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지난주 사흘에 걸쳐 우리 군의 최전방 경계 실태를 꼬집는 보도를 했습니다. 지난해 6월, 중부전선에서 귀순한 북한 병사를 심층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문제점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보도 이후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기사에 공감하는 분도 많았지만, 지나친 문제 제기라거나 아예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있든 국가 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건설적인 토론과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방송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풀어볼까 합니다.
▶ [귀순②] '완전작전' 자축했지만…추진철책 넘을 때까지 몰랐던 군 (01.10)
▶ [귀순③] "속옷 차림 병사 뛰어내려와"…최전선 경계근무 문제없나 (01.10)
▶ "러닝셔츠 입고 귀순병 맞은 건 GP 소대장"…전역자 증언 (01.11)
▶ "GP가 '눈'이면 추진철책은 '각막'…뚫린 건 명백한 실수" (01.11)
▶ 추진철책 뚫리면 위험한데…국방부 "보도가 군 사기 꺾어" (01.12)
● 2017년 6월 13일, 북한 병사는 어떻게 귀순했나?
지난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저녁, 지난해 들어서는 처음으로 북한군 병사 한 명이 중부전선에서 귀순했습니다. 군사분계선을 지나 추진철책을 넘고 국군 GP로 접근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요. 귀순 병사와 귀순 유도 작전을 펼쳤던 국군 병사 그리고 우리 군의 설명을 종합하면 당시 사건의 윤곽이 자세하게 드러납니다.
본격적으로 설명드리기 전에 GP, GOP, MDL(군사분계선), DMZ(비무장지대), 추진철책의 개념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 "휴전선 넘기 전 GP 향해 5분간 손 흔들어"
"늦기 전에 귀순 의사를 밝혀야 하잖아요. 그래야 안전하잖아요. 군사분계선을 넘기 전에 5분 동안 귀순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기미도 없더라고요."
● "GP 600m 앞에서 소리치고 톱으로 철책 내리쳐"
"GP가 높고 제가 있는 곳은 낮으니까 빤히 보입니다. GP 감시대 꼭대기에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거든요. 저를 빤히 보는 거 같아요. 손을 흔들어도 아무런 기미도 없고 (중략) 쇠톱으로 '챙 챙 챙 챙' 하는데도 못 들었거든요."
● 추진철책 통문 발로 차니 틈 벌어져…귀순병의 '월책'
"남쪽으로 사람들도 보이고 차들도 보여요. 왔다 갔다 하는 것이요. 그래서 한 3분 정도 구경했습니다. 한참. 그 다음에 GP로 올라가자 하고 올라갔습니다."
A씨가 철책을 넘은 뒤 걸은 길은 GP 동쪽으로 난 보급로였습니다.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섬과도 같은데, 해당 GP에는 넓고 평평한 보급로가 추진철책의 보호를 받으며 동쪽으로 뚫려 있었습니다. A씨가 이 길을 따라 50m 가량 걸어간 뒤에야 국군은 이상 징후를 알아챘습니다. 오후 7시 45분, GP 동측 보급로 200m 지점에서 중거리 감시카메라가 A씨를 최초로 포착한 겁니다. A씨는 GP를 향해 150m 가량을 더 걸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A씨는 이렇게 기억합니다.
"감시병하고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감시병 둘이 이야기를 해요. 날 보는데 가만히 있어요. 너무 조용하니까. 빤히 보면서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지금 북한군 병사인지 국군 병사인지 분간을 못하겠더라고요."
● 러닝셔츠 차림의 GP장이 가장 먼저 뛰어 내려와
"우당탕 이렇게. 방탄 헬멧도 안 쓰고 반팔만 입고 총만 들고 나왔어요. 한 명 나왔습니다. 한 명. 국군이 얼었죠. 말 못하더라고요. 총부리 겨누고. '누구냐. 누... 누구냐' 이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귀순하러 왔다' 말하니까 얼어 가지고 말을 못해요. 믿어지지가 않으니까. 그 사람하고 3분 정도 지체했는데, 그제야 안에서 우르르 싹 나오더라고요. 헬멧 쓰고 총 다 쥐고 완전무장하고 나오더라고요."
GP장이 A씨의 신원을 파악하는 동안 완전무장한 병사들이 내려와 GP장을 엄호했고, 오후 7시 54분 귀순 유도 지침에 따라 A씨를 GP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 쟁점1. 북한군이 GP 코앞에 올 때까지 우리 군은 왜 몰랐나?
A씨가 북한 초소를 빠져나온 건 대략 오후 5시쯤입니다. GP 동측 보급로 200m 지점에 진입한 시간은 오후 7시 45분이니까 대략 3시간 동안 우리 군은 A씨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A씨는 당시 여름이어서 날이 밝았고, GP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앞이 잘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은 그날 비가 내리고 안개가 심하게 껴 물리적으로 북한군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낙뢰 때문에 TOD(열영상장비)와 CCTV같은 감시 장비들을 모두 꺼둔 상태였고, 증가초소를 운영해 경계 근무에 만전을 다했다고 밝혔습니다.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군은 아무 장비도 없이 육안으로 GP 상태를 살피며 코앞까지 접근한 반면, 우리는 포대경으로 여러 명이 감시를 했는데도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군을 발견 못했다는 게 경계 근무를 선 장병들의 근무 소홀 문제로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GP 근무 경험이 있는 예비역들은 경계 근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비무장지대에는 사람 키보다 높은 잡초가 무성하기도 하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앞이 잘 안 보인다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의 움직임을 놓친 게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A씨는 애초 귀순을 결심한, 총을 휴대하지 않은 병사였습니다. 불순한 목적으로 은밀하게 침투한 북한군이 결코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A씨는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부터 자신을 노출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GP 600m 앞에서는 소리를 지르며 쇠톱으로 철책을 내리쳤습니다. GP 250m 앞에 있던 추진철책 통문을 발로 차 틈을 만들었고, 그 틈을 빠져나오기까지 했습니다. 더구나 해당 지역은 귀순 사건 두 달 전에 발생한 대형 화재로 풀이 많이 탄 상태였습니다. 증가초소까지 운영했다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경계와 감시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A씨는 추진철책이 뚫리지 않았다면 철책 앞에서 숙박을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2015년에 발생한 ‘숙박귀순 사건’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겁니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A씨가 통문을 발로 걷어찼는데 너무 쉽게 문이 기울며 사람이 빠져나갈 틈이 생긴 겁니다. A씨는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철책을 넘었습니다.
