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더욱 강력해지는 시(習)황제와 차르 블라디미르(Tsar Vladimir)

한반도 주변 4강의 '폭주하는 내셔널리즘'

박진원 기자 parkjw@sbs.co.kr

작성 2018.03.05 18:43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더욱 강력해지는 시(習)황제와 차르 블라디미르(Tsar Vladimir)
요즘 국제정치를 설명하기 위해 제국(帝國)이란 말을 사용할 때 '황제가 통치하거나 했던 국가' 또는 '복수의 지역이나 민족을 포함한, 광대한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 등의 좁은 의미보다는 ‘다른 민족 또는 국민을 통치 또는 통제하는 정치체계로,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인 힘을 통해 통제하기도 한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국제정치, 경제, 군사 등 수많은 분야에서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한반도 주변 4강으로 불리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네 나라는 모두 이런 의미의 제국을 운영했거나 추구한 적이 있는 강대국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들 네 나라를 경제력(2017년 GDP)으로 보면 미국 1위, 중국 2위, 일본 3위, 러시아 10위(한국은 11위)다. 군사력(2017년 Global Firepower 랭킹)으로 보면 미국 1위, 러시아 2위, 중국 3위, 일본 7위(한국은 12위)다.

● 한반도 주변 4강 스트롱맨 전성시대

최근 들어 부상한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강한 국가주의·민족주의(nationalism)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위대하게"를 주창하는 강력한 지도자(스트롱맨, Strongman)들이 통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이루겠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위대한 중국의 부활'이란 꿈(中國夢)을 이루겠다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이 그 주인공들이다. 여기에 북한에는 핵무장을 통한 '강성대국'을 꿈꾸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있다.

● 3월10일 中 시진핑 신시대 개막…3월18일 露 푸틴 4선 확실시

이 가운데 2명은 앞으로 2주 안에 막강 권력을 더욱 강화해줄 날개를 달 전망이다. 오늘(3/5) 개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는 오는 11일 '국가주석직 3연임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삽입하는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시 주석에게 법적으로 절대권력과 장기집권의 문을 열어줄 헌법수정안의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인대 대표(2,980명)의 2/3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는데 지금까지 전인대가 공산당이 제출한 안건을 부결한 전례는 없다. 이번 헌법 수정을 계기로 시 주석이 영구집권은 아니더라도 2028년까지 5년 임기를 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세하다.

러시아는 오는 18일 제6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푸틴 대통령의 4선이 확실시되고 있어 푸틴 대통령은 2024년까지의 집권하게 될 전망이다.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으로 푸틴이 총리로 물러났던 메드베데프 대통령 정부 4년까지 합치면 24년 연속 집권인 셈이다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푸틴이 직접 지명한 후계자로, 당시에도 사실상 최고 권력자는 총리인 푸틴이었다). 24년 집권은 옛 소련 시절을 통틀어 1922부터 1952년까지 30년 이상 소련을 철권 통치했던 이오시프 스탈린을 제외하면 가장 긴 집권이다. 2008년에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에서 6년 중임으로 늘려놓았다. 러시아는 3연임은 안 되지만 중임 제한은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다시 총리를 맡거나 한 임기를 쉰다면 다시 집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종신집권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국의 경우 마오쩌둥 시절과는 경제적 지위 상승 등으로 시대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많이 위축됐기는 하지만 공산당 내 반대세력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도 푸틴이 72살이 되는 2024년 이후 다시 출마할 것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역사적 인물로 기록되기 바라는 푸틴이 다시 총리나 대통령이 되기 보다는 국방위원회나 안보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들어 상왕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전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 폭주하는 자국우선주의…미국·일본도

그럼에도 우려스러운 점은 이들이 "주변 나라들은 어떻게 되든 우리나라만 잘되면 된다"는 자국우선주의·국가주의·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국민 다수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 푸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각종 여론 조사에서 70% 내외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서방 언론들조차 '결론이 뻔한 이번 대선 결과보다는 누가 6년 뒤 푸틴의 후계자가 될 지가 관심'이라고 보도할 정도다. 중국도 구체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없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하다는 게 복수 외교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두 나라 국민 다수가 '위대한 제국 부활'의 꿈을 꾸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일본 민족주의의 부흥을 추구하는 아베 총리는 작년 자민당 당규 개정(총재 연임 제한을 2연임, 6년에서 3연임, 9년으로 개정)과 총선거 승리를 통해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문을 열었다. 지난 2006년 9월부터 2007년까지 9월까지 이미 한차례 총리를 지낸바 있는 아베가 2021년까지 집권할 경우 사토 에이사쿠(1964~1972 2,798일 재임) 전 총리의 기록을 깨고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게 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슬로건으로 당선된 뒤 군사, 통상, 반이민 정책 등 전방위로 미국 우선정책을 전개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벌써 재선 출마를 선언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급진적인 자국우선주의를 비판하는 미국 지식인층과 주류 언론 사이에서도 '경제만 좋다만 트럼프 재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주말 플로리다에서 열린 기금마련 오찬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의 장기집권 추진과 관련해 "이제 그는 종신 대통령이다. 훌륭하다. 우리도 언젠가 시도해봐야 할지 모른다"는 농담을 던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장기집권을 꾀하는 시 주석을 풍자한 농담이었겠지만 미국 대통령으로 적절치 못한 발언이었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파고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