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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하나만 생각하는 '남북 단일팀'…평화는 어디에?

주영민 기자 naga@sbs.co.kr

작성 2018.01.13 17:20 수정 2018.01.14 13:50 조회 재생수1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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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사진은 2017년 강릉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디비전Ⅱ 그룹 A 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한 모습. 

지난해까지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며 세계 평화를 위협하던 북한이 새해 첫날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힌 이후 분위기는 급반전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북한의 참가를 환영하면서 평화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평창동계올림픽 흥행에는 파란불이 커졌습니다. 대립보다는 대화를 앞세워왔던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북한 품기'에 나섰습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개폐회식 남북공동 입장 추진'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추진' 소식이 나오면서 평화올림픽을 향하던 박수 소리는 잦아들고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4년 동안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을 짓밟는 행위", "스포츠맨십을 헤치는 정치 개입"이라며 '남북 단일팀 추진'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당사자인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었습니다. 연말연시에도 해외 전지훈련으로 구슬땀을 흘려온 선수들은 공교롭게도 정부가 '남북 단일팀 추진' 소식을 밝힌 지 2시간 뒤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들뜬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켰을 때 슬픈 충격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선수들 목소리에는 실망과 불안감, 분노가 섞여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아무런 의견과 노력이 반영되지 않은 채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게 많이 실망스럽고, 당황스럽습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고, "방금 들어서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기분이 안 좋죠. 평창만 보고 달려 왔는데..."라며 불안감에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또 "슬픈 것을 떠나서 스포츠를 순수하게 바라봐 줬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로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엔트리 확장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아이스하키 올림픽 엔트리 23명에 북한 선수들을 위한 특별 엔트리를 추가할 예정이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의 피해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국제아이스하키 연맹과 다른 참가국들이 모두 양해를 해서 설사 엔트리가 확대된다고 해도 우리 선수들은 피해를 피할 수 없습니다. 남북 단일팀을 위해 전체 엔트리를 30명으로 늘린다고 해도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엔트리는 22명으로, 변할 수 없습니다. 단일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22명 안에 반드시 북한 선수들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제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구상하는 '남북 단일팀'은 '단일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합니다. 지금까지 남북 단일팀은 1991년 탁구와 축구에서 두 번 성사됐습니다. 남과 북이 실력이 비슷한 상황에서 5대5의 비율로 합쳐졌습니다. 축구 단일팀의 경우 남쪽 9명, 북쪽 9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남과 북의 실력차이도 상당할 뿐 아니라 합류하는 북한선수 규모도 6~7명 정도가 될 예정입니다. 전체 엔트리의 20% 정도입니다. 한국 대표팀에 북한 선수 일부를 끼워주는 수준인 '무늬만 단일팀'일 뿐입니다.

'남북 단일팀'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한반도기를 달고 출전합니다. 그런데 평창올림픽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출전합니다. 단일팀 코리아가 별도의 참가국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성적이 어떻게 남느냐도 문제가 됩니다.

대한아이스하키연맹은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고 해외 입양아와 외국 선수를 귀화시키면서 올림픽 꿈을 키워왔는데, 단일팀으로 경기력 저하가 뻔한 상황에서도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훈련 강도를 높여 왔던 우리 선수들과, 준비할 대회도 없었던 북한 선수들의 실력 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어 단일팀의 조직력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남북 단일팀'에 집착하는 건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북한에게 '응원 거리'를 마련해 주려는 의도도 있을 겁니다. 스포츠로 물꼬를 터서 정치적인 화해 분위기를 만들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겉으로 내세우는 평화가 남길 내부의 상처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평화(平和)는 평온하고 화목한 상태를 말합니다. '인권 존중'을 기본으로 '갈등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포츠는 정치에서 독립할 때만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만 생각하는 '남북 단일팀'이 평화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