 고의로 고라니 사체에 농약을 묻혀 농경지에 던져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먹이를 찾던 독수리가 떼 지어 내려 앉아 아무 의심 없이 먹이를 먹고 농약에 중독돼 집단 폐사했다는 추정이 성립한다.

그런데 독수리를 직접 겨냥해 독극물을 살포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또 독수리를 왜 밀렵하려 했는지도 의문이다. 독수리의 독극물 중독사는 보통 농약 묻은 볍씨를 먹고 죽은 새나 오리를 뜯어먹고 발생하는 2차 피해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1년 전 독수리가 집단폐사한 현장에서는 가창오리떼 수십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가창오리 사체는 성한 게 없을 만큼 심하게 훼손돼 있었고, 고농도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또 이달 초 충남 당진 삽교호 근처와 아산에서 발생한 가창오리, 쇠기러기 집단폐사 현장 에서도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21마리가 발견돼 17마리는 구조됐고, 4마리는 죽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수거한 가창오리 위 내용물에서도 살충제 성분인 ‘카보퓨란’이 최대 156.36mg이나 검출됐다. 치사량의 무려 62배나 되는 고농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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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을 마친 독수리는 보통 이달 말쯤 번식지인 몽골로 돌아간다. 머나먼 귀향길에 오르기 전에 충분한 에너지를 섭취해야 했던 독수리들은 죽은 새나 고라니가 농약에 중독돼 있는지 알 수 없다. 기나긴 여정을 떠나려 배를 채운 것뿐인데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아무리 AI 전염에 대한 공포나 불안, 배설물에 대한 피해가 이유라 한다 해도 독극물을 살포해 야생조류를 살상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처벌조항도 최고 2년 이하 징역에서 멸종위기종 1급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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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인면수심의 범죄행위가 사라지려면 적극적인 목격자 신고와 경찰의 끈질긴 범인색출, 자치단체의 예방활동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 멸종위기종 독수리의 떼죽음…고의로 농약 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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