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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파이사건' 최후통첩에 러시아 강력 반발…양국간 긴장고조

SBS뉴스

작성 2018.03.14 01: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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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지난 4일(현지시간)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스파이 암살 시도의 배후로 러시아를 공식 지목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가 납득할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할 경우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그러나 이는 아무런 근거 없는 반(反) 러시아 선전전에 불과하다며 이번 사건과 러시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양측 입장이 엇갈리면서 외교적 긴장은 물론 충돌까지 우려되는 모습입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암살 시도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짓고 러시아 측의 소명이 없으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메이 총리는 이날 의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사용된 신경작용제가 1970∼19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된 '노비촉(Novichok)'으로 밝혀졌다고 정부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노비촉은 지금까지 가장 치명적인 신경작용제로 여겨졌던 VX 보다 5∼8배 더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메이 총리는 러시아 정부가 직접 이를 사용했거나 아니면 남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등 관리에 실패했을 두 가지 가능성만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외무부는 런던 주재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노비촉이 발견된 데 대한 해명을 요구하면서, 13일 자정까지 답변을 내놓으라고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메이 총리는 "믿을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영국을 상대로 한 러시아 정부의 불법적인 물리력 행사에 해당하는 행위로 결론짓겠다"고 강조하면서 전방위적 보복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메이 총리는 이번 사건이 "무고한 시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 것으로 영국을 향한 무분별하고 무모한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영국 땅에서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려는 뻔뻔한 시도를 참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앞서 지난 4일 러시아 이중간첩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영국의 한 쇼핑몰에서 미확인 물질에 노출된 뒤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스크리팔은 러시아 군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 전직 장교로 2006년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의 신원을 영국 해외담당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에 넘긴 혐의로 기소돼 1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2010년 미국과 러시아의 대규모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영국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러시아 정부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의심해 왔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가 근거 없는 반(反)러시아 선전전에 불과하다고 반박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는 이미 이 모든 것이 헛소리라고 밝혔으며, 이 사건과 아무런 연계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국제 화학무기금지조약에 따르면 영국은 독극물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국가(러시아)에 즉각 조회하도록 돼 있지만 아직 영국 측으로부터 어떤 문의도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독극물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지 않는 한 러시아는 영국의 최후통첩에 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스크리팔 중독 사건에 사용된 독성물질이 "분명히 러시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데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습니다.

대사관은 "증거없이 모든 잘못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하는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 "현재로썬 영국 측이 옳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18일 대선을 앞두고 선거운동 차원에서 러시아 남부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곡물센터를 방문 중이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느냐'는 영국 BBC 방송 기자의 질문에 "먼저 당신들(영국)이 자체적으로 규명한 뒤에야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양국 입장이 엇갈리는 만큼 러시아 정부가 영국 측이 통보한 시한 내에 소명을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녀가 무의식 상태로 발견됐을 때만 해도 마약 과다복용 의심 사례로 보였으나 발생 8일 만에 군용 화학무기를 이용한 공격으로 드러나면서 양국 관계에 대형 악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러시아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영국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영국 진보 일간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내놓을 제재 패키지는 영국 주재 일부 러시아 외교관들의 추방으로부터 시작돼 러시아 월드컵 보이콧, 제재 및 자금세탁방지법 개정안 발의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가디언은 영국 정부가 극단적인 선택지로 러시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일각에서는 영국 정부가 강경 대응에 나설 경우 가뜩이나 나쁜 영국-러시아 관계가 1990년대 이래 최악의 국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FT에 따르면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마태 볼레그는 메이 총리가 시한을 정해 답변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메이 총리로서는 최소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볼레그는 "영국으로서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맞물린 시기에, 또 미국과 러시아와의 긴장이 높아가는 시기에 유럽 동맹국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지를 얻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