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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핫6' 이정은, '인내와 오기'로 쓴 성공신화

김영성 기자 yskim@sbs.co.kr

작성 2017.12.08 10:52 조회 재생수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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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핫6 이정은, 인내와 오기로 쓴 성공신화
-몸 불편한 아버지 바라보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4년간 골프 중단
-중3 때 진로 고민하다 '레슨프로'로 돈 벌겠다며 다시 골프채 잡아
-힘든 환경 이겨낸 인내심 쌓여 멘탈(정신력)은 최강 자부
-운동신경은 아버지, 인내심과 정신력은 어머니 닮아
-숏게임 좋아지니 성적도 쑥쑥…"인생에서 요즘이 가장 행복"

2017년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 투어의 최고 스타로 떠오른 '핫식스' 이정은은 요즘 시즌 때보다 더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체대 체육학과 3학년인 이정은은 시즌 중 대회 참가 때문에 밀린 수업과 학점을 보충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매일 학교에서 보냅니다. 아침 7시에 등교해 밤 9시까지 수업이 꽉 짜여 있습니다. 지난주 일본에서 열렸던 4대 투어 대항전 '더 퀸즈' 참가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5일부터 오는 15일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야 합니다. 수업이 비는 휴식 시간에 그녀와 전화 연결이 됐습니다. 

Q. 쉬지도 못하고 피곤하겠네요?
"하루 14시간씩 학교에서 보내고 있지만 몸은 별로 안 피곤해요. 머리가 좀 피곤하죠(웃음). 일단 골프 대회 성적에 대한 부담이 없잖아요."

Q. 이젠 유명 인사가 돼서 학교에 가면 꽤 인기가 있겠는데요?
"안 그래요. 저희 학교에 워낙 유명한 스타 선수들이 많아서 저는 그냥 일반 학생처럼 보여요. 대회장에나 가야 팬 분들이 많이 알아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죠. 골프 옷과 모자를 벗고 일반 옷 차림으로 시내에 가면 알아 보시는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Q. 이번 KLPGA 대상 시상식 때 평소 입지 않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6번이나 무대에 올랐는데, 작년 신인상 받을 때와 느낌이 어떻게 달랐나요?
"작년 신인상 받았을 때 이번보다 더 깊이 파인 드레스를 입어봐서 옷은 어색하지 않았고요, 솔직히 신인상 받았을 때 기분이 이번 6관왕보다 더 좋았고 의미가 있었어요. 평생 한 번뿐인 상이었고 프로 데뷔 후 처음 받은 상이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아주 큰 가치가 있는 상이었죠. 물론 올해 6관왕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수상이었지만 이번에는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감사한 분들 이름 빼 먹지 않으려고 긴장하다 보니 정서적인 감흥은 작년만큼 크진 않았죠. 눈물도 안 나오더라고요."

Q. 운동은 언제부터 다시 시작하죠?
"15일 겨울방학 시작하면 바로 체력 훈련부터 시작해야죠. 계획했던 싱가포르 여행도 가야 하고, 전지 훈련은 이달 말쯤 태국으로 가려고요."

Q. 이번 전지 훈련의 포커스는 어디에 맞추나요?
"제가 올 시즌 바람 불 때 샷이 들쑥날쑥 했거든요. 바람에 대비한 샷 메이킹 훈련이 필요하고 스윙도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도록 간결하게 바꾸고 싶어요. 최대한 간결하면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스윙을 만들어 봐야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쇼트 게임 연습에 비중을 많이 둘 예정이에요. 작년 전지 훈련 때도 100m 이내 웨지 샷이나 퍼팅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던 게 성적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샷 연습 대비 퍼팅 연습 시간 비중을 종전 5대 5에서 3대 7 정도로 늘렸던 거죠. 부상 방지를 위해서 웨이트도 중요한 것 같아요. 골프는 편측운동이라서 몸 관리 안 하면 다치기 쉽거든요. 다행히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웨이트를 꾸준히 해서 그 덕을 좀 보는 것 같아요. 아직 크게 아픈 데는 없어요."이정은1996년 5월 28일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이정은은 4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되자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자연스럽게 경제 관념이 생겼고 뭘 해서 먹고 살지, 직업에 대한 고민도 또래보다 일찍 하게 됐습니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아버지 권유로 골프채를 잡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직접 운전을 해서 딸을 연습장과 경기장에 데려다 주었고, 어머니는 남편의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리고 밀고 끌어주며 딸의 먹거리까지 챙겨주었습니다. 주변 어른들이 골프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해 줄 때 소녀는 즐거웠고 골프가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골프 이외의 것들이 어린 소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새 골프채를 살 돈이 없어 선배나 친구가 쓰던 채를 받아서 쓴 것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녀가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와 연습장이나 대회장에 가면 주변의 수군거림에 신경이 쓰여 샷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골프가 너무 싫어졌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중단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뭔가 편안하지 않은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요. '저렇게까지 어렵게 골프를 해야 하나?'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 같아 그런 눈초리들이 견딜 수가 없었어요."

