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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희생되는 유기견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오니시 피스윈즈 재팬 대표

[취재파일] "희생되는 유기견이 없는 세상을 꿈꾸며"…오니시 피스윈즈 재팬 대표
참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적이면서도 현학적이었지만, 동시에 세속적이며 저돌적이었습니다. 영문학자 황동규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일본 비정부기구(NGO)의 대표적 인물 오니시 겐스케(50)입니다.
 
국제재난구호단체인 '피스윈즈 재팬(Peace Winds Japan)' 총괄책임자이자 '재팬플랫폼(Japan platform)' 공동대표, '시빅 포스(Civic Force)' 대표, 아시아 6개국이 참여하는 재난구호 플랫폼 '에이팟(A-PAD)' 대표 등 맡은 직함만도 한 손에 꼽기 어렵습니다. 재난구호와 긴급구조, 산골 마을 재생 등 같은 공적 활동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주식회사 설립도 과감히 추진합니다. 마치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시민운동가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을 합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그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건 '유기동물'입니다. 연간 50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버려지는 우리나라 못지않게 일본도 유기동물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오니시 대표는 '희생되는 유기동물 제로'를 목표로 시민운동(피스윈즈 재팬)에 뛰어들었고, 유기동물로 골머리를 앓던 히로시마 현에서 3년 만에 '유기견 제로'를 달성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요?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 저도 몹시 궁금했습니다. 오니시 대표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요? 그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오니시 피스윈즈 재팬 대표 기자단 인터뷰
- '피스윈즈 재팬'을 통해 '유기동물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십니다. 어떤 사업인가요?
= '피스윈즈 재팬'은 해외에서 인도적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입니다. 쉽게 말하면, '재난구조'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저희 단체본부는 히로시마 현에 있는데, 히로시마는 일본 안에서도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한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매년 8,300마리가량이 희생될 정도로 악명이 높았죠. 우리가 속한 사회의 문제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기동물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고 어떻게든 이런 안타까운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래서 답을 찾으셨나요?
=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아직도 답을 찾아가고 있다."라고 말씀드리는 게 정확할 듯합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저희가 가야 할 길을 찾긴 찾았는데요, 저희가 줄곧 '재난구조' 활동을 해왔으니 "유기동물 문제를 우리 전공을 접목해 풀어보자.", 이런 생각을 가지고 묵묵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 '유기동물 보호'와 '재난구조', 언뜻 들어서는 접점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요?
=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기도 합니다. (웃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구조 활동'과 '유기견'을 더하면 무엇이 될까? 바로, '구조견'이 됩니다. 쉽게 수학적으로 설명하자면,'구조 활동 + 유기견 = 구조견' 이렇게 되는 거죠. 저희가 찾아낸 길이 바로 "유기견을 '구조견'으로 키워내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방치됐던 임야 1만여 평을 활용해, 일본에서 가장 큰 유기동물 보호소와 구조견 훈련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살처분 위기에 놓은 유기견을 데려와 훈련을 시켜 구조견으로 길러 내기 시작했습니다.
 
- 상처받은 개를 극한상황도 견뎌내야 하는 구조견으로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요?
=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유기견을 구조견으로 키우는 데 평균적으로 3~4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공을 들이니,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니시 대표와 유메노스케
-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유기견이 ‘구조견’으로 제2의 삶을 산다, 영화 같은 얘기네요.
= 실제로 정말 영화 같은 친구가 있는데, 배우로 치자면 거의 할리우드 톱스타급이죠. (웃음) 바로, '유메노스케'라는 유기견인데요, 이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진작에 희생돼 한 줌의 재가 됐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살처분이 계획된 그날, 유독 그날따라 살처분 할 유기동물이 몹시 많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소위 말하는 '사형 집행'이 다음날로 미뤄졌는데, 제가 바로 그날 가서 이 친구를 만나서 데려오게 된 거죠. 정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웃음)
 
- 그래서 '유메노스케'를 구조견으로 길러 내신 건가요?
= 그렇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친구여서 그런지, 유메노스케는 힘든 훈련을 잘 참고 버텨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뒀던 유기견이 죽음에서 사람을 구하는 구조견으로 다시 태어난 거죠. 유메노스케는 2014년 히로시마 산사태, 2015년 네팔 지진 등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돼 매몰자 구조하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죽이려던 유기견이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된 거죠.
구마모토 지진 당시 구조 활동에 투입된 유메노스케
규슈 폭우 당시 구조활동에 투입된 유메노스케
- '피스윈즈 재팬'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준 거네요.
= 맞습니다.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얼마나 영향력이 컸느냐면, 불과 석 달 만에 저희 단체에 30억 원이란 막대한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유메노스케가 엄청 유명한 모금가(fundraiser)가 된 거죠. (웃음)
 
