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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24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베를린까지…'시간여행'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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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베리아는 타임머신이다. 열차를 타고 미래로도 과거로도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바이칼의 알혼섬에 들어가 후지르 마을을 걷게 된다면 자신이 21세기가 아니라 19세기 서부 개척시대에 있는 착각에 빠질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 세기 전 사진에 찍힌 건물들이 아직 건재하다… 도시마다 서 있는 레닌 동상은 100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혁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 1만 킬로미터의 철길이 있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열차를 타고 내린 사람들. 시베리아 횡단 열차만큼 시공을 넘나드는 여행이 가능한 것이 있을까."
 

혹한의 대명사 격인 시베리아 여행기를 가져왔습니다. 철도기관사이자 '철도 덕후''책 덕후'인 박흥수 작가가 쓴 <시베리아 시간여행>입니다. 연해주 끝머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기차로 달리는 여행인데, '시간 여행'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맨 위 읽었던 에필로그의 한 대목대로입니다. 작가는 중간중간 기착지에서 함께 간 동료들을 이끌고 100여 년 전 식민 치하 조국을 떠내야 했던 이들이나 비장한 각오로 나선 열사들의 흔적을 좇습니다. 예기치 않게 북한 노동자들과 어색한 동승을 하다 친해지기도 합니다. 
 
"눈만 마주쳐도 헛웃음을 날리거나 창밖 풍경을 보며 멋쩍음을 달래는 이들이 앉아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남조선과 북조선의 대표가 만났다."

"서울에서 개성이나 평양은 러시아나 중국의 철도 여행 개념으로 보면 코앞을 오가는 것이다. 우리와 북한 노동자들은 기껏해야 20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떨어져 사는 이웃이었다. 휴전선만 뚫린다면 서울 사람이 전주나 대구에 가듯 언제라도 놀러 가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1900년대 초반의 모습을 간직하거나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곳곳에서 이어집니다.
 

"서울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연해주 땅 블라디보스토크에 '서울'이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니. 이곳에 살던 한인들은 고국의 도시 이름을 따와 자신들이 사는 이국의 거리에 붙였다. 나고 자란 땅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이 거리 이름으로 남았다."

"광장 양옆에는 게시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사람들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중 동양인의 풍모를 가진 이들도 적지 않게 보였다. 혹시나 그들의 러시아 이름 중에 김이나 박 같은 조선인의 성이 있는지 살펴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 속 몇몇 눈동자가 어쩌면 조선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심증을 갖게 했다."

"바이칼 순환 열차는 느린 속도로 달렸다. 절벽을 끼고 이어진 선로 변의 나뭇잎들이 유월의 햇살을 받아 초록의 빛살을 한껏 반사했다.... 여운형과 김규식도 이 길을 달렸다. 그들은 바이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바이칼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아무 말이 없었다."
 

철도기관사인 박흥수 작가가 시베리아 횡단을 처음 꿈꾸게 된 건 2000년 경의선 연결 사업이 진행될 때 공사현장까지 열차를 몰고 갔던 경험 덕이었다고 합니다. 막혀 있던 철로는 뚫렸지만 이제는 정치에 막혀 여전히 철마는 달리지 못합니다. 부산이나 서울역에서 북한 땅을 거쳐 모스크바까지 언젠가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장거리 기차여행을 할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흐뭇합니다. 그때는 저도 박 작가처럼 북한 노동자들과 어색하게 만나게 될까요? 
 
*출판사 후마니타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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