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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념 지향적 정책에 강한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

공약은 선명해야지만 정책은 현실적이어야 지속 가능

<논설위원 斷想>

● 단순성과 선명성이 인식의 촉매

인간의 인식에 가장 편리한 수단은 흑백논리이다. 아주 나쁜 사람 혹은 매우 좋은 사람, 아주 나쁜 정책 혹은 매우 좋은 정책으로 인식하는 게 고민할 것 없이 가장 편하다. 파스텔 톤보다는 선명한 흑백이 상황판단에 들어갈 에너지를 크게 줄여준다.

기사도 그렇다. 주제가 선명한 기사가 제목도 쉽게 나오고 써 나가기도 쉽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단순하고 선명하게 서술해야 환영받는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내다 버린 자식을 '천륜 어긴 아들'이란 제목 아래 흠씬 비난하려 했는데, 좀 더 알아보니 그 아버지가 소싯적에 가족을 학대하고 버린 주인공이었다.

건강보험료와 세금을 체납한 유명인을 실명까지 거론하며 난도질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가 사업에 실패해 단칸방 월세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 숨어 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사는 선명하게 앞부분만 전한다.

달리 말하면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선명한 기사는 위험하다. 소송에도 많이 걸린다. 예전 한때 선명하고 시원시원한 기사로 인기를 끌었던 한 언론사가, 다른 한편에선 그 해 전체 언론사가 걸린 명예훼손 관련 송사의 절반을 차지했던 사실이 그런 방증이다.

● 이념적 지향이 강한 정책일수록 보완책 더 필요

비약일 수도 있지만 정책도 그렇다. 정책은 정권이 정치적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정권은 당연히 자신의 이념에 맞고 지지층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념적 지향이 강한 선명한 정책은 부작용의 그늘도 그만큼 짙다.

親기업 성향이 강한 정책을 폈던 예전 정부는 규제완화와 법인세 인하, 창업 활성화를 통해 성장을 북돋웠다. 하지만 기대했던 투자증가나 고용활성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내수도 살아나지 않아 수출 의존적 상황이 가중되면서 외풍에 약한 경제구조가 고착화 됐다. 게다가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압박하는 관행 역시 사라지지 않아 기업 양극화에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양극화까지 심화됐다.

이를 입증하듯 경제가 1% 성장할 때 고용이 얼마나 늘어나는 가를 보여주는 숫자는 지난 2012년 19만 명 선에서 지난해는 11만 명 선으로 감소했다. 성장과 고용이 따로 간다는 이야기다. 기업이 고용을 늘리고 늘어난 취업자가 소비를 늘려 기업이 커가는 선순환이 깨진 셈이다.

이번 정권에서 내놓는 정책은 이런 함정을 벗어날까. 문재인 정부는 과거 정부와 달리 親 노동계 성향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비정규직 축소,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지난 정권과 선명하게 차별적이며, 하나하나만 보면 모두 서민들과 근로자를 위한 조치다.
최저임금 시위(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여기에 쏠린 현실적 우려는 여전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목적은 장시간 근로에 허덕이는 한국 근로자들을 일중독에서 해방시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게 하고 나아가 한정된 일자리를 나눈다는 좋은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속에 숨은 현실은 어떨까. 일과 생활의 균형보다는 일을 더 하고 그래서 더 받은 임금으로 생계에 보태야 하는 중소 영세기업 근로자가 전체의 절반 이상에 이른다. 그들에겐 일과 생활의 균형은 대기업 근로자의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또 일하는 시간을 나누고 그 시간만큼의 임금을 나눠 다른 이의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도 노린다. 고용은 기업이 하는 것인데 과연 그렇게 해줄까. 예상컨대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들의 낮은 생산성을 이유로 고용확대 대신 노동 강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시도와,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로시간만 줄이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이해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 시위(사진=연합뉴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은 당장 통계로도 우려스런 조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먼저 고용 유형별로 볼 때 주로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1년 이하 임시 계약 근로자 수가 2% 줄어든 것으로 통계청의 1월 고용 동향이 보여준다. 또 업종별 분류에서도 최저임금 대상자가 많이 근무하는 숙박.음식점업에서 1.3%, 도소매업에서 0.8%씩 1년 전에 비해 각각 고용이 감소했다.

이와 관련, 노동연구원은 최저임금을 10% 올리면 최대 1.4%의 고용감소가 유발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모든 정책에 절제와 보완책이 필요한 이유가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논의 작황을 늘리려고 지나치게 보를 쌓으면 하천 생태계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선진 국가들이 기업들의 해외 탈출을 막기 위해 과도한 임금인상의 자제를 유도하고, 근로시간 단축과 더불어 고용 유연성도 함께 높였으며, 일감이 많을 때 몰아서 일하고 다른 때 쉴 수 있도록 탄력근무제와 근로시간 저축제 등을 도입한 것도 바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실효성은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장시간 근로 (사진=연합뉴스)
● 철저한 공약이행이 때로 무서운 이유

정책의 선순환은 모든 정권의 꿈이다. 소득이 높아져 소비를 창출하고 기업 이익과 투자가 증가하며 이것이 다시 고용창출과 소득증대로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우리 경제에서 그런 정책의 선순환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을 선택하되 적절한 보완책을 잘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념에 맞는 정책의 선택은 정권의 권리인 동시에 지지층에 대한 약속 이행이다. 그렇지만 정치 공약이 과대포장과 선동성을 내포하고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철저한 공약이행이 때로 국민들에게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책 실행 단계에선 공약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가늠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된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은 선동과 포퓰리즘의 산물일 뿐이다. 선명성의 함정에 빠진 나머지 보완책을 소홀히 하는 누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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