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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18 이재성과 한국 축구…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재성
2017 K리그 가장 빛난 별, 이재성은 생애 가장 바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2년 만에 전북 우승을 이끌어 행복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지난달 축구대표팀 훈련에 소집됐습니다. 동아시아대회 사상 첫 2연패를 이끌고 돌아온 게 지난 17일. 이제 휴가는 열흘 남짓입니다.
 
넉넉한 상복 덕분에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11상을 받았고, 최우수선수로도 꼽혔습니다. 지난 11일에는 선수들이 꼽은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동아시아대회에서 또 우승컵과 MVP를 차지했습니다.
 
남은 휴가도 쏜살같이 지나갈 겁니다. 홍명보 장학재단이 주최하는 자선축구경기, 프로농구 시구 등 뜻깊은 활동도 해야 하고 예의 바른 선수답게 여기저기 감사 인사를 다닐 계획도 빡빡합니다. 그래도 2017년, 한국 축구를 정리하는데 ‘이재성’을 빼놓을 수 없어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피곤할 법도 한데, 서울에서 만난 이재성은 무척 표정이 밝았습니다.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하는 이재성

"정말 잊지 못할 한 해예요.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관심과 응원 속에 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처음이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 불행했던 시작…예고 없이 찾아온 역경
 
이재성의 2017년은 역경을 극복하고 이룬 결과라 더 특별합니다. 시즌 개막 직전이었던 3월, 부상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팀 훈련 중 동료와 경합하다 정강이뼈가 부러졌습니다. 프로 데뷔 후 첫 골절상이었습니다. 이재성은 “가족 모두가 개막전을 보러 오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얘기를 전하기가 참 어려웠다”고 그때를 떠올렸습니다.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없어 더 힘들었습니다.
 
“축구가 가장 좋고, 제 꿈인데, 축구를 못하니까 정말 속상하더라고요.”
 
5월에야 복귀해 막 컨디션을 끌어올리려는 데 이번엔 대표팀에서 벽에 부닥쳤습니다. 2015년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자마자 뉴질랜드전(1:0승)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펄펄 날던 이재성이었지만 대표팀 추락을 막지 못했습니다. 6월 카타르(2:3 패)에 충격패를 당했고, 자신을 발탁한 슈틸리케 감독은 경질됐습니다. 최악은 그 이후였습니다. 신태용 감독이 부임했고, 이재성은 한국 축구의 운명이 달린 8월 이란(0:0무)과 최종예선에 다시 선발 출전했지만 후반 가장 먼저 교체돼 나왔습니다. 73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힘과 기술이 좋은 이란 선수들에 밀려 어떤 인상적인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재성과 한국 축구를 향한 팬들의 실망이 절정을 향했습니다.
2017년 한국 축구와 이재성은 최악의 시기를 딛고 반등에 성공했다.
“대표팀이라는 자리에 정말 대단한 무게감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힘들었죠. 이란 선수들과 처음 뛰어봤는데, 그렇게 힘이 좋을지 몰랐어요.”
 
‘축구가 가장 좋다’는 축구 선수에게 ‘공이 두려운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지다 보니 쉬운 패스만 하려고 했고, 몸도 움츠러들었습니다. 공을 받기 두려워졌습니다. ‘실수로 이 공 한 번 처리를 잘 못 하면 또 어떤 말을 들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 반전의 10월…2017년의 별이 되다!
 
이재성은 10월부터 반전 드라마를 썼습니다. 22일 강원전(4:0승) ‘도움 해트트릭’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더니 29일 제주와 경기(3:0승)에서 팀의 우승을 결정짓는 골을 터뜨렸습니다. 기세를 모아 11월 5일 울산전(2:1승)에선 1골 1도움 원맨쇼를 펼치며 K리그 MVP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활약은 대표팀으로 이어졌습니다. 콜롬비아전(2대1승)과 세르비아전(1대1무)에 모두 선발 출전해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이달 동아시아대회였습니다. 중국과 개막전(2:2무)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시동을 걸었고, 한일전 시원한 4대 1 대승을 이끌며 2017년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자신감’을 되찾은 덕분이었습니다. 
 
“신태용 감독님이 부임한 뒤 가장 애쓴 부분이 선수들 자신감을 찾아주는 일이었어요. 실수해도 좋으니까 마음껏 해보라는 말을 반복하셨죠. 말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축구가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그래도 결국엔 축구가 다시 답을 주더라고요. 운동을 하면서 다시 내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축구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이재성은 최근 대표팀의 ‘디테일’이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경기에 나가기 전 전술적 준비가 철저히 이뤄지고, 선수들이 이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자신감이 붙었고 팀이 더 단단하게 뭉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축구 반등의 신호탄을 쏜 지난달 콜롬비아전
● 2018년,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이재성에게도, 한국 축구에도 2017년보다 훨씬 더 중요한 2018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 꿈 가운데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있기 때문에 내년은 하루하루가 기회이자 위기가 될 것 같아요.”
 
겨울 이적 가능성은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월드컵에 ‘올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이란전에서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코어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생각의 속도를 높인다면 눈에 보이는 근육량을 크게 늘리지 않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난달 콜롬비아전과 세르비아전에서 얻었습니다. 힘으로 맞서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에 수비가 붙기 전 먼저 움직이고 기술적으로 공을 처리하는 게 핵심입니다. 자신도 한국 축구의 팬으로서 ‘16강 진출’을 간절히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월드컵을 잘 치른다면 다음 꿈은 유럽 무대 진출입니다.
 
“더 큰 무대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어요. 제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가 커요.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도발적인 질문을 이어서 던졌습니다.

-스웨덴, 멕시코, 독일...하나같이 우리보다 강한 팀들인데, 16강 진출, 그전에 1승이 가능할까요?

“제가 월드컵 경험도 없고, 아직 유럽팀과 많은 경기를 뛰어보지 못해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저희도 장점이 많고, 투지가 있기 때문에 분명히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똘똘 뭉쳐야 해요. 많이 응원해주셔서 스웨덴전만 잘 치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 스피드가 빠르지도 않고, 체격도 너무 왜소한데, 유럽에서 통할까요?
 
“저도 같은 궁금증이 있어요. 크고 힘이 세고 빠르기까지 한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과연 제 플레이가 통할까 의문이죠. 하지만 저 같은 유형의 어린 선수들도 많거든요. 그런 선수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전의식을 가지고 한 번 부닥쳐 보고 싶어요.”
동아시아대회 중국전 골을 터뜨리는 이재성
이재성의 대답을 들으며 영화 명량(2014)의 명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조선 수군을 걱정하는 아들 이회에게 이순신은 말합니다.
 
“독버섯처럼 번진 두려움이 문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다.”
 
2017 한국 축구의 위기는 어쩌면 팀 안에 독버섯처럼 번진 두려움 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2018년 한국 축구가 상대할 적은 그동안 만난 적보다 훨씬 강한 이들이겠지요. 두려움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자신감으로,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13척으로 130척 넘는 적을 물리쳤듯 또 한 번 역사를 쓸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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