- 그 이후에도 또 다른 어떤 변화도 있었나요?
= 그렇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히로시마 현이 유기동물 살처분을 전면 중단했다는 겁니다. 유기동물을 보호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좋은 방법을 찾았으니, 소중한 생명을 죽이지 않기로 한 거죠. 그리고 모인 기부금으로, 유기동물 건강 상태에 따라 나눠서 돌보는 건물이 4동을 더 지을 수 있었습니다. 수의사와 훈련사 등 전문가도 30명가량 더 뽑았고요. 지금은 유기동물 650마리가 구조견으로 거듭 나기 위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히로시마 ‘살처분 제로’ 기념 기자회견
- 사업을 진행하려면 자금 마련이 제일 중요합니다, 후원금만으로 단체 운영이 충분했나요?
= 그게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이죠. 초기 자금으로만 12억 원 넘게 들어갔으니까요. 추가비용이 얼마나 더 들어갈지, 기부를 어떻게 받을 것인지 내부에서도 논의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고향세(출신지나 거주지 등 재정이 부실한 지방자치단체에 자발적으로 내는 기부금)' 제도가 도입되고, '피스윈즈 재팬'이 비영리단체(NPO) 지원대상이 되면서 지원금이 늘어났습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조견 유메노스케가 히로시마 산사태 당시 최초로 현장에 도착해 조난자를 발견하면서 큰 반향을 일어났고, 그게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로 일반 기부를 포함해 총 100억 원의 기부를 받았을 수 있었습니다.
 
유기동물 관련 얘기를 드렸지만, 사실 오니시 대표의 전공은 ‘분쟁지역에서의 구호·개발 활동’입니다, 그는 1996년 '피스윈즈 재팬'을 설립 이후 22년 동안, 이라크 등 해외 분쟁 지역에서 구호·개발 활동을 해왔습니다. 1999년 코소보와 동티모르 내전 때는 소니·도요타 등 일본 대기업들과 정부를 참여시켜 재난 지원 기금과 자원을 모았고, 이것을 구호 단체들에 '직접' 전달하는 ‘재팬 플랫폼’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라크 현지 당시 오니시 대표
- 전공이 '난민과 이재민 구조·지원'입니다. 이런 일과 어떻게 인연을 처음 맺게 됐나요?
= 영국 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공부하며 학위논문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이라크 쿠르드 분쟁지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개입'을 주제로 잡았는데, 당시 교수들도 쿠르드 현지를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고요. 논문 쓸 자료가 부족했었죠. 그래서 "부족한 실력을 몸으로라도 때우자."라는 마음으로 국경을 넘어 이라크로 밀입국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연구를 하러 갔는데, 막상 처참한 현지 난민들을 보니 한가하게(?) 연구만 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시민운동에 뛰어든 건가요?
= 결론적으로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당시 만났던 유럽 NGO들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뛰고 있었죠. 솔직히, 멋있어 보였습니다. UN에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우리도 한번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지 일본 NGO에 직원으로 들어갔는데, 단체가 워낙 영세해 1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차마 다 버리고 나올 수 없어 혼자 설립했던 게 지금의 '피스윈즈'입니다. 그때가 1996년, 제 나이 29살 때였죠. 1년쯤 버티다 미국이나 유럽 NGO에 사업을 넘기려고 했는데, 그게 조금씩 길어지더니 어느 순간 제 삶이 돼 있었더라고요. (웃음)
 
- 일본 NGO들은 가난했나요? 일본은 경제 대국답게 지원 사업을 많이 하는 걸로 아는데요?
= 맞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지원 사업을 많이 했죠.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그런데 지원하는 대상 대부분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들입니다. 국제재난 지역에서 일하는 일본 NGO들은 정부 자금을 한 푼도 못 받은 거죠. 1999년 코소보와 동티모르에서 내전으로 난민이 100만 명 넘게 생겼는데, 그때 저희 NGO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죠.
 
