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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거지소굴'로 민낯 드러낸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

[월드리포트] '거지소굴'로 민낯 드러낸 트럼프의 백인우월주의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1일 여야 의원들과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이민정책을 논의하다 중미와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shithole'이라고 말한 것을 놓고 나라 안팎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배설기관’이라는 속된 말이고, 한국 언론들은 뜻을 살리는 측면에서 ‘거지소굴’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외신에서는 ‘변소, 오물통, 쓰레기 구덩이, 돼지우리’ 등등의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지인은 'shithole'이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 감정을 표현할 때 종종 쓰인다고 했습니다. 비속어임은 분명하나 기분이 아주 좋지 않을 때, 누구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을 때 쓰인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를 공개적으로, 또는 상대방이 있는 곳에서 사용한다면 명백한 모욕이며, 큰 싸움이 날 수도 있다고 지인은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표현의 저속함도 저속함이지만 일국의 대통령이, 그것도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대통령이 공적인 회의 석상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데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 언론이 보도한 트럼프 대통령의 당시 발언 내용과 발언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11일 당일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DACA)라고 불리는 '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폐기 방침에 따라 추방될 위험에 놓인 청년들(일명 '드리머')을 구제하고 대신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확보하려는 주고받기 협상을 위해 여야 의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 민주 여야 상원의원으로부터 양당 합의안에 관한 브리핑을 듣다가 '비자 추첨제'(lottery system, 무작위 추첨을 통한 영주권 발급)를 종료하고, 5만 개의 비자 중 일부를 '임시보호지위'(TPS)로 미국에 거주 중인 취약 이민자 보호를 위해 사용한다는 대목에서 화를 벌컥 냈다고 합니다. TPS는 대규모 자연재해나 내전을 겪은 특정 국가 출신자들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TPS 이야기를 듣다가 중미의 섬나라 아이티와 아프리카를 특정한 뒤 "이런 거지소굴 같은 나라들로부터 왜 이민자를 받아줘야 하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에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사국인 아이티와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는 당장 미국 대사를 소환해 항의했습니다. 아이티는 특히 다음날인 12일이 2010년 대지진이 발생한 지 8주년이 되는 날이라 충격이 더했다고 합니다. 국제기구도 비난에 가세했습니다. 아프리카 50여 개 나라가 가입한 아프리카연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라고, 유엔은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차별주의자(racist)'로 부르며 "충격적이고 부끄러운 발언"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유엔 인권기구인 난민고등판무관실 콜빌 대변인은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환영받지 못하는 나라와 대륙을 거지소굴 사람들이라며 무시할 수는 없다"고 쏘아붙였습니다. 미국 내 여론도 들끓고 있습니다. 공화당 중진들도 "이건 너무 나갔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론 존슨 상원의원은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고, 다른 나라들이 지켜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내가 사용한 표현이 아니다'는 군색한 변명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에는 플로리다주 자신의 골프휴양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니다. 난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난 여러분이 인터뷰한 사람 중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여러분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해명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입니다. 인종차별 발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험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하와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말해왔습니다.

'멕시코 이민자의 상당수는 성폭행범(rapist)이다' '나이지리아인들은 그들의 오두막(hut)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이티 이민자들은 모두 에이즈 보균자다' 등등의 막말 퍼레이드를 해왔습니다. 이런 밑바탕에는 이민자들 때문에 미국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정서가 깔려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은퇴한 미 국무부 관리를 최근 만난 적이 있는데, 이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는 '반(反) 오바마 정서'가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쇠락한 공업 지구인 미 북서부의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와 옛날 프랑스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 지역(지금의 루이지애나주와는 다른, 미 중부를 통칭하는 지역)에선 흑인이면서 최고의 학벌을 갖춘 오바마 대통령을 자신들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다분했다는 겁니다.
미국 국민의례 거부한 미식축구 선수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열광하는 열성 지지자들에게 거지소굴 발언은 속된 말로 먹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CNN은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의 발언이 백악관 안에서는 외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은 미국 프로풋볼 선수들을 "해고하라"고 공격했을 때처럼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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