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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평양 반달가슴곰 손자…하동에 둥지

[취재파일] 평양 반달가슴곰 손자…하동에 둥지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서 반달곰 1마리가 붙잡힌 것은 지난 9월 4일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연구팀이 설치한 생포트랩에 들어왔다가 포획됐습니다. 두 살가량 된 이 곰은 몸무게 56kg의 수컷이었습니다. 발육상태와 건강은 좋아 보였다고 당시 포획팀은 말합니다. 그런데 반달곰의 몸에는 발신기나 인식표가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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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복원기술원은 지리산에 방사한 곰들의 유전자원 관리를 위해 이른 봄부터 새로 태어난 새끼 곰을 찾아 귀에 인식표와 함께 위치를 알려주는 발신기를 달아줍니다. 발신기에서 신호를 보내면 연구팀은 VHF 안테나로 수신해 곰이 산속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통 1~2km까지 신호 수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발신기의 전원이 바닥나 기능을 못하게 되면 생포 트랩을 설치해 곰을 포획한 뒤 전원을 교체해 줘야 합니다. 발신기를 달지 못한 곰들의 경우는 털 등을 채취해 유전정보를 추적합니다. 이렇다보니 연구원들은 1년 내내 지리산을 누비며 반달곰과 숨바꼭질을 하고 지냅니다. 인식표는 반달곰의 식별번호로 출생과 유전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반달곰의 몸에 발신기와 인식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확인개체라는 의미입니다. 종복원기술원의 관리망에서 벗어나 있던 곰입니다. 나이나 몸무게로 봐서 자연에서 태어난 방사 곰의 후손이거나 토종 야생 곰의 새끼이거나 가능성은 두 가지였습니다. 어쨌든 지리산 반달곰의 식구가 1마리 더 늘고, 새로운 개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부풀게 했습니다. 연구팀은 곰을 마취한 뒤 유전자분석을 위해 혈액을 뽑고, 인식표와 발신기를 달아 다시 숲속으로 돌려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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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달곰으로 추정되는 개체가 발견된 것은 지난 3월입니다. 하동에 사는 한 마을 주민이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해발 7백여 미터 숲에서 곰 1마리를 목격했습니다. 주민은 너무 놀라고 당황해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곰이 공격을 하거나 달려들지는 않고 달아났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곰을 마주친 것 자체가 두렵고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동면 굴 안에 있던 곰이 주민이 접근하자 갑자기 튀어나와 달아난 것입니다. 주민은 산에서 내려온 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에 반달곰을 목격했다고 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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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주민의 안내를 받아 곰이 출현했던 숲으로 올라갔습니다. 동면 굴 앞에는 곰이 머물고 놀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곰이 올라갔던 나무에는 곰 발톱에 껍질이 벗겨진 흔적이 그대로 남았고, 풀과 낙엽 위에는 곰의 똥도 남아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곰이 다닐만한 길목에 드럼통을 이어 만든 트랩을 설치했고, 6개월 뒤 마침내 반달곰 1마리를 붙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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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을 시작한지 두 달 만인 최근 드디어 반달곰의 가족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토종 곰의 후손이 아니라 멸종된 반달곰을 복원하기 위해 지리산에 방사했던 곰의 유전자와 일치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곰은 북한 평양 동물원에서 들여온 것으로 밝혀졌고, 할머니 곰은 러시아에서 온 개체였습니다. 지난 2005년 지리산에 방사한 이 두 곰 사이에서 3년 뒤인 2008년 태어난 야생곰이 아비곰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어미 곰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유전자분석을 한 연구원은 11가지 유전자형을 찾아낸 뒤 방사 곰의 유전자형과 비교한 결과 할아버지, 할머니, 아비곰과 일치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미 곰으로 추정되는 방사 곰 후손의 유전자형과 대조했을 때 8가지는 일치하고, 3가지 유전자형이 다르게 나타나 어미 곰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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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반달곰 방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입니다. 그 뒤 야생에서 출생한 3세대 곰이 확인된 것은 지난해 이후 세 번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들여온 반달곰이 지리산 숲속에서 손자를 본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입니다. 종복원기술원은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지난 2005년 초 평양동물원에서 새끼 반달곰 8마리를 들여왔습니다. 암수 각각 4마리인 반달곰은 그해 7월1일 지리산에 방사됐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 들여온 반달곰과 함께 번식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채 백두대간 숲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는 곳이 다를 뿐 중국과 북한에서 들여온 반달곰은 모두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 지역 반달곰과 유전자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러시아 우수리 아종으로 부릅니다. 따지면 같은 혈통인 셈입니다.

평양동물원에서 온 반달곰 8마리 가운데 5마리는 폐사했고, 나머지 3마리가 지리산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종복원기술원은 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마리가 이번에 손자 곰을 본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미확인 반달곰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지리산 반달곰은 48마리로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 발신기를 달아 위치추적이 가능한 곰은 20마리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발신기 전원이 끊어져 위치추적이 안 되고 있습니다. 대신 털이나 분변 등을 통해 개체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동에서 포획된 반달곰처럼 종복원기술원의 관리망에서 벗어난 미확인 곰들이 추가로 있을 가능성은 아주 높습니다. 연구팀이 짝짓기에 들어간 곰들을 매년 추적하고 있지만 발신기를 달지 못한 개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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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살 수 있는 반달가슴곰의 알맞은 개체수가 64마리라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당초 지리산 반달곰 복원 목표 개체수도 50마리였습니다. 지리산의 반달곰 수용력이 거의 포화상태란 얘기입니다. 지리산에 살던 반달가슴곰 1마리가 지난 6월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올라간 사실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곰이 지리산을 벗어나 90km가량 떨어진 김천 수도산까지 이동한 이유 중 하나로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끼리 서식지 다툼이 있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반달곰을 더 이상 지리산에 가두어서는 곤란합니다. 울타리를 열고 백두대간을 따라 덕유산과 속리산, 설악산으로 점차 서식지를 넓혀 가도록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밀렵방지와 주민 및 탐방객에 대한 홍보활동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등산 중에 곰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과 행동요령을 알려야 합니다. 반달곰이 사라지기 전 우리 조상님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던 것처럼 생태계를 복원시켜야 합니다.

더 나아가 평양에서 온 반달곰의 후손이 설악산을 거쳐 조상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도 천천히 닦아야 합니다. 언젠가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철책선이 무너지는 날을 대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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