- 설립하신 '피스윈즈'도 마찬가지였겠죠?
= 그렇습니다. 그건 비단 저희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일본 NGO 전체가 신뢰와 전통이 부족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NGO들은 자신들의 공고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죠. 물론, 그렇게 되기까진 100년 가까이 걸리긴 했지만요. 그렇게 오랜 시간 쌓아올린 신뢰와 전통을 일본 NGO가 한순간에 따라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 그래서 대안을 찾으셨나요?
= 유럽과 미국 NGO와는 다른 결국, 일본 NGO만의 스타일을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마침 그 무렵,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습니다. 기업의 도움을 받을 기회가 생긴 거죠. 그렇게 오랜 산고 끝에 2001년 탄생한 게 '재팬 플랫폼'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NGO를 도우면서 키워나가는, 일본 고유의 크로스 섹터 플랫폼이 생긴 거죠. 여기엔 언론도 참여합니다.
재팬 플렛폼 필리핀 지원 사업
- '재팬 플랫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 일본 외무성과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 40여 개 재난구호 NGO가 참여해 이뤄진 단체입니다. 주로 재난구호 정책을 결정하고, 자금을 조달·분배하는 일을 하죠. 지금까지 약 4천억 원 이상의 재난구호 자금을 집행했습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정책 결정을 주도하기에 NGO 직원들이 정부 부처 국·과장급과 같은 눈높이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입니다. 사실, 그전에는 NGO 대표조차 정부의 사무관을 만나기가 어려웠거든요.
 
- 그런데 세우신 단체가 더 있더라고요. '시빅 포스'와 '에이팟'이란 단체도 설립하셨죠?
= '피스윈즈' 일을 잠시 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 후임자는 나라 밖의 국제 재난 구호에만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애초 설립 취지는 그것만은 아니었는데…' 이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재난에 대응하는 단체'를 따로 만들자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2007년 만든 게 '시빅 포스'입니다. '시빅 포스'가 알려진 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인데요, 그때 저희는 구조헬기로 재해 현장을 가까이에서 촬영해, SNS 등을 통해 현장 상황을 실시간을 전파했습니다. 이는 600여 기업과 시민 5만 명의 후원을 이끌었고 모인 금액만도 3천3백억 원이 넘습니다. 이렇게 좋은 반향을 이끌 수 있었던 건 정부와 기업-NGO-일반시민이 협업하는 재팬 플랫폼의 경험이 축적됐기에 가능했습니다.
구마모토 지진 당시 에이팟(A-PAD) 출동 모습
- 세우신 단체가 많아서 헷갈릴 정도인데요 (웃음) '에이팟'은 또 어떤 단체인가요?
= '에이팟'은 일본과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6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플랫폼입니다. 아시아 지역 실정 맞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일본 외무성도 이 취지에 동감했고, 유엔과 적십자사에 내는 정부 분담금을 '에이팟'에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잘되면 새로운 형태의 국제기관으로 확대할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사적인 질문인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대표님을 보면, 한국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떠오릅니다. 두 분을 비교하는 분들도 많지 않은가?
= 네, 맞습니다. 정말 영광스럽게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박원순 시장님은 십여 년 전 처음 뵀습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심포지엄에 같이 참석해 두어 번 인사를 나눴죠. 최근에는 별도로 기회를 만들어 찾아뵙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은 아시아 사회혁신 분야의 개척자이십니다. 그 길을 먼저건 대선배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장님께 영감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시민사회운동, 사회혁신에 대한 인식과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영미권입니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그런 활동이 좀 더 늦게 싹텄죠. 그런 점에서, 박 시장님 같은 리더가 있다는 건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도 의미 있고 축복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니시 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
- 앞으로 한국과 협력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었습니다.
= 전 종종 상상해보곤 합니다. 역사적으로 갈등관계였던 한국과 일본의 청년들이, 분쟁·재난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모습을 말이죠. 재난구호뿐 아니라 양국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도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겁니다. 앞서 설명한 거처럼, 이미 한국과 일본은 '에이팟'이라는 단체를 통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해줄 걸로 기대하며, '에이팟 코리아'라는 별도의 한국법인도 세웠습니다. 한국과 일본, 더 나아가 다른 아시아 국가 청년들이 함께 재난지역에서 땀 흘리는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갈 겁니다. 한국은 이미 문화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진국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국가를 돕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합니다.
 
● 인류를 이끌어온 '자연스럽지 않은 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은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통해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해 생물학계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도킨스은 "이것은 불완전한 이해에 따른, 혹은 악의에 의한 왜곡에 가깝다."라며, '30주년 기념판 서문'을 통해 "그런 유전자의 지배와는 별개로, 개체인 인간은 자유의지와 문명을 통하여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니시 대표를 보며, 저는 도킨슨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이 이타적으로 공생을 모색할 수 있게 하는 힘, 그 동원력을 오니시 대표가 보여줬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사는 삶, 그것은 분명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 우리 인류를 이끌어온 동력이었음을 오니시 대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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