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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위안부 학살' 증거 보고도 "종결" 되뇔 건가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작성 2018.03.01 13:52 수정 2018.03.01 13: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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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전남 해남 시골 마을의 14살 소녀는 트럭이 신기했다. 일본군이 타고 온 트럭은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태워준다는 말에 트럭에 오른 소녀는 방금 전까지 고무줄놀이하던 친구들과 영영 이별했다. 캄캄한 배 밑창에 실려 바다를 건너가 짐짝처럼 부려진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밤마다 달려드는 군인들을 상대했다.

하루는 함께 지내던 언니가 담요에 둘둘 말려들려 나갔다. 며칠째 밥도 못 먹고 누워 앓던 언니를 병원에 데려가나 보다 생각했다. 그곳 군인들은 소녀를 시켜 씻은 피임 도구를 재사용했다. 날이 몹시 추웠던 그 날도 소녀는 "그 더러운 놈의 삭구(콘돔)를 빨러" 개울가로 가다 흙더미 밖으로 삐져나온 '사람 손'을 보았다. 울며 동무들과 언 땅을 팠다. 담요에 싸여 나간 언니였다. 사람을 생매장한걸 확인한 소녀는 그 날로 '위안소'라 불리던 곳에서 달아났다. 중국 하얼빈 등지로 끌려가 2년간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한 고 김윤심 할머니 이야기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66)가 만난 북한 소재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생매장 못지않게 끔찍하다. 함북 경흥 출신의 유선옥 할머니는 많을 땐 하루 15명의 군인을 상대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고 자궁을 적출당했다. 함남 풍산 출신 정옥순 할머니가 목격한 광경은 말 그대로 지옥도다. 칼을 찬 일본군은 위안소 여성들 앞에서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물었다. 질문에 손들지 않은 여성 15명을 못 박은 판자 위로 굴렸다. 피와 살점이 튀었다. 고문을 못 이긴 한 여성이 죽자 그 목을 내리쳐 국을 끓인 뒤 다른 여성들에게 먹였다.

일제가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전쟁 전선이 광범했던 만큼 이 땅의 여성들도 곳곳으로 끌려갔다. 생존자는 이제 할머니가 됐다. 대부분 이미 세상을 떴다. 살아 있는 이들이 지금도 '일본군 성노예 운영'의 잔학상을 증언한다. 패색 짙은 전선에서 일본군은 '특종 군수품'으로 여긴 위안부 여성들한테 옥쇄(집단 자결)를 강요하고 학살했다. 많은 증언과 자료에도 불구 일본 정부만 이를 부정한다.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이 2월 27일 공개한 '위안부 학살' 영상 (▶ 널브러진 시신들…'위안부 학살' 증거 영상 나왔다)은 그래서 중요하다. 연구팀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영상과 사진, 문서는 곧 일제의 전쟁범죄 증거다.
위안부 학살 증거이번에 공개된 19초짜리 영상은 1944년 9월 15일에 촬영됐다. 미국과 중국 국민당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텅충을 탈환한 다음 날이다. 미중 연합군이 '살윈 작전'을 펼친 텅충과 쑹산 등지는 조선인 위안부가 적어도 70명 넘게 있던 곳이다. 일본군이 패주한 텅충 도처엔 발가벗겨진 여성 시신 여러 구가 있었다. 미군 카메라맨 볼드윈이 이 참상을 영상으로 남겼다. 같은 장소를 볼드윈의 사진병 짝 프랭크 맨워랜도 찍었다. 사진 설명엔 "시신 대부분이 조선인 여성들"이라고 기록했다.

강 교수는 또 다른 문서도 제시한다. 연합군이 텅충을 탈환한 뒤 작성한 보고가 그것이다. 보고서엔 텅충 탈환 전날인 "13일 밤 일본군이 조선 여성 30명을 총살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강 교수는 당시 텅충처럼 일본군이 전멸을 각오한 전장에선 "위안부와 민간인들도 함께 살고 함께 죽기를 강요받았다"며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학살은 분명 존재했다"고 말했다.

비참하게 죽어간 영상 속 피해 여성들을 보며 우선 생각하게 되는 건 일본 정부의 태도다. 이 분명한 영상과 사진을 보고도 언제까지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학살을 부정할 것인가? 자료가 공개된 국제컨퍼런스에 참가한 일본의 시민활동가는 "영상을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며 "일본 정부가 이 자료들을 공식 자료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시민사회의 양심을 조금이라도 배울 필요가 있다.

지난 정부의 '위안부 합의' 역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제의 범죄를 밝히는 자료는 계속 발굴될 것이고 진상 파악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피해자를 무시한 채 "종결"을 입에 올린 저 '합의'라는 건 국가로서 얼마나 경솔한 태도였던가. 그 합의에서 "중대한 흠결을 발견했다"면서도 이를 또 어쩌지 못해 온 현 정부의 어정쩡함 역시 딱하긴 마찬가지다. 인류애에 반하는 전쟁 범죄엔 시효가 없다. 증거가 분명한 전쟁범죄에 책임을 따져 묻지 못한다는 건 인간성의 포기가 아닐까.

마침 오늘(1일) 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다.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끝났다' 말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 식언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