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않아도 편치 않은 속을 강남에 사는 50대 지인이 긁어 놓는다. "강남을 떠나고 싶어도 자식들 결혼시킬 때까지는 못 떠난다." 강남에 살아야 그럴듯해 보인다는 말이다. "주택은 단순히 들어가 사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재화"라서 그렇단다.
정부가 응징에 나섰다. '6·19 대책'을 필두로 8·2 대책에 9·5 조치, 10·24 가계부채 대책 등 규제의 융단폭격을 강남에 퍼부었다. 강남 주변 지역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일부 지역도 과녁에 포함됐다.
집값이 죄다 떨어지겠지 싶었다. 꼭 강남이 아니라도 새집으로 옮겨 갈 꿈에 부풀었다. 솔직히 잘하면 강남에 한 채 장만할 수도 있다는 욕심도 났다. 여행이나 갈까, 차나 바꿀까 하던 궁리도 접었다. 통장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얼마가 필요한지 따져 봤다.
하지만 이상하다. 집값이 좀 떨어지는 듯하다가는 금세 다시 올랐다. 어떤 아파트는 가격이 주춤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래도 기다렸다. '거래가 끊겼다니 다급해진 다주택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거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매물을 찾기 어렵다. 투기지역(강남구 등 서울 11개 구)은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양도세를 10%포인트 더 내야 한다. 여기에다 집값의 70%까지 올려 받은 보증금을 빼면 집 팔고 남는 게 없단다. 내놨던 매물도 거둬들인다. 호가는 125㎡(38평)에 25억 원까지 한다. 그래도 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수요자가 한둘이 아니란다.
강남의 다주택 보유자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지역에 여러 채를 보유한 사람들까지 강남 집값 상승을 거든다. 다주택자 규제를 피해 다른 지역의 집을 처분하고 강남의 '똘똘한 한 채'만 사서 보유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질 리가 없다. 없는 사람이 덤벼들 시장이 아니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재건축 아파트를 기웃거려 본다. 역시 매물이 거의 없다. 조합설립인가가 난 이후엔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외로 10년 이상 보유한 1주택자 중에서 5년 이상 거주한 경우만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있다. 집을 팔 필요가 별로 없는 실수요자들이다.
헛수고만 했다. 희한한 동네다. 규제가 그렇게 가해지는데도 집값이 치솟고,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니 말이다. 강남 사람들은 "강도 높은 규제가 나오면 나올수록 집값이 올라간다."며 흐뭇해한다.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수요억제, 거래제한, 보유부담 증대 같은 규제책만 있는 게 아니다. 무주택 서민에게 100만 호를 공급하는 주거복지로드맵이라는 걸 정부가 추진한다고 약속했다. 이 정도의 공급물량이면 집값이 잡힐지도 모른다.
강남 대체지까지 개발한다면 금상첨화다. 강남 집값은 추풍낙엽이 될 게 뻔하다. 단점은 효과가 나타나려면 5~10년은 걸린다는 거다. 그렇다고 적당히 시늉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추진해 주길 바란다. 규제의 핵폭풍에도 옷깃을 놓지 않는 강남 집값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공급의 볕을 내리쬐는 게 최선인 것 같아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