이정은은 이후 4년간 한번도 골프채를 잡지 않았고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그녀에게 다시 현실적인 고민이 찾아왔습니다.

"중3 때 진로 선택을 해야 하는데 딱히 장래 희망이라든지 하고 싶은 일이 없더라고요. 성적이 눈에 띄게 좋은 것도 아니어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생각하면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해봤던 걸 다시 하면 남들보다 더 편안하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골프를 다시 시작했어요. 골프만 잘 치면 레슨을 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아빠 말씀도 동기 유발이 됐죠. 그러니까 당시엔 무조건 돈을 벌기 위해서, 경제적으로 엄마 아빠한테 보탬이 되고 싶어서 골프채를 다시 잡게 됐죠."

이정은은 골프를 다시 시작한 지 2년 만인 고등학교 2학년 때 베어크리크배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골프 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 바짝 차리자고 다짐했죠. 어린 시절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내성이 생겨서 오히려 이를 더 악물게 되더라고요. 무시당했던 기억이 저를 더 강하게 만든 것 같아요. 저를, 제 환경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되갚아 주려면 제가 성적을 잘 내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마음으로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정은은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 여자골프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른 뒤 프로로 전향했고, 이듬해 KLPGA 투어 신인왕을 차지했지만 우승이 없었기 때문에 존재감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국내 개막전인 롯데렌터카여자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4승을 몰아치면서 다승왕과 상금왕, 대상, 평균타수상, 인기상에 기자단이 선정한 '베스트플레이어'상까지 사상 초유의 6관왕에 오르면서 데뷔 2년만에 국내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데뷔 2년 만에 '신데델라'를 넘어 '퀸 오브 더 퀸' 자리에 오른 그녀는 모든 게 아직 낯설고 실감나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런 위치에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 힘들고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골프를 칠 수 있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이런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골프를 치면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이 행복을 어떻게 만끽해야할지..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분들한테도 연락이 오고 무엇보다 금전적인 부분이 많이 달라져서 뭔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진짜."골프선수 이정은이정은은 지난 9월 23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골프장에서 엄청난 기록을 세웠습니다.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2라운드에서 12언더파 60타를 적어내 KLPGA 투어 역대 18홀 최소타 신기록을 작성한 것입니다.

"아마 제가 그때 경기 도중에 기록을 알았다면 긴장을 많이 해서 12언더파를 못 쳤을 거에요. 기록에 대해 전혀 모르고 무심하게 평소하던 대로 편안하게 샷을 하고 퍼팅을 하다보니까 기록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저는 7언더파가 종전 베스트여서 8언더파라도 쳐보자 하는 심정으로 쳤는데 결과가 제가 생각해도 너무 좋았어요. 이 기록을 깨기는 진짜 힘들것 같아요. 갈수록 코스 세팅이나 핀 위치가 어려워 질 것이고. 정말 다시 그 스코어 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불현듯 지난달 만났던 이정은 어머니의 딸 자랑이 떠올랐습니다.

