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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어깨는 토닥일 수 있잖아"…회식 자리에서는 성희롱도 허용된다?

[리포트+] "어깨는 토닥일 수 있잖아"…회식 자리에서는 성희롱도 허용된다?
30대 직장인 A씨는 회식 일정이 잡힐 때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부서 회식 때마다 반복되는 B 상무의 행동 때문입니다. B 상무는 술자리에서 직원들의 자리를 정해줍니다. 여직원들은 상무 양옆 자리에 앉아야 하고, 노래방에서도 여직원들은 무조건 춤을 춰야 합니다.

A씨는 회식 스트레스 때문에 퇴사도 생각했지만, 당장 이직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해 참고 지내는 상황입니다. 연말을 맞아 송년회나 회식 등 술자리가 늘면서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습니다. 상사가 술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술김에'라는 핑계로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도 있기 때문입니다.
회식
■ "술 먹기 싫어요"…여성 직장인 47%, 회식서 성희롱 경험

여성가족부가 전국 공공기관 400개와 민간사업체 1,2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5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남녀 직장인 500명 중 39.8%가 상급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성희롱 발생 장소는 회식 자리가 44.6%로 가장 많았고, 직장 내부가 42.9%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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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남녀 직장인 500명 중 39.8% "상급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성희롱 발생 장소 1) 회식 자리(44.6%) / 2) 직장 내부(42.9%) 성별에 따른 성희롱 발생 장소 1위 남성 직장 내부(50.3%) / 여성 회식 자리(46.7%) 출처: 여성가족부 //" data-captionyn="N" id="i20112622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15/20112622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특히 여성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답변이 46.7%로 가장 많았습니다. 지난 9일 SBS 시사교양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충격적인 제보가 소개됐습니다. 피해자 C씨는 "회식 중에 옆자리에 앉은 같은 팀 부장이 테이블 밑으로 자신의 허벅지와 다리를 만졌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동석해 있던 동료가 부장이 왼손은 아래에 두고 오른손으로만 잔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휴대전화를 테이블 밑으로 내려 사진을 찍었고, 사진에는 여직원의 허벅지로 향하는 부장의 손이 찍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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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C씨가 제공한 사진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
이 사실이 알려지자 회사 측은 오히려 C씨에게 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느냐며, "너에게도 과실이 있다"는 황당한 지적을 했습니다.

■ "피해자는 난데"…성추행당하고 회사에서 따돌림까지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2차 피해까지 겪고 병가를 낸 피해자도 있었습니다. 피해자 D씨는 회식 중에 같은 팀 상사가 자신의 다리를 만지고 볼을 비비는 등 억지로 스킨십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당시 D씨는 겁이 나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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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D씨의 제보에 따른 상황 재구성
가해자 상사 (귓속말로) "오빠가 잘 봐줄게, 오빠가 잘 봐줄게"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하지만 D씨는 회사의 대처가 더 황당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측은 D 씨에게 "가해자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옹호하며 가해자의 행동은 "일 잘하라고 격려 차원이었고, 어깨는 토닥토닥 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는 겁니다. 이후 회사에는 오히려 D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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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오히려 맘 고생했다는 문자 내용 //
D씨처럼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 문제 제기 이후, '직장 내 따돌림'이나 '불이익 처분' 등 2차 피해를 겪는 피해자들은 많습니다. 지난 7월,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 내 성희롱이 피해자 심리 정서에 미치는 영향과 성희롱 문제 제기로 인한 불이익 조치 경험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성희롱을 당한 응답자 103명 중 57%에 달하는 58명이 문제 제기 이후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게다가 응답자 중 72%는 불이익 조치와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7명 정도가 회사를 떠나는 겁니다. 성희롱을 당한 뒤 회사에 계속 다니는 사람은 29명으로 전체의 28%에 불과했습니다.

■ "참고 넘어가"…성희롱 피해자, 목소리 내기 어려운 이유는?

회식 자리 등에서 직장 상사로부터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들이 퇴사하고, 불이익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성희롱·성추행이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발생할 경우, 피해자가 저항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발된 사례만 보더라도 우월한 지위를 가진 상급 직원이 가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고용주와 피고용자 등 권력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에 회사 측에 신고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겁니다.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피해자 C씨도 "내가 이 사람에게 화를 내면 내가 회사에서 잘리거나, 감봉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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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 /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게 힘들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게 이슈화되면 너만 손해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 中///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서장은 S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회식 자리에서는 말로 하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춤을 추자'고 하는 등 원치 않는 접촉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상급자 위주의 단합 문화는 상하관계 성추행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노동이라는 느낌이 드는 회식 자리는 지양해야 하고, 술을 마시거나 춤추지 않더라도 단합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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