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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배 안에서 발견된 '백골', 언제 죽은걸까…표류하는 北 어민들

안정식 기자 cs7922@sbs.co.kr

작성 2017.12.08 09:16 수정 2017.12.08 09:56 조회 재생수27,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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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배 안에서 발견된 백골, 언제 죽은걸까…표류하는 北 어민들
지난달 27일 일본 아키타현 오가시 해안에서 목선 1척이 발견됐다. 목선 안에서는 8명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시신 일부는 백골화돼 있었다. 1주일 뒤인 이달 4일에는 일본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 앞바다에서 시신 3구가 발견됐다. 3구의 시신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일부는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1구의 시신에는 김일성 배지가 달려있었다. 3일 뒤인 이달 7일에도 일본 해안에서 백골화된 시신이 또 발견됐다. 역시 아키타현 오가시 인근 해안에서 시신 2구가 잇따라 발견됐는데, 시신 일부가 백골화된 상태였다. 모두 북한 어민들로 추정되는 시신들이다.

백골화란 사체가 썩어 뼈가 드러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매장된 시신은 7-10년, 땅 위에 노출된 시신은 1년 가량 지나야 완전한 백골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신 일부가 백골화된 북한 어민들은 얼마나 오래전에 사망한 것일까?

백골이 되는 속도는 여러 가지 주변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2014년 6월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마지막 행적이 드러난 지 2주 남짓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이미 백골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유 씨의 시신이 발견된 전남 순천 지역이 당시 낮 기온 30도 안팎을 기록하는 등 한여름 날씨를 보인 점,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에 벌레가 많았다는 점 등이 빠른 백골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최근 일본 해안에서 발견되는 북한 어민들의 시신을 유병언 전 회장과 비슷한 사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늦가을 초겨울의 바다는 높은 기온이나 땅 속의 벌레와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태양볕과 바닷바람, 비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백골화가 빨라졌을 수 있지만, 백골화된 북한 어민들은 적어도 사망한 지 수 개월은 지난 채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 지난해 구조됐던 북한 어선 3개월 동안 표류하기도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우리가 구조했던 북한 어선의 사례가 하나의 참고가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울릉도와 독도 인근 바다에서 북한 선박 3척이 우리 해경과 해군에 의해 구조됐는데, 북한 선원들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우리 당국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듣게 됐다.

3척 가운데 한 척의 선박은 지난해 9월 중순 함경도 지역에서 출항했는데 기관고장으로 무려 3개월 동안이나 표류했고 이 과정에서 선원 상당수가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동료 선원들이 초겨울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고 동료들의 시신마저 파도에 휩쓸려가던 생사의 기로에서 선원 몇 명이 다행히도 살아남은 채 우리 해경과 해군에 의해 구조됐던 것이다.

● 일본에서 발견된 북한 추정 선박 역대 최대

지난달 일본 해안에서 발견된 북한 추정 선박들이 28건이나 돼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표류하다 운 좋게 살아있는 채 구조된 경우도 있지만, 배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거나 해안가에 떠내려 온 시신도 적지 않다. 북한 어민들이 망망대해에서 사지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 북한 당국, "바다를 한시도 비우지 말라"
북한 어업전투기간, 일본 표류이들은 왜 먼바다까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가는가? 북한 당국이 정책적으로 물고기잡이를 다그치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7일 “겨울철 물고기잡이 전투가 연간 수산물 생산에 있어 중요하다면서 물고기 떼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바다를 맨 앞장에서 정복해가도록 어로공들의 정신력을 폭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다를 한시도 비우지 말고 분초를 쪼개가며 물고기를 잡으라”는 독촉도 이어졌다.

김정은의 독촉은 이보다 더하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조선인민군 15호 수산사업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300일 출어일수를 보장하고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물고기를 집단적으로도 잡고 분산적으로도 잡으며 먼바다에서도 잡고 가까운 바다에서도 잡으며 큰 배로도 잡고 작은 배로도 잡는 식으로 쉴 새 없이 어로전투를 전개”하라고 지시했다. “당에서 준 과업은 오직 무조건 집행할 의무 밖에 없다는 결사관철의 정신”도 강조했다.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강조하고 있는 김정은이 핵개발과 함께 최소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먹는 문제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도 한참을 지나야 결실을 볼 수 있는 곡물이나,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끼 때부터 한참 사료를 먹여 키워야 하는 동물에 비해, 물고기는 언제든 바다에서 건져올리기만 하면 되니 어업보다 더 좋은 분야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생선은 또 질 좋은 반찬 중의 하나인 만큼, 물고기를 많이 잡아 인민들에게 적당히 공급할 수 있으면 능력있는 지도자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어민들에게 어떻게든 물고기를 많이 잡아오도록 다그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 근해 조업권은 중국에 팔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내용이 있다. 북한 어민들이 아무 바다에나 나가 물고기를 잡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7월 국회 정보위 업무보고에서 “북한이 지난해 1,500척 규모의 해상 조업권을 중국에 팔아 3천만 달러 정도를 벌었다”고 보고했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근해 조업권은 중국에 팔아 북한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으려면 먼 바다로까지 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고기는 많이 잡아오라는데 가깝고 안전한 곳에서는 잡을 수가 없고, 북한 어민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물고기잡이 전투에 동원돼 망망대해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시신마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불쌍한 북한 어민들. 지금 이 시간에도 동해상에서 수 개월째 표류 중인 북한 어선과 선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가엾은 비극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유감스럽게도 기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