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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공동정범', 용산 참사 9년…국가 폭력의 잔부

[리뷰] '공동정범', 용산 참사 9년…국가 폭력의 잔부
'2009년 1월 20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용산 참사'는 이렇게 한 줄로만 요약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전·후에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짓밟힌 시민의 생존권, 불법 시위와 과잉 진압이라는 극단의 대립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생략돼있다.

'두 개의 문'(감독 김일란·홍지유)은 2012년 개봉 당시 전국 7만 3천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용산 참사의 객관적인 자료라 할 수 있는 진압 당시 영상, 관련 법정 증언, 방송 언론의 보도, 증인의 목소리, 철거민 변호인단 의견 등 증거들을 바탕으로 진실을 재구성했다.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 공권력의 실제 모습을 그려내 사건에 대한 객관적 접근을 시도했다.

김일란 감독은 해야 할 이야기가 더 남았다고 생각했다. 제작 당시에는 감옥에 있어 들을 수 없었던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제대로 닫는 열쇠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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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혁상 감독과 함께 공동정범(같은 범죄를 계획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죄를 지었을 때, 이들 모두에게 범죄 책임을 인정하는 법 논리)으로 기소돼 죗값을 치른 다섯 명(이충연, 김주환, 김창수, 천주석, 지석준)의 철거민들을 찾아갔다.

그 결과물이 '공동정범'(감독 김일란·이혁상)이다. 계획과 달리 전편과 연속성을 가진 속편이 아닌 스핀오프(기존의 영화, 드라마, 게임 따위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가져와 새로 이야기를 만든 작품)로 완성됐다.

'두 개의 문'이 사건의 실제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했다면, '공동정범'은 사건 아래 놓였던 사람들의 상흔에 주목한다. 외부 고발에서 시작해 내부의 자성에 이르는 넓고 깊은 우물을 팠다.

영화의 영어 제목 '더 렘넌트'(The remnant)는 잔부(殘部)를 뜻한다.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의 망루에서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관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9년, 용산 참사는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망루에서 살아남은 5인은 당시의 내상으로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장이었던 이충연 씨는 출소 후에도 진상 규명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성실하게 경제 생활을 하며 가장 노릇에도 충실한 모습이었다. 반면 용산참사 당시 타지역 철거민으로 망루에 올랐던 공동정범 김주환, 김창수, 천주석, 지석준 씨는 출소 후에도 그날의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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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이라는 세월은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은 벽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주거권과 생존권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연대했으나 현재는 가치관의 차이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 중이다. 용산 철거민과 연대 철거민으로 나눠져 용산 참사의 책임은 물론 진상 규명의 방법론 등 여러 가지 부문에서 견해차를 보였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화재의 원인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강경 진압이 빚은 참사라는 주장과 동시에 자신들이 저질렀을지 모를 실수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이들의 내밀한 고백 그리고 복잡한 갈등 구도를 있는 그대로 담는다. 

이에 대해 김일란, 이혁상 감독은 "신성한 피해자로서 유형화된 시각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는 곧 가해와 피해를 넘나드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독이 자칫 내분으로 비춰질 수 있는 이들의 갈등을 세세하게 비춘 것은 선과 악의 가치 판단을 위함이 아니다. 사건 당시 수사 기록을 은폐하고,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국가가 자행한 또 다른 폭력의 결과라는 것을 시사한다.

용산 참사는 잊혀졌지만 진상 규명이라는 숙제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설령 그것이 누군가에게 불편한 진실이 될 지언정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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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감독은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생존자들이 서로 감정적으로 할퀴고 토해내는 것을 보면서 그게 바로 국가폭력의 흔적이 아니겠느냐 싶었다. 함께 망루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서로 칼을 겨누고 휘두르고 있는데 정작 그런 상황을 만든 국가는 책임을 외면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다 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들은 어떤 피해를 입는가. '국가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인간은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영화이다"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오늘(20일)은 용산참사 9주기다. 진실의 은폐보다 무서운 것은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잔부가 있다. 그 얽힌 타래는 풀어야 한다. 그것이 '공동정범'이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일 것이다.

상영시간 105분, 15세 이상 관람가, 1월 25일 개봉.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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