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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올림픽 선수들의 9가지 지능

공부하는 김 기자 - ④

[취재파일] 올림픽 선수들의 9가지 지능
한반도를 둘러싼 살얼음판 같은 긴장 속에서도 후끈한 열기를 발산했던 평창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시원스러운 설원과 빙판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 감탄하면서, 그리고 생소하기만 했던 컬링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면서, 우리는 일상의 번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특히 극심한 긴장을 극복하고 자신이 준비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선수들을 볼 때면 인간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빛나는 성취를 해낸 선수들은 어떻게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었을까? 운동신경을 타고난 사람이 열심히 훈련한 결과라고, 평범한 내 삶과는 접점이 없다고 여기며 그들의 성취를 올림픽의 폐막과 함께 기억의 저편으로 흘려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마음과 조금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스포츠를 보는 감동과 재미가 배가 된다.

사람이 가진 다양한 지능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 이론은 그런 공감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잠재력으로 남아 있는지능을 교육과 노력으로 계발할 수 있다고 보는 점에서 다중지능 이론은 운동선수의 지능을 그 사람의 자기계발 노력, 즉 공부와 연결시킨다. '공부 프레임'으로 볼 때, 탁월한 성과를 거둔 운동선수는신체운동지능뿐 아니라 자기성찰과 인간친화 지능 등을 치열한 공부를 통해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으로 해석된다.

● IQ와 다중지능 (MI)

우리는 그동안 운동선수의 지능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운동을 잘하는 것과 지능은 관련이 없다"는 것이 지난 100여 년간 지능이론을 지배해온 IQ(지능지수) 이론의 설명이다. IQ 이론은 사람의 지능이 '필기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문제 해결 능력'이며 저마다 타고나는 고정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인지과학의 연구들은 사람이 여러 종류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이를 IQ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결국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가 뇌과학과 의학, 심리학의 연구성과들을 종합해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8가지 지능이 있다는 다중지능 이론을 주창함으로써 종래의 IQ 이론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1. 언어지능 (Linguistic Intelligence)
–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하는 능력.
2. 논리수학지능(Logical-Mathematical Intelligence)
- 숫자와 규칙, 논리를 다루는 능력
3. 음악지능(Musical Intelligence)
– 음악을 창작, 연주, 감상하는 능력
4. 공간지능(Spatial Intelligence)
– 도형, 지도, 입체 설계의 능력. 길을 찾는 능력도 포함
5. 신체운동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
–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는 능력
6. 인간친화지능(Interpersonal Intelligence)
– 타인을 이해하고 반응하는 능력
7. 자기성찰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
– 자기의 감정과 동기, 욕구를 이해하는 능력
8. 자연지능(Naturalist Intelligence)
- 식물이나 동물, 자연환경을 인식하는 능력

모든 사람이 이런 8가지 지능을 갖고 있지만, 각 지능의 높낮이 분포는 개인마다 다르다. 특정인에게 높게 나타나는 지능을 그 사람의 '강점 지능', 낮게 나타나는 지능을 '약점 지능'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강점 지능과 약점 지능을 정확히 파악하면 자신이 어떤 일에 적합한지 알 수 있다. 각 지능은 그것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람이 성공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강점 지능만으로는 부족하다. 복수의 강점 지능들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확신하며 기뻐하고 있다
●김연아. 이상화. 윤성빈 선수의 강점 지능은?

