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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4명의 신생아, 4명의 아버지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8.01.08 15:46 수정 2018.01.08 17:1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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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4명의 신생아, 4명의 아버지
● 아버지가 유족이 되기까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 사망사고’. 지난 3주간 고유명사처럼 불린 명칭입니다. 숨지기 전 신생아 4명은 각자 다른 이름을 가진 한 명, 한 명의 아이였습니다. 태어난 날도 몸무게도 생김새도 달랐던 4명의 아기가 한 시간 반 만에 같은 장소에서 숨지면서 하나의 사고로 불렸습니다.  

신생아의 아버지 4명은 서로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직업이 달랐고, 성격도 달랐습니다. 한 아버지는 시종일관 어두운 얼굴로 말을 아끼는가 하면, 다른 아버지는 얼굴이 밝아졌다가도 아이를 떠올리면 슬픔이 드러나고, 병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한 아버지는 침착하지만 전문적인 용어를 들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로 모인 계기는 사망사고 다음날, 병원의 첫 언론 브리핑입니다. 네 아버지는 공통적으로 병원이 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없이 브리핑을 통해 사과 혹은 해명을 하는 장면에 분노했습니다. 대응은 달랐습니다. 기사를 통해 브리핑 사실을 알게 된 한 아버지는 집을 뛰쳐나가 브리핑 장으로 향했습니다. 다른 아버지는 가족에게서 브리핑 내용을 전해들었고, 또 다른 아버지는 생방송으로 브리핑을 봤습니다.

담당 주치의는 사망한 아이들이 원래 위중한 아이들이었다는 뉘앙스로 브리핑을 했고, 아버지들은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습니다. 서로를 모르던 이들은 연락처를 구해 모이기 시작했고 ‘신생아 사망사고 유족’이 됐습니다.

●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기의 마지막

아버지들에게 아이와 마지막 모습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잠깐이나마 행복했던 순간을 말하면서 미소를 띠다가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 생각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사고 직후 의료진의 대처와 태도에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A군 아버지
"처음 830g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와서 1670g까지 몸무게가 늘었어요.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었고 병원에서도 상태가 좋다고 말했어요.

아내가 사고 당일 점심 면회 때 가보니 아기가 심박이 불안정했어요. 간호사에게 의사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의사가 도착하지 않은 채 면회시간이 끝났다며 나가야만 했어요. 

아기는 4명 중 처음으로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 끝에 다시 심박이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때는 다른 아기들이 심정지가 와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아기한테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아기는 다시 심정지가 왔고 숨졌습니다. 아이가 숨진 뒤에 처음으로 아이를 안아봤어요."

-B양 아버지
"B양은 2kg이 넘어 네 아이 중에서는 제일 크고, 제일 일찍 태어났습니다. 퇴원 권유를 세 번 받았어요. 내일 퇴원한다고 해서 퇴원 준비를 해서 간 적도 있어요.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하루 이틀 연장하던 차였는데.

사고 당일 오후 5시20분쯤 전공의라는 사람한테 전화가 왔어요. 애기가 혈소판이 3만 이하로 떨어졌다, 수혈을 해야 하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가보니까 아기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어요. 아기가 숨지고 제가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네 아기를 심폐소생술 하고 있었던 거에요. 이건 너무 이상하다 생각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저희 와이프가 주치의한테 물어봤어요. ‘우리 아기가 갑자기 왜 이래요? 갑자기 왜 죽어요?’
그러니까 주치의가 뒤에 서서 ‘죽을 수 있죠. 미숙아니까요.’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게 계속 귀에 맴돌아요. 저는 정확히 그 소리가 아직 귀에 계속 들려서 잠을 못 자요. 그렇게 끝났어요 저희 아기는."

-C군 아버지
"C군은 사고 전날 2.05kg으로 2킬로그램을 넘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이제 됐구나 해서 기분 좋게 캥거루케어를 할 정도로 건강했어요. 가슴에 옷을 열고 직접 안아보는 캥거루케어를 해서 꼼지락꼼지락하는 걸 토닥이고 노래 불러주고.

주치의가 왔길래 C군 괜찮나요 물으니 ‘다 좋습니다, 수유량도 20g을 넘겼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또 ‘12월 중에 퇴원 할 수 있겠네요’ 하더라고요. 그날 퇴원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사고 당일 점심때 면회가서도 컨디션이 좋아서 간호사가 캥거루케어 하실 건지 물어보길래, 옷이 준비가 안돼서 못했어요. 그날 저녁에도 면회 갔는데 다른 아이 상태가 안 좋아서 면회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아프다는 다른 아이(A군) 부모님은 40일 넘게 병원에 있는 동안 얼굴을 뵀던 분이었어요. 와이프랑 손잡고 저 아기가 잘 됐으면 좋겠다 하면서 집에 갔거든요. 저녁 먹고 TV보고 있는데 8시 45분에 전화가 왔어요. 간호사가 아기가 심장이 느리게 뛴다. 심폐소생술 들어간다고. 빨리 와달라고."

-D양 아버지
"12월 8일에 쌍둥이로 태어났어요. 쌍둥이 둘 다 여기 중환자실에 있었고. 오히려 선둥이인 남자아기가 검사했을 때 몇 가지 미숙아한테 나오는 증상들 보였는데, 후둥이인 D양이 더 건강했어요 검사결과에 아무것도 없고. 치료는 황달 때문에 빛 쬐어주는 거 하고 있었거든요. 되게 기분이 좋았죠. 아기들이 진행과정이 빠르니까.

사고 당일 병원에 가서 4명이 차례로 숨지니까 의료진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거에요. 그냥 가만히 서 있어요.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고 병원장도 뒤에 서 있고. 밤 11시 반에서 12시 사이쯤에 저희 아버지(D양 할아버지)가 의사에게 설득을 하더라고요. 중환자실에 있는 아기들 다 죽을 수도 있다. 병원을 옮기던지 해야한다고. 의료진은 후속조치를 한다는 느낌이 아니고 다들 황당해서 서있고. 그제야 전원이 시작돼서 남은 쌍둥이 아기를 새벽 1시 넘어서야 옮겼어요.

숨진 아기는 제가 태어나서 한 번도 못 안아줬어요. 심지어 제가 장갑 끼고서라도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균 같은 게 안으로 들어 갈까봐 걱정돼서 아무것도 안 했었어요. 항상 먼 발치에서 보던 애니까. 숨진 뒤에야 와이프도 한번 안아보고 싶다고. 아기를 잡고 계속 그때 죽은 애를 붙잡고 안고 있었습니다."

● 유족으로 남은 아버지들

첫 브리핑으로 유족의 항의가 있은 뒤 병원 측은 한 차례 면담을 제안했지만 파행됐습니다. 유족 측이 사고 경위에 대한 질의서를 보냈지만 병원이 사실상 거부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사고가 없었더라면 각자의 아버지를 조금씩 닮았을 4명의 신생아는 이제 조그만 몸으로 두 살을 맞았을 겁니다. 4명의 아버지는 아직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유족’으로 불리며 일상을 되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