"정은이가 운동 신경은 아빠를 닮았고 인내심과 강한 멘탈은 70~80% 저를 닮았어요. 또래 아이 보다 일찍 철이 들었는데, 어린 것이 힘들어도 티 안 내고 꿋꿋하게 헤쳐 나가는 걸 보면 참 마음이 짠하고 한편으론 대견했죠. 결혼 4년 만에 어렵게 생긴 아이인데, 이렇게 야무진 놈을 주시려고 그렇게 기다리게 하신 것 같아요."

불편한 몸으로 오랫동안 딸을 뒷바라지 한 이정은의 아버지는 휠체어 탁구 선수입니다. 지난 9월 충북 제천에서 열린 전국 장애인체육대회 탁구 남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정은이가 아마추어 시절부터 혼자 무거운 골프 가방 메고 걸어올 때 그걸 아비가 못 들어주고,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하는 데 공을 주워 놓아주지도 못하고 그런게 항상 마음이 아팠어요. 혹시나 아이가 나 때문에 신경을 쓸까봐 눈에 안 띄게 그저 멀리서 바라만 봤거든요. 아이가 비를 맞고 가도 우산을 받쳐줄 수 없는 아비의 마음이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필드에서 '포커페이스'로 꾸준하고도 강렬한 포스를 뿜어내는 이정은의 팬 클럽 회원은 1년 만에 2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스타 선수들과 같은 조에 배정이 되면 응원 소리에 압도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상대 선수를 응원하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묘한 동기 유발이 되더라고요. 이럴 때 상대 선수보다 내가 더 잘 치면 훨씬 더 짜릿하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게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리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팬 분들한테 항상 이런 부탁을 드려요. 큰 함성보다는 뒤에서 박수 쳐주고 바라봐 주시는 게 응원이라고요. 솔직히 너무 큰 소리로 응원하는 건 같은 조에서 플레이하는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이정은의 별명 '핫식스(6)'는 미국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김세영이 지어준 겁니다.

"세영 언니가 지난번 한국 대회 오셔서 저한테 그러시는 거에요. '너 샷 보니까 소문대로 아주 '핫(hot)'하네. 이정은6말고 그냥 <핫식스(6)>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그 말이 저도 왠지 듣기 좋았어요. 그때부터 저는 핫식스가 된거죠."

KLPGA 투어는 2014년 김효주, 2015년 전인지, 2016년 박성현에 이어 2017년에는 이정은이라는 스타를 배출했습니다. 이정은이 앞선 다른 선수들과 다른 점은 미국 진출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세계랭킹 1위라든지, 미국 진출같은 큰 꿈을 갖고 골프를 시작한 게 아니라 직업이라도 가져보려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LPGA 투어에 갈 생각은 전혀 없어요. 내년 목표도 언론에서 자주 물어보시는데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아요. 저는 몇 승을 하고 싶다든지 메이저 우승을 하고 싶다든지 이런 걸 목표로 두지 않아요. 그냥 내년에는 올해 받은 다승, 상금, 평균타수, 대상 이 4개의 타이틀 중에 하나라도 2연패를 하고 싶어요. 그게 제 목표예요."

레슨이라도 해서 돈을 벌기 위해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는 이정은은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지금도 여전히 '생계형 골퍼'일까? '우문'인줄 알면서 가볍게 던진 질문에 '현답'이 돌아왔습니다.

"네 저는 변함이 없어요. 현실적으로 프로골퍼라는 게 골프를 직업으로 하는 선수인 거니까 자신의 몸값을 올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런데 '생계형 골퍼'라는 단어가 주는 악착같은 이미지는 더 이상 아닌 것 같아요. 작년부터는 여유가 많이 생겼고 이젠 골프장 나가면 홀 컵만 보는 게 아니라 나무라든지 주변 경치도 보게 되더라고요. 어렸을 때보다는 골프를 많이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신지애와 김효주, 전인지, 박성현 등 KLPGA 투어 상금왕에 올랐던 선수들은 모두 다음 후원 계약에서 몇 배의 거액을 받고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정은은 토니모리와 후원 계약이 올해로 종료됩니다. 그녀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후원 경쟁이 물 밑에서 벌써 뜨겁게 펼쳐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