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젤 회장이 말한 ‘세계 18위’는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세계선수권 탑디비전(1부)에 오를만한 수준'을 뜻합니다. 아이스하키는 국가별 경기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세계선수권에 승강제를 적용합니다. 세계 최고를 다투는 1부 리그는 16팀이 겨룹니다. 여기서 매년 하위 두 팀이 디비전 1A(2부)로 강등되고 그 빈자리를 전년도 디비전 1A의 상위 두 팀이 메웁니다. 그런데 탑디비전에도 실력차가 있고, 1부와 2부 사이 벽도 높다 보니 보통 디비전 1A에서 승격된 팀은 이듬해 다시 떨어지고, 탑디비전에서 강등된 팀은 바로 다시 승격되는 일이 잦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팀을 '엘리베이터 팀'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세계 18위(16+2)는 탑디비전 출전팀 16팀에 이듬해 합류할 수 있는 2팀을 아울러 표현한 것으로 절대적 마지노선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남자 대표팀은 지난해 극적으로 디비전 1A그룹에서 2위를 차지해 사상 처음으로 탑디비전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아이스하키 세계랭킹은 평가전을 포함한 모든 국가대항전(A매치) 성적을 합산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산정법과 달리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성적만 반영합니다. 최근 4년의 결과를 종합해 21위가 됐지만, 지난해 기량만 놓고 보면 18위에 오른 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요건을 갖춘 겁니다.
자신의 철학 3P, 열정(passion), 연습(practice), 인내(perseverance)를 한국 하키에 접목해 평창(Pyeongchang)에 도전하겠다고 한 프리젠테이션에 파젤 회장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파젤 회장은 “한국인의 근성이 마음을 움직였다”고 했습니다. 백 감독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몇 차례 눈물은 보였는데, 첫 번째가 바로 평창 출전이 확정된 2014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이듬해 세계선수권 디비전 1B에서 1A로 승격이 확정된 순간 식당에서 상대팀 결과를 들었을 때였고, 최근은 지난해 탑디비전 진출을 결정짓는 신상훈의 우크라이나전 결승골이 성공한 직후입니다.
대한민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평창올림픽에 나서게 된 건 국제연맹이 혜택을 준 덕분이 아닙니다. 대한아이스하키 협회의 투자와 의지, 무엇보다 대표팀의 노력과 실력으로 당당하게 자동출전권을 따낸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이 그동안 상처 받은 국민에게 ‘ 치유의 올림픽’이 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과정에서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이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들에게도 평창이 치유의 올림픽이 되길 바랍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가 성적을 떠나 이들의 노력을 격려해주고, 도전을 뜨겁게 응원한다면 우리 태극 전사들은 늘 그래왔듯 커다란 감동으로 보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