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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영철 덫'에 걸린 靑…'호재'로 만들 순 없을까?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작성 2018.02.24 14:08 수정 2018.02.25 14:3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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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김영철 덫에 걸린 靑…호재로 만들 순 없을까?
“북한은 오늘 오전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 명의 통지문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폐막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대표단을 2.25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파견하겠다고 통보해 왔음.”

22일 통일부 발표는 곧바로 정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왜 하필 김영철이냐”는 이야기와 함께, 결국 남남갈등을 노린 북한의 ‘한 수’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뒤이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영철 부위원장은 2010년 3월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과 그해 11월 연평도 포격도발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독자제재 대상에도 올라 있습니다.

● 北 김영철 카드에 '발칵'

북한이 김영철 부위원장을 대표 단장으로 고른 의도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혹여 남남갈등 유도가 목적이었다면 100% 목표를 달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장 천안함 유족을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김영철 수용 불가를 외치며 ‘특단의 대책’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보수 야당도 청와대를 항의 방문하는 등 논란에 가세했습니다.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 관련 부처는 일제히 진화에 나섰습니다. 먼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과거 천안함 사건이 있었을 때 여러 추측이 있었지만 당시 조사결과 발표에서도 누가 주역이었다는 부분들은 없던 걸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역시 국회 답변 과정에서 같은 취지의 해명을 내놨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이 여전한 상황에서 (실제로 모 진보성향 일간지 역시 여전히 천안함 ‘폭침’이 아닌 ‘침몰’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해명은 정부가 마치 북한을 감싸는 듯한 오해를 낳았고 국회 파행과 보수 진영의 강력 반발을 초래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통일부는 23일 브리핑을 통해 “천안함 폭침은 분명히 북한이 일으켰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이 당시 정찰총국장을 맡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전히 "구체적인 관련자를 특정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제를 달긴 했지만 북한이라는 대화 상대와 국내 반발 여론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통일부는 “정부는 상대가 누구이며 과거 행적이 어떤가에 집중하기보다 어려운 한반도 정세 하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인지 여부에 집중하고자 한다"며 "이런 차원에서 정부는 김 부위원장 방남 수용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고 국민 여러분께서도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 중요한 건 '실질적 대화'
남북 대화사실 협상이란 지금의 남북 관계 같은 대치 상황 정도가 아니라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전쟁 중에도 있게 마련입니다. 또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라 정말 무언가 성과를 내고자 한다면 그만한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협상 당사자로 나서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군부 핵심이자 현 통일전선부장인 김영철 부위원장은 협상 파트너로 나쁘지 않은 인물입니다.

솔직히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단순히 평창 올림픽 폐회식에 축하사절로 온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북한 고위급 대표단 파견에 앞서 남북 간 사전 조율이 있었으며 김영철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이 방남 기간 남북 문제에 대해 우리 측과 협의에 나설 것임을 내비쳤습니다.

또 이방카 보좌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고위급 북미접촉은 성사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 대표단 실무자들 사이의 접촉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앨리슨 후커 미국 NSC 한국담당 보좌관 같은 인물에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후커 보좌관은 2014년 11월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석방을 위해 김영철 부위원장 등과 접촉한 전력이 있는 걸로 전해졌습니다.

한마디로 평창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은 명분일 뿐 실제는 남북관계, 나아가 북미관계를 조율할 북한의 특사단이라는 얘기입니다. 청와대와 정부가 처음부터 김영철의 전력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을 늘어놓기보다 실질적 협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입니다.

● 불 붙은 남남갈등…독(毒)도 잘 쓰면 약(藥)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은 이제 기정사실입니다. 그와 더불어 남남갈등도 최고조로 치닫는 모습입니다. 이런 상황이 청와대와 정부에게 호재일 리 없습니다. 하지만 독도 잘 쓰면 약이 됩니다. 이런 남남갈등, 즉 북에 대한 비판적 여론은 남북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는,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정부가 이런 극단적 상황을 치밀한 계산 하에 의도적으로 만든 걸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이 됐다면 최대한 활용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북한과의 대화가 우리 정부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결단임을 강조하고 북한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선 건 전적으로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목적이 남한을 통해 미국과 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국제 사회의 대북 압박 공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전략적 차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해온 정부인 만큼 이제 그 구상을 실행에 옮겨야 할 때입니다. 그게 지금 들끓고 있는 남남갈등을 잠재우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