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가 있다.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다. 저자 김정섭씨는 “읽히지 않는 책 1권을 또 세상에 보탤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세르비아의 청년들이 지하 조직을 만들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영화처럼 그려진다.
암살은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세계 대전을 향한 더 큰 방아쇠가 됐다. 세르비아에 대한 응징을 부르짖었던 오스트리아와 독일, 그리고 독일이 먼저 공격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프랑스, 한발 물러나 있다가 결국 끌려 들어간 영국, 총동원령을 내려 독일의 프랑스 공격을 촉발한 러시아.. 각 나라들이 좀비처럼 어떻게 전쟁의 재앙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지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각 나라의 국왕(혹은 황제, 총리)과 외교 책임자들, 군부의 장성들이 제 각각 움직였지만 따지고 보면 1차 대전이라는 큰 시나리오를 이루는 배역에 충실했을 뿐이다.
1차 대전이 그토록 참혹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일부 인용해보자. ‘계절이 바뀔수록 전선의 위치는 그대로였고, 끊임없는 포격 속에 죽고 죽이는 살육전만 이어졌다. 1914년 말 서부 전선에서만 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6세 안팎의 어린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학생모를 쓴 채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전진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소년병들은 영국군의 기관총에 풀잎처럼 쓰려졌다’ 당시 유럽에 휘몰아친 국수주의 광풍 속에 앞다투어 전쟁터로 달려갔던 젊은이 천만 명이 그렇게 목숨을 잃었다.
그럴싸하지만 너무 상식적이지 않은가? 레닌의 ‘제국주의론’ 류의 분석 틀에 익숙한 필자 세대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읽어가는 쪽수가 더할수록 저자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간다. 1차 대전처럼 뚜렷한 침략자가 없이도 전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일은 주변국들의 행동을 독일을 옥죄는 행위로 해석했고,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 배후에 독일이 있다고 의심했다. 이렇듯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국가는 자위적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이 조치가 불가피하게 상대방의 안보를 위협하는 딜레마 상황을 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나라에는 방어보다 공격이 유리하다는 공격우위론이 지배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 않은가? 저자가 책 후반부에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반도다. 작금의 한반도가 공포의 균형 상태에 놓여 있고, 아직은 방어 우위가 지배하는 전략 환경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남북 모두 가공할 만한 보복 능력을 갖추기 있기 때문에 선제 공격의 이점을 생각하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저자는 국방부와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현직 고위 관료다. 오랜 기간 국가 안보전략 분야에 몸담아오면서 1년 남짓 틈틈이 썼다고 한다. 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관념적인 틀이나 군 지도자들이 갖기 쉬운 편협한 안보관도 뛰어넘고 있다. 이 책 2권을 사서 입버릇처럼 전쟁을 달고 사는 북한 김정은과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내 읽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