추진철책이 뚫렸다는 SBS 보도에 대해 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추진철책은 GP 경계 작전을 보강하기 위해 설치된 ‘보조 시설물’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물론 GP와 GP를 잇는 추진철책이 GOP 철책과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GOP는 적의 침투에 절대 뚫려서는 안 되는 남방한계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추진철책은 뚫려도 되는 단순 장애물이라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2015년 8월 4일에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북한군이 경기도 파주에 있는 추진철책 통문에 목함지뢰 3발을 몰래 심어 놓았습니다. 이 지뢰가 폭발하면서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던 부사관 두 명이 각각 두 다리와 오른쪽 발목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실상 추진철책이 북한군에 뚫려 참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후에도 추진철책이 위협 받는 상황은 수차례 반복됩니다. 2년 전 서부전선에서는 추진철책이 가로 30cm, 세로 10cm가량 훼손돼 논란이 일었고, 지난달 강원도 화천에서는 추진철책 통문이 열린 채 방치된 게 발견돼 군이 진상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북한군이 추진철책에 달린 귀순 유도벨을 뜯어 달아나는 일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군의 설명과 달리 당시 GP에 근무하며 귀순유도 작전에 참여했던 예비역은 추진철책을 중요한 방호선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또 당시 추진철책이 뚫린 점에 대해서는 분명한 실수였다고 언급했습니다.
"추진철책 통문 틈 사이로 북한군이 들어왔다고 저희는 알고 있는데 그건 분명 저희의 실수가 있었고, 완전히 꽉 잠그지 않은 거는 저희 잘못도 있었다고 봅니다. (중략) 추진철책은 저희를 수호할 수 있는,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무장지대 자체가 안전한 곳이 아니고 솔직히 위험한 곳이거든요. 말이 2km지 솔직히 뛰어오면 10분도 안 걸리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목숨을 지켜줄 수 있고 저희의 안전성을 더 보장하는 곳이죠. (중략) GP가 육군의 '눈'이라고 하더라고요. 추진철책은 눈을 보호하는 '각막' 같은 존재라고 저는 얘기하고 싶네요."
● 쟁점3. GP장은 왜 완전무장하지 않은 상태로 수하했나?
북한군이 GP 동측 200m에서 처음 발견된 시간은 우리 군이 개인 정비를 하는 취약시간대였습니다. GP장은 편한 복장으로 병사들을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상이 걸렸고, 동쪽 통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간부가 GP장이었던 바람에 급하게 소총만 휴대한 채 북한군을 맞이한 겁니다. 당시 GP장의 복장은 상의가 반팔 러닝셔츠 차림이었습니다. 방탄 헬멧과 방탄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A씨에게 수하를 시도했습니다.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더라면 완전무장을 하지 않은 위험한 상태로 북한군과 마주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최선의 합리적인 조치였다는 군의 해명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되어 있더라도 실전에서는 누구나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어찌됐든 GP 근무 장병들은 인명 피해 없이 A씨를 안전하게 GP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는데 성공했습니다.
다만 취재 과정에서 군이 보여준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맨 처음 해당 내용을 취재해 군에 확인을 요청했을 때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다음 날 더 구체적으로 취재해 다시 물었더니 이번에는 ‘군의 공식적인 기록에는 그런 내용이 담겨있는 게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록에는 아예 GP장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귀순병과 최초로 수하를 한, 그것도 GP를 지휘하는 GP장에 대한 언급이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지금도 의아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보도가 나가고 나서야 군은 결국 사실관계를 인정했습니다. 처음부터 군이 당당히 취재 내용을 인정하고 당시 상황을 정확히 설명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제 군은 귀순유도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최전방 안보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군의 병력은 점점 줄어듭니다. 국방개혁으로 2022년까지 13 만 여명의 병력이 육군에서 감축될 전망입니다. 당연히 GP와 GOP 근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사건처럼 최전방 철책이 유린당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군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현대화된 과학화 감시 장비를 더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현 병력으로는 비무장지대를 꼼꼼하게 감시하는 게 어려우니 예산을 더 투입해 감시 장비를 늘려야 한다는 겁니다. 첨단 경계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으면 우리 군의 대응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아예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켜 유사시 기동 방어를 할 수 있게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의견입니다. 적이 도발하면 과감하게 밀고 들어가 빠르게 대응하고 빠지자는 겁니다. 군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논하기 전에 당장 보완할 점도 눈에 띕니다. 이번 보도 이후 GP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호소해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최전방 근무 장병들의 근무 여건과 함께 추진철책을 다시 점검하는 건 우리 군의 시급한 과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을 최전방 국군 장병들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취재파일][귀순병의 증언②] "북한군 7할은 귀순 고민…北 정권 오래 못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