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대선캠프 軍 출신 '코드 인사'…적폐인가, 개혁인가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1.27 09:49 수정 2018.01.27 11: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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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대선 캠프 출신 영관급 군인들의 이름이 군 주요 기관장 후보로 오르내렸습니다. 이들 중 어떤 이는 우여곡절 끝에 마뜩지 않지만 자리 하나를 꿰찼고, 어떤 이는 꿰찼다가 한 달 만에 쫓겨나는 꼴불견을 연출했습니다. 캠프 출신의 한 공군 예비역 장군은 5.18때 공군의 광주 폭격 대기설을 모 방송 인터뷰를 통해 제기하는 뜻밖의 행보를 하더니 역시 기관장 자리 하나를 얻었습니다.

대선 캠프 출신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논공행상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들이 밟아온 길과 지금 자리가 썩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지, 군 안팎에서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려를 불식하고 인사권자의 면을 살리는 길은 하나입니다. 새로 맡은 자리에서 개혁 잘하는 것입니다. 개혁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 '난장판' 국방기술품질원장 인선

국산무기의 메카 국방과학연구소의 신임 소장으로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2명의 예비역 대령이 유력하게 거론됐습니다. 예비역 육군 대령 이창희씨와 예비역 공군 대령 강태원씨입니다. 지난 대선 때 예비역들의 문재인 후보 지지 캠프인 국방 안보 포럼의 주축입니다.

그런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소장 응시자격은 예비역의 경우 장성으로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대령과 강 대령은 규정 상 국방과학연구소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정부가 꼼수를 썼습니다. 예비역의 응시자격을 ‘영관급 이상’으로 확 낮췄습니다. 위인설관(爲人設官)이 아니고 위인설법(爲人設法)입니다.

먼저 이창희 대령을 보겠습니다. 이 대령은 호사가들의 예상과 달리 국방과학연구소에는 노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국방기술품질원이었습니다. 무기의 개발, 도입, 양산, 전력화 전 과정에서 무기와 핵심부품의 품질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쟁쟁한 인사들이 국방기술품질원 제 5대 원장에 도전했는데 역시 캠프 출신 이 대령이 선정됐습니다. 상급기관인 방위사업청은 지난 달 28일 "이창희 예비역 대령이 12월 29일 취임한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 전경순식간에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 7시간 쯤 뒤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취업 심사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임용이 보류됐다"고 알렸습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의 기본인 취업 심사를 건너 뛴 채 취임식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것입니다.

이후 한 달간 인사혁신처가 이 대령에 대한 공직자 취업 심사를 했습니다. 어제(26일) '임용 불가' 결론이 났습니다. 이 대령은 작년 1월까지 방위사업청에서 근무했고 맡은 직책이 획득정책과장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 획득정책과장이라는 자리와 국방기술품질원장이 직무 연관성이 깊기 때문에 전역 1년 만에 취업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적용됐습니다.

자격도 안되는 캠프 출신이 좋은 자리 차지하려다 국방기술품질원 업무 방해하고 청와대와 방위사업청 망신살만 뻗치게 했습니다. 국방기술품질원장 자리는 다시 공모해서 뽑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 강금원 인척,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노리다 부소장 되다

다시 국방과학연구소로 돌아가겠습니다. 결국 국방과학연구소장 최종 후보군에 강태원 대령이 올랐습니다. 순탄하게 강 대령에게 국방과학연구소장 자리가 넘어가는가 싶었는데 청와대는 세간의 눈이 거슬렸습니다. 강 대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씨의 가까운 인척입니다. 강금원씨와의 관계가 강 대령에게는 후광이자 부담이 됐습니다. 강 대령은 지난 달 최종적으로 국방과학연구소장이 아니라 부소장으로 임명됐습니다.

