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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中 지도자의 침묵은 金?

[월드리포트] 中 지도자의 침묵은 金?
▲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황쿤밍 공산당 선전부장(중앙 검은색 중산복에 오른손 내민 사람)

어제(19일) 중국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원의 신문판공실(우리의 과거 공보처 격)에서 주최하는 신년초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정부가 외국기자들을 상대로 거의 유일하게 갖는 교류행사인 만큼 베이징에 주재하는 전 세계 특파원들이 다른 일정을 제쳐놓고 대부분 참석합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천안문광장의 국가박물관에서 개최되는데 감자칩과 음료만으로 배고픔을 달래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중국 정부의 언론 사무를 총괄하는 신문판공실의 고위인사들과 안면을 틀 수 있고 가끔 국가급 지도자가 참석해 코멘트를 하는지라 안 갈 수 없는 행사입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황쿤밍(黃坤明) 중국 공산당 선전부장이 나타났습니다. 선전부장은 조직부장(인사담당)과 함께 공산당의 양대 요직으로 부총리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인데, 황 부장은 흔히 당중앙이라 일컬어지는 2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한 사람인 건 물론, 시진핑 국가주석과 푸젠성과 저장성에서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던 최측근입니다.

장내의 시선은 당연히 연단에 오른 황 부장에 맞춰졌고, 저도 당연히 황 부장이 어떤 말을 할까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황 부장은 연단에 오르기만 했을 뿐 정작 마이크를 잡고 축사를 한 사람은 선전부 부부장 및 국신판 주임인 장젠궈(蔣建國)였습니다.

축사내용도 "2017년은 중국 발전의 여정에서 이정표 의의가 있는 한해였다. 19차 당대회는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의 역사적 지위를 확립했고,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새로운 당 중앙 지도자들을 선출했다. 2018년은 당의 19차 당대회 정신 관철을 시작하는 해이자 개혁개방 40주년이다. 국신판은 더 적극적인 행동과 더 개방적인 자세, 더 완벽한 복무로 중국과 해외를 연결하는 탑을 세우고, 세계와 소통하는 교량이 되겠다."는 판에 박힌 짧은 코멘트가 전부였습니다.

비슷한 일은 얼마 전에도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방문 하는 첫날 시진핑 주석은 난징에서 열린 난징대학살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중국관영 CCTV 등으로 생중계된 추모식은 당연히 국가주석인 시진핑 주석의 모습을 주로 비췄습니다.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 시진핑 주석 참여
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과 묘하게 겹친 난징대학살 80주년 추모식에서 과연 시진핑 주석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TV 볼륨을 최대한 키워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추모사 순서가 돼 단상에 오른 사람은 시 주석이 아닌 권력서열 4위이자 내년 3월 퇴임을 앞둔 위정성 정치협상회의 주석이었습니다.

당연히 추모식에 참석한 시 주석이 추모사를 읽고 일본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리라고 기대했던 모든 사람들…. 특히 기자들은 일순간 멍해졌습니다. (우리로 치면 현충일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는데 이낙연 총리도 아니고 부총리가 추모사를 대표로 낭독한 격입니다.)

중국에 있던 외국 대통령인 문 대통령은 난징대학살에 대한 언급을 세 차례나 내놓았지만, 정작 중국주석인 시진핑 주석은 그 이후에도 자기 입으로는 난징대학살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최고위급 지도자의 공개적인 의사표명은 중국에선 아주 드물게만, 철저한 검토를 거쳐 이뤄집니다.

중국의 메인뉴스는 저녁 7시 CCTV에서 방송되는 신원롄보(新聞聯報)인데 뉴스 순서는 정확히 권력서열을 따릅니다. 30분 뉴스 중에 첫 20분을 시 주석이 주재한 회의 소식으로 채울 때도 있는데 이때에도 역시 시 주석은 화면에만 나올 뿐 음성은 오직 아나운서의 목소리뿐입니다. 아나운서가 '시 주석이 이렇게 지시했다' '시 주석이 이렇게 강조했다'라는 식으로 기사를 읽고 끝냅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답답해서 방송사에 항의 전화가 빗발치겠지만 중국인들은 그냥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입니다.

권력자 입장에서 침묵이 허용된다는 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에 가깝습니다. 권력자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책임은 물론 '권위의 훼손'에서도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민들이 답답할 뿐이지요. 국가지도자의 '말하지 않을 권리'와 국민들의 '들을 권리'의 비중을 측정해 보면 그 나라의 민주화 정도를 알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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