다중지능 이론으로 볼 때, 운동선수라면 기본적으로 신체운동지능을 강점지능으로 갖고 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올림픽에 참가할 정도로 탁월한 운동선수가 될 수 없다. 혹독한 훈련을 이겨내고, 시합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동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자기성찰지능과 인간친화지능도 상당한 수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한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연아 선수에 대해 "신체운동지능이 유난히 높다. 그리고 인간친화지능과 자기성찰지능이 높은 편인데, 이는 코치, 안무가와의 관계를 원활히 하고 무대에서 덜 긴장하며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에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상화 선수가 뛰어난 신체운동지능을 타고 났다고 해도 부상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올림픽 3연패 도전에 나서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스켈레톤의 윤성빈 선수가 알아주는 사람 없는 고독한 연습 기간을 견뎌내고 아찔한 트랙을 최고의 역량으로 주파할 수 있었던 데에도 자기성찰지능의 역할이 컸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주행코스와 트랙을 읽는 공간지능이 시너지 효과를 더했기에, 두 선수의 빛나는 성취가 가능했을 것이다. 윤성빈 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는 트랙을 타고 내려가면서도 시야가 많이 넓어져서 자세히 보면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까지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훈련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대범한 그도 그동안의 고생을 언급할 때 잠시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얼음판의 체스'라고도 불리는 컬링은 더욱 다양한 지능을 요구한다. 스톤의 궤적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 공간지능과 상대의 다음 수까지 읽어 전략을 세우는 논리수학지능도 높아야 한다. 우리나라 컬링 여자 대표팀이 훈련 과정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해온 것은 컬링에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스 스타트 경기에서 질주하는 이승훈 선수
쇼트트랙이나 매스 스타트 에서는 공간지능이 내가 치고 들어갈 빈틈을 발견하고, 인간친화지능이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읽고 다음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친화지능이라는 번역어는 긍정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를 포함한 듯하지만 영어로는 Interpersonal Intelligence, 그냥 '개인 간 지능'이라는 가치 중립적 표현이다.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방과 치열한 눈치싸움, 몸싸움을 해야 하는 경기에서 그 역할이 빛나는 지능이다.

● 9번째 지능으로 삶의 의미를 묻는다.

앞서 살펴본 8가지 지능에는 윤리적 가치 판단과 관련된 지능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가드너는 처음 이론을 내놓은 지 25년째가 되는 지난 2006년, 새로운 지능 후보를 선보인다.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숙고하는 실존 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을 발견해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가를 예로 들면서, "대중 앞에서 훌륭히 연주하려면 음악지능, 신체지능, 공간지능, 자기성찰지능뿐 아니라 실존지능도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지능을 당장 9번째 지능으로 부르고 싶었지만 자신이 설정한 기준, 즉 이 지능에 정확히 연결되는 뇌의 부위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8과 1/2 지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존지능은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9번째 지능으로 연구되었고, 다양한 교육현장에서 실존지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연기에 앞서서 마음을 모으는 여자 피겨 메드베데바 선수
다중지능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IQ 이론을 맹신하던 심리학계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 교육학계에서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다중지능 이론은 사람이 가진 9가지 지능의 잠재력 실현을 위해 교육과 노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준비한 프로그램을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깔끔하게 해내는 피겨 선수들의 '클린' 연기를 보면서 우리는 갈고닦은 자기성찰지능으로 극도의 집중력과 평정심을 유지하는 그들의 공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운동선수의 공부와 올림픽 정신

공부하는 김 기자는 여기에서 공부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나 발견한다. "공부란 각자가 다르게 타고난 다양한 지능을 계발하여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이다." 운동을 통해 신체운동지능을 높이는 활동이나, 독서와 글쓰기로 언어지능을 높이는 활동, 자기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활동이 모두 공부다. 우리는 올림픽 경기를 통해 그동안 갈고 닦은 선수들의 공부를 확인한다. 이는 올림픽 정신과도 연결된다.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라이벌인 이상화 선수를 배려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안겨준 고다이라 나오 선수는 국내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하는 올림픽 정신은 레이스를 향한 열정과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용기, 서로에 대한 경의"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한 열정과 용기, 경의는 자기성찰과 인간친화, 그리고 실존지능을 계발한 공부의 높은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평창 올림픽은 올림픽 정신이 살아 있음을 곳곳에서 보여줬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온 국민의 지능이 조금씩 높아지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공부하는 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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