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직원 대신 위험 떠안은 故 이민호 군…출근도 강요받았다

이 기사 어때요?
특성화고 3학년, 18살 이민호 군이 공장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현장 실습이 미숙련 노동 착취와 위험 전가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오랫동안 지적돼 왔지만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비극을 막지 못했지요. SBS는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먼저, 이민호 군이 어떤 작업 환경에서 어느 정도의 일과 책임을 떠안고 있다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제주에서 정성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7월 말 1학기가 끝난 직후부터 고 이민호 군이 일했던 공장입니다.

생수병들이 적재기에 쌓인 뒤 대형 비닐 포장이 완료되면 지게차로 옮기는 일을 18살, 고3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이 모두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원래 공장 직원이 하던 일인데 기계를 다루던 직원이 갑자기 그만두자 이 군에게 일이 넘겨졌던 겁니다.

현장실습생이 공장 기기 가동 일지까지 매일 작성해야 했습니다.

[故 이민호 군 아버지 : 고장이 나면 고장 손보는 걸 간단하게 며칠 동안 가르쳐 주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까 그 부장이 없더래요. 그럼 그 기계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거야. 그래서 저희 아들한테 다 맡겨 놓은 거예요.]

업무는 과중했고 작업 현장은 위험했습니다. 이 군은 기계 근처에서 미끄러지기도 했고, 지난달엔 기계 모서리에 갈비뼈를 부딪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회사는 병가를 내고 집에서 치료하던 이 군을 계속 찾았습니다.

[故 이민호 군 아버지 : 회사에서 계속 전화가 오는 거야 애한테, 사고 당일에도. 애한테 '에러가 발생해서 지금 물 생산이 중단됐는데 이런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문의했어요.)]

"기계를 못 다뤄 공장이 올스톱 됐다"는 회사의 채근에 이 군은 사흘 만에 아픈 몸으로 출근했습니다.

근무 일지를 보면, 이 군은 하루에 12시간가량 일한 날도 있고, 휴일인 토요일에도 출근했습니다.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는 하루 최장 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고 휴일 근무는 시킬 수 없다고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겁니다.

이 군 죽음의 원인이 된 기계 고장도 자주 있었지만 안전 장비나 조치는 미흡했습니다.

[故 이민호 군 아버지 : (기계)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 쳤던 거 아니에요, 원래?]

[회사 간부 : 안 쳤었습니다.]

회사는 이 군이 기계 정지 버튼을 누르지 않아 생긴 일이라며 개인 책임을 주장하고 있고, 이 때문에 지난 19일 숨진 이 군의 시신은 아직까지 차가운 장례식장에 그대로 있습니다.


---
<기자>

이민호 군이 숨진 뒤 정치권 인사들이 제주 현장을 찾아 대책 마련을 소리 높여 얘기했던 지난주.

이 군이 다니던 학교의 현장실습생 중 일부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지난 25일 토요일 휴일 근무를 했습니다.

[故 이민호 군 학교 친구/현장실습생 : 안녕하세요. 주말에도 근무하고 왔어요. (이 친구는 오늘도 일하고 오신 거예요?) 네, 오늘도 일하고 왔어요.]

토요일인데도 저녁 7시 반이 돼서야 퇴근한 학생은 휴일 근무 금지 규정은 현실에선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故 이민호 군 학교 친구/현장실습생 : 원래 학생들이 '주말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 그런 규정이 있잖아요. 그런데 회사가 운영상 그게 안 된대요. 그래서 주 6일 근무제 이렇게 일하고 있는데.]

학교는 당연히 관련 법규를 잘 알고 있지만 휴일 근무를 당연시하는 현실 앞에서 타협하기 일쑤라고 학생들은 말합니다.

[회사가 선생님한테 (현장실습생들이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얘기를 했대요. 서약서인가? (그거 받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일 하고 있어요.]

이민호 군이 초과 근무에 휴일 근무까지 했지만 학교의 공장 현장 점검 보고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은 법규를 무시하는 장시간 노동은 전국 어디나 비슷하다고 얘기합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 저희 반에 26명이 있거든요. (노동 시간) 7시간 지키는 곳은 딱 한곳 있고, 나머지는 거의 8시간, 9시간, 10시간 (일을 시키죠.)]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 (7시간 초과하는 거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알고 계세요?) 네, 다 알고 계시죠.]

교육이라는 허울만 쓰고 있을 뿐 현장실습은 싼값에 장시간 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시키는 탈법 공간이 된 지 오래입니다.

---
<기자>

직업계 고등학교들에 대한 평가나 정부 예산 지원은 주로 취업률에 달려 있습니다. 학교들이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조성신/경기기계공업고등학교 교사 : 최근 한 10년 동안은 상당히 취업에 압박을 가하고 있고 특히 특성화고에서 (대학) 진학률이 높으면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최근 들어 취업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특성화고 졸업생 : (학교 복도) 벽에 진짜 세뇌당한다고 할 정도로 대학에 대해서 안 좋은 선입견만 심어주는 게 많았어요. '나는 보너스 받아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너는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고…'.]

취업률 높이는 게 지상 목표다 보니, 전공이나 적성과 상관 없는 일자리로 쫓기듯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김아현/특성화고 재학생 : 어디라도 보내려고, 원하지 않더라도 보내려고 하는 추세예요. 햄버거집에서 알바하는 것까지도 취업에 포함시킨다고 알고 있어요.]

올해 초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도중 숨진 홍 모양의 전공은 애완동물, 이번에 숨진 이민호 군도 원래 전공은 원예작물이었습니다.

전공이나 적성에 맞지 않거나 근무 환경이 열악해 학교로 돌아가려 해도 견뎌야 한다는 반대에 부닥치게 됩니다.
 
[특성화고 재학생 : (일단) 말리죠. 좀 참고, 정 안 된다 싶으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하죠).]

[명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너 때문에 후배들이 나중에 그 업체에 들어가는 게 어렵게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의 비난에 시달리다 보니까 '그래 참자 참자 내가 학교를 위해서 후배들을 위해서 참아야지' (하게 되는 거죠).]

직업계 학교 가운데는 안전 사고, 임금 체불 같은 명백한 법 위반을 외면하거나,

[특성화고 졸업생 : 제 친구가 임금 체불 문제로 퇴사를 하고 도움을 받으러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먼저 하신 말씀이 '너 퇴사했으면 취업률 집계에 안 들어가는데 혹시 아는 분이나 이런 곳 통해서 취업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였어요.)]

실습 도중 돌아왔다고 벌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김재근/특성화고권리연합회 멘토 : 빽빽이(빽빽하게 쓰는 반성문)를 쓴다든가, 정규수업을 못 듣고 교장, 교감 선생님과 등산을 하든가 이런 일들을 해요.]

조기 취업 실적에 목을 매는 학교 현장에서 고교 실습생들의 안전과 노동 인권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