강 대령은 부소장 임명 전까지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몇년간 일했습니다. 선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본부장 2계단을 훌쩍 뛰어넘고 초고속 내부승진을 한 셈입니다. 소장 뽑는다 해놓고 은근슬쩍 부소장 갈아 치운 기괴한 인사 절차입니다. 강 신임 부소장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취약한 안보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국방 안보 포럼를 조직하고 예비역 회원들을 끌어모으는 데 공헌한 실세이기 때문에 '소장 위의 부소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전경군 관계자는 “국방과학연구소가 기술 독점 관행과 업체에게 책임 떠넘기기 악습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며 “국방과학연구소 경력이 일천한, 사실상 외부 인사인 강 부소장이 인정에 휩쓸리지 않고 강력한 개혁을 할 수도 있다”고 촌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신분으로 대선 캠프 활동을 한 것은 정치 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행위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개혁을 해낼지, 원래 목표인 소장 자리 얻는 데 전력을 기울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 '5.18 폭격 대기설' 김도호 장군의 군인공제회 이사장 기용

대선 캠프 예비역들 논공행상의 하이라이트는 이창희, 강태원 대령이 아니라 지난 22일 김도호 예비역 공군 소장의 군인공제회 이사장 기용입니다. 김 신임 이사장의 최근 행적은 모군인 공군에 대한 그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군인공제회 이사장 인사가 뜻 밖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군인들 회비를 기탁받아 운영하는 군인공제회는 지난 10년간 누적손실액이 7,091억원에 달하는 전형적인 말썽 기관입니다. 군인들 돈을 잘 굴려서 군인과 군무원의 생활안정과 복지증진을 도모하는 기관이라는 데 투자만 하면 사고가 나서 금융계에서는 유명한 '마이너스의 손'으로 통합니다. 큰돈을 주무르는 곳이다 보니 비리 사건도 곧잘 터집니다.

이런 기관을 맡은 김 신임 이사장의 기이한 행적이란 이렇습니다. 그는 공군 전투기들의 5.18 광주 폭격대기설을 제기한 주역 중 한명입니다. 모 방송의 메인 뉴스 앵커와 전화 인터뷰를 해서 광주 폭격 대기설에 결정적인 힘을 실었습니다.
군인공제회 신임 이사장 취임식그런데 그는 광주 폭격 대기설의 다른 인터뷰이와 마찬가지로 광주를 폭격할 것이라는 구두 또는 문서로 된 지시를 받은 적이 전혀 없습니다. 김 신임 이사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연습기에 공대지 무장을 장착하고 대기하라니까 '정황상', '느낌상' 광주로 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30년 이상 몸담은 공군을 백성을 폭살할 수 있는 살인집단으로 추락시키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 근거가 경솔하게도 37년 전의 개인적 느낌과 정황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증거는 한톨도 없었습니다.

민간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국방부 5.18 진상조사 특위도 김도호 예비역 소장과 비슷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5.18 때 공군이 광주를 폭격하기 위해 대기했다는 증거, 근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지만 그런 소문들이 무성했고, 어쨌든 정황상으로 그런 것 같다"입니다. "북한의 특이동향이 없었는데 공군 전투기들이 공대지 무장을 하고 대기했으니 전투기들이 뜨면 갈 데가 광주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진상조사 특위도 확보하고 있는 80년 5월의 공군 문서를 보면 코랄씨(Coral sea), 미드웨이(Midway) 등 미 해군 핵항모 2척과 미 공군 에이왁스(AWACS) 정찰기가 5.18 직후 급히 한반도로 전개하고 있었습니다. 요즘도 핵 항모 2척이 한꺼번에 한반도로 오는 일은 잦지 않습니다. 핵항모 2척과 에이왁스는 광주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을 겨냥한 전력이었습니다. 북한이 5.18 때 군사를 움직였거나 적어도 움직일 가능성이 커서 한미가 공동 대응할 준비를 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김 신임 이사장은 정황과 느낌만으로 자신의 모군이 백성을 몰살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걸 보면 양심상 군 생활이 참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별 2개 달았으니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제는 군인들의 돈을 관리하게 됐습니다. 군인공제회의 빈 곳간을 채울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