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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혀" "조금만 참아" 아빠와 1시간 통화한 딸 끝내 숨져

"숨 막혀" "조금만 참아" 아빠와 1시간 통화한 딸 끝내 숨져
"6층인데 앞이 안 보여. 문도 안 열려", "조금만 참아. 소방관이 왔으니까. 조금만 참아. 힘드니까 말하지 말고. 아빠 말 듣고 조금만 참아" 

지난 21일 오후 4시 10분 충북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에 갇힌 딸 김 모(18)양과 통화를 하던 아버지의 가슴은 타들어갔습니다. 

아버지는 1시간 2분 15초동안 전화를 끄지 않고 계속 통화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딸의 기침과 신음뿐이었습니다. 

오후 5시 12분쯤 갑자기 전화가 끊겼습니다. 

애가 탄 김 씨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김양은 더는 받지 않았습니다. 

김 양은 결국 8층 현관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대학 입시가 끝난 뒤 찾아갔던 스포츠센터에서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화마가 엄습하는 고통의 순간을 겪는 딸의 마지막 순간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느꼈던 아버지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딸 앞에서 오열했습니다.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지난 21일 스포츠센터에 갇혔다가 숨진 희생자들과 마지막 통화를 했던 유족들의 기억에는 아직도 8일 전 참사 당시의 악몽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시뻘건 불길이 건물을 휘감고 시커먼 연기와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던 화재 현장을 지켜보며 발만 동동거려야 했던 유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화로 생존을 확인하고 "곧 구조되니 조금만 버텨라"라고 응원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유족대책본부는 오늘(29일) 유족들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통화 내역과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희생자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진실을 규명해 달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들이 공개한 통화 내용에는 화재 당시의 긴박함, 희생자들의 절박함, 유족의 다급했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층 여성 사우나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신 모(53)씨는 지난 21일 오후 4시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여보 불났어. 빨리 119에 신고해 줘"라고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오후 3시 57분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신 씨는 생존해 있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통화가 안 되는가 싶더니 오후 4시 6분 남편이 건 전화를 신 씨가 받았습니다. 

그의 첫 마디는 "죽겠어, 살려줘"였습니다. 

그러면서 "목욕탕 화장실 쪽 흡연실에 있어. 공기가 부족해 숨이 막혀. 여보 빨리 와"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신 씨가 남편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전화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들은 것은 신 씨의 목소리가 아니라 "숨 막혀", "아, 뜨거워", "숨을 못 쉬겠어", "문이 안 열려", "연기가 들어와" 등 2층 여성 사우나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애타는 목소리뿐이었습니다. 

2층에서 목숨을 잃은 채 발견된 정 모(56)씨도 오후 4시 1분 전화로 남편에게 화재 발생 소식을 전했습니다. 

5분 뒤인 오후 4시 6분 다시 통화가 되자 정 씨는 "빨리 와. 연기가 많아 앞이 안 보여, 숨을 못 쉬겠어"라고 말했고, 10분 뒤 "죽겠어. 빨리 어떻게 해 봐"라고 얘기한 뒤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7층 출입문 부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최 모(46)씨가 남편의 전화를 받은 시간은 오후 3시 56분입니다. 

당시 최 씨는 남편에게 "여보. 불났어 큰일 났어"라고 말했습니다. 

2분 뒤 남편이 다시 전화를 걸자 "여보 옥상으로 가고 있어"라고 말했고, 오후 4시에도 "옥상으로 간다"는 말을 남긴 채 서둘러 계단을 올라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오후 4시 19분까지 7차례나 남편이 건 전화를 최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2분 뒤 전화가 연결됐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최 씨의 남편은 1시간 17분 52초 동안 전화를 끄지 않고 부인의 이름을 불렀으나 전화기에서는 최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유족들은 이런 통화 내용을 토대로 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살 수 있었는데 늑장 대처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닌지 억울한 점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유족대책본부 관계자는 "희생자들의 사망 시점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며 "진실을 규명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망 시점과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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