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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소환된 '언론 무용담'

'더 포스트'와 미디어 엘리트

[취재파일]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소환된 '언론 무용담'
스필버그 감독의 새 영화 ‘더 포스트’를 봤다. 1971년 ‘워싱턴포스트’(포스트)의 ‘펜타곤 보고서’ 특종기를 다뤘다. 미국 정부가 20년 가까이 베트남에 개입하고 파병한 과정을 담은 1급 기밀문서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 과정이다.

미국이 베트남전 수렁에 빠져 있던 그 해, 포스트는 워싱턴 DC의 지역지에 불과했다. 그래도 수도 식자층에 읽힌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스스로 경쟁지라 여기는 전통의 ‘뉴욕타임스’(타임스)한테 조만간 크게 한방 맞을까봐 전전긍긍이다. 타임스의 베트남전 취재 베테랑 닐 시언 기자가 벌써 석 달 째 기사를 안 쓴 것. 인턴을 시켜 염탐한 타임스 편집국은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면을 닐 시언이라고만 써 놓고 비워 놨다”. 다음날 타임스는 훗날 ‘맥나마라 보고서’로도 불린 국방부 기밀문서를 폭로해 베트남전의 이면을 드러냈다.

● 닉슨 맞서 언론자유 지킨 ‘포스트’

타임스 보도에 닉슨 행정부가 취한 대응은 우악스러웠다.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타임스가 국익을 해쳤다고 비난했다. 추가보도를 막는 소송도 냈다. 언론사한테 권력의 ‘법적 대응’은 상당한 부담이다. 다른 언론에게 ‘너희도 이렇게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시 포스트도 물론 갈등에 빠졌다. 남편 자살로 졸지에 경영권을 물려받아 발행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은 아직 이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못 냈다. 사세 확장을 위한 상장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사회는 타임스를 따라 보도해 송사에 빠졌다간 곤란해진다고 종주먹이다. 게다가 기밀문서 작성을 지시한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그레이엄의 친구다.

이 상황을 타개한 게 좌고우면 않는 언론윤리였다. 써야 마땅한 뉴스가 생겼을 때 포스트 기자들은 따라잡으려 애썼다. 경쟁 매체의 특종보도를 애써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려는 유혹을 뿌리쳤다. 타임스의 취재원을 추적해 찾고 보고서를 얻으려고 분투했다. 어렵게 입수한 보고서를 함께 모여 살피는 풍경은 치열해 아름다웠다.

브래들리 국장은 보도를 막으려는 사내 변호사에게 일갈했다. “신문 자유를 지키는 방법은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다”. 20년 경력 베테랑 기자들의 언론행위가 알량한 법률지식에 가로막히지 않게 앞장섰다. 이 뉴스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전하되 간섭하지 않고, 최종 책임만 짊어지는 그레이엄 역시 언론사주의 모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을 읽어주고 제보하는 교양 시민이 있었다. 그렇게 포스트는 워싱턴 DC를 넘어 타임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 ‘정윤회 문건’ 수사하라던 대통령

영화를 보고 떠오른 게 ‘정윤회 문건 사건’이다. 2014년 11월 ‘세계일보’가 입수해 보도한 청와대 문건은 충격이었다. 최순실 전 남편 정윤회 씨가 이른바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 비서관을 통해 국정에 개입한다는 내용이다. 아는 사람들만 쑥덕거리던 말들이 청와대 공식 문서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사실상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처음 드러낸 셈이다.

그런데 문건 공개 뒤 세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박근혜 정부는 해당 문건을 ‘찌라시’를 모은 것으로 규정했다. 3일 만에 입을 연 대통령은 “문건 유출” “국기 문란” 운운하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비선 권력의 국정농단은 그렇게 ‘청와대 문건 불법 유출’ 사건으로 바뀌었다. 펜타곤 보고서에 국가안보를 들먹인 닉슨 행정부와 통한다. 서슬 퍼런 프레임 전환에 정보과 경찰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사건’이 되자 다수 언론이 검찰 입만 바라보게 됐다.

정치권력 상층부에서 벌어지는 암투는 분명히 ‘뉴스’다. 국민은 알지도 못 하는, 선출되지 않은 비선 권력이 국정을 주무른다는 사실은 유권자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정보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당시 언론이 전력으로 취재했다면 최순실이란 이름과 국정농단의 일단이 더 빨리 드러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지 못 했다. 미디어 종사자로서 부끄러웠던 순간이다.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 엘리트의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더 포스트’엔 한국의 감상자들이 불편해 할 수 있는 장면도 많다. 제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한 요즘이라 더 그럴 것이다. 영화에선 미국 백인 엘리트들이 폐쇄적으로 어울리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언론사주는 고급 식당과 자택에서 고위 관료와 일상적으로 밥을 먹고 보도에 항의하는 백악관 전화를 받는다. 영화 ‘내부자들’이 그린 비릿한 풍경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감상자라면 미국 사회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혀를 찰 풍경이다.

하지만 영화 속 엘리트는 직업윤리에서 철저했다. 그레이엄과 브래들리는 서로가 캐네디, 닉슨 정부 인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존중했다. 다만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관계를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구현하려 들지 않았다. 미디어 엘리트인 그들에게 ‘정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팩트 앞에서 진영을 따지고 보도 여부를 고민하는 건 스스로를 배반하는 행위인 탓이다.

따라서 내게 이 영화는 모든 기성 권위가 사라진 시대, 엘리트의 권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백인 리버럴 스필버그의 설명으로도 읽힌다. 권위는 스스로 증명해내야 한다는 것. 남에게 영향 주고 사회로부터 존중 받는 특권은 타고 난다거나 영원한 게 아니라는 것. 영화 말미 정부와의 소송에 이긴 그레이엄이 대법원을 나설 때, “30살 넘은 사람 말은 믿지 말자”던 히피들이 꽃을 들고 배웅한다. 존재가치를 증명한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인정이다.

오늘의 미국을 사는 스필버그로선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염증을 동원해 집권한 대통령이 있는 사회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판치는 가짜뉴스에 맞서 훈련된 미디어 엘리트가 제 역할을 하길 바라며 저 오래된 언론계의 무용담을 꺼냈는지 모른다. ‘더 포스트’는 결국 오늘 세계 언론에 대한 경종이며 우리 언론에게도 죽비로 다가온다.

(사진=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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