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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남 아파트 사기를 포기한 이유

노흥석 기자 hsroh@sbs.co.kr

작성 2018.02.07 15:31 수정 2018.02.08 09:58 조회 재생수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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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강남 아파트 사기를 포기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참 부럽다. 강남에 집 갖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며칠 사이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집값이 오른다. 가만히 집 깔고 앉아서 잠재이익이지만 떼돈을 번다.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길래 그 복을 누리는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아도 편치 않은 속을 강남에 사는 50대 지인이 긁어 놓는다. "강남을 떠나고 싶어도 자식들 결혼시킬 때까지는 못 떠난다." 강남에 살아야 그럴듯해 보인다는 말이다. "주택은 단순히 들어가 사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재화"라서 그렇단다.

정부가 응징에 나섰다. '6·19 대책'을 필두로 8·2 대책에 9·5 조치, 10·24 가계부채 대책 등 규제의 융단폭격을 강남에 퍼부었다. 강남 주변 지역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일부 지역도 과녁에 포함됐다.
정부 부동산 투기과열지구 지정투기의 종잣돈이 되는 대출을 차단하고, 분양과 청약을 규제하고 재건축아파트 조합원 지위나 재개발 분양권 거래를 제한한다. 양도차익에 무거운 세금을 매긴다. 분양보증 요건도 까다롭게 해 사실상 분양가를 제한한다. 정부의 자세가 옛날과 다르다. 과거에는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대책을 내놨다. 이번에는 고강도 대책을 서너 달 사이에 몰아서 쏟아냈다.

집값이 죄다 떨어지겠지 싶었다. 꼭 강남이 아니라도 새집으로 옮겨 갈 꿈에 부풀었다. 솔직히 잘하면 강남에 한 채 장만할 수도 있다는 욕심도 났다. 여행이나 갈까, 차나 바꿀까 하던 궁리도 접었다. 통장에 얼마나 들어 있는지, 얼마가 필요한지 따져 봤다.

하지만 이상하다. 집값이 좀 떨어지는 듯하다가는 금세 다시 올랐다. 어떤 아파트는 가격이 주춤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래도 기다렸다. '거래가 끊겼다니 다급해진 다주택 보유자들이 매물을 내놓을 거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매물을 찾기 어렵다. 투기지역(강남구 등 서울 11개 구)은 다주택자가 집을 팔면 양도세를 10%포인트 더 내야 한다. 여기에다 집값의 70%까지 올려 받은 보증금을 빼면 집 팔고 남는 게 없단다. 내놨던 매물도 거둬들인다. 호가는 125㎡(38평)에 25억 원까지 한다. 그래도 매물이 나오면 연락 달라는 수요자가 한둘이 아니란다.

강남의 다주택 보유자만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지역에 여러 채를 보유한 사람들까지 강남 집값 상승을 거든다. 다주택자 규제를 피해 다른 지역의 집을 처분하고 강남의 '똘똘한 한 채'만 사서 보유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질 리가 없다. 없는 사람이 덤벼들 시장이 아니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재건축 아파트를 기웃거려 본다. 역시 매물이 거의 없다. 조합설립인가가 난 이후엔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예외로 10년 이상 보유한 1주택자 중에서 5년 이상 거주한 경우만 조합원 지위를 넘길 수 있다. 집을 팔 필요가 별로 없는 실수요자들이다.
연말 분양사겠다는 사람이 몰리니 부동산중개업자는 조합원에게 팔 의사가 있는지 자꾸 묻는다. 안 팔아도 그만인 집주인은 호가만 올려 부른다. 105㎡(32평)은 조금 떨어진 게 32~33억 원이란다. 그러다 한 건이라도 거래가 되면 그 높은 가격이 시세로 잡힌다. 엄청난 가격에 엄두가 안 난다. 초과이익 환수제까지 시행된다니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 재개발 분양권은 입주 때까지 거래가 금지되니 알아볼 필요도 없다.

헛수고만 했다. 희한한 동네다. 규제가 그렇게 가해지는데도 집값이 치솟고,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니 말이다. 강남 사람들은 "강도 높은 규제가 나오면 나올수록 집값이 올라간다."며 흐뭇해한다. 진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수요억제, 거래제한, 보유부담 증대 같은 규제책만 있는 게 아니다. 무주택 서민에게 100만 호를 공급하는 주거복지로드맵이라는 걸 정부가 추진한다고 약속했다. 이 정도의 공급물량이면 집값이 잡힐지도 모른다.

강남 대체지까지 개발한다면 금상첨화다. 강남 집값은 추풍낙엽이 될 게 뻔하다. 단점은 효과가 나타나려면 5~10년은 걸린다는 거다. 그렇다고 적당히 시늉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추진해 주길 바란다. 규제의 핵폭풍에도 옷깃을 놓지 않는 강남 집값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공급의 볕을 내리쬐는 게 최선인 것 같아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