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노예 노동…벼랑 끝 '지적장애인'

송인호 기자 songster@sbs.co.kr

작성 2017.11.28 07:32 수정 2017.11.28 15:47 조회 재생수65,369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노예 노동…벼랑 끝 지적장애인
● 중식당에서 5년여 간 노예처럼 일한 노총각 김 모 씨…사연은?

지적장애 3급(IQ 50~70이하)인 김 모 씨는 올해 46살의 노총각입니다. 지금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보호를 받고 있지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서울의 한 24시 중국 음식점에서 5년여 동안 노예처럼 온갖 잡일을 해오다 주변인의 신고로 구출됐습니다. 만약 이웃 주민 신고가 없었다면 김씨는 지금도 24시간 식당에서 선잠을 자가며 접시 닦기와 청소, 심부름 등 온갖 궂은일을 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김씨의 언어능력은 일반인보다는 떨어졌지만 의사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장가가는데 보태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졌지만, 김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고아인 김씨는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장애인 보호시설에 머물다 만 20살이 됐을 때 A씨 부부의 양아들로 들어갑니다. 법률적으로 입양 등재는 안했지만, 양아들처럼 20여 년 동안 A씨 부부와 함께 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이후 김씨는 A씨 부부 지인 소개로 서울의 한 24시 중식당에서 주방보조 근무를 시작합니다. 접시 닦기와 바닥청소, 쓰레기 처리 등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 온갖 궂은일 했는데 월급은 고작 100만 원…양엄마가 임금 빼돌려

김씨가 중식당에서 5년여 동안 일하고 받은 임금은 월평균 100만 원 정도. 처음에는 월 80만원만 줬지만 양엄마가 적다고 항의를 해서 100만원, 120만원까지 올라갔습니다. 당시 중식당에서 일하던 비장애인의 월급이 280만원 정도였으니 김씨의 월급은 다른 동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김씨는 그래도 월급통장에 꼬박꼬박 돈이 쌓여가겠지 하는 기대감에 밤낮은 물론 휴일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적장애 탓에 월급통장 관리를 양엄마에게 맡긴 게 화근이었습니다. 양엄마 A씨는 김씨의 월급을 가로채 생활비 등으로 모두 썼는데 탕진한 금액이 5년여 동안 6천만 원 가까이 됩니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중식당에서의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일하는 동안 주방장에게 국자와 프라이팬 등으로 맞아서 머리에서 피가 나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임금착취는 물론 폭행과 폭언에 시달렸던 겁니다. 김씨의 팔은 운동선수처럼 단단했습니다. 김씨는 농담처럼 “식당에서 하도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서 근육질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악의라고는 없어보이는 김씨의 표정과 말에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 지적장애인 노동착취 잇따라…폭행 등 인권유린 심각
노예노동지적장애인의 노예노동 사례는 비단 김씨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9월에는 충북 청주에서 지적장애인을 수시로 폭행하며 10년 동안 돈 한 푼 주지 않고 중노동을 시켜온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적장애 3급인 40대 김모씨는 두평 짜리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며 타이어 수리뿐만 아니라 온갖 심부름에 식당일까지 거들어야 했습니다. 김씨는 죽도록 일하고도 역시 곡괭이 자루와 각목 등으로 지속적인 폭행을 당해왔고 임금은 커녕 김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 등 2천4백여만원도 업주 부부에게 착취당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습니다. 두 달 전에는 경남 김해에서 50대 지적장애 남성이 공장에서 15년 동안 노예처럼 착취당해오다 구출되기도 했습니다.

타이어노예, 토마토노예, 축사노예, 농장노예, 중식당노예...이처럼 지적장애인이 노예노동의 타겟이 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가족이 없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은 뒤 이웃이나 주변사람에게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연고가 없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노동착취나 학대를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마을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관행처럼 묵인했습니다. 괜히 문제를 제기했다가 이웃끼리 다투기 싫었던 것입니다. 이웃의 무관심과 이들을 보호해야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허술한 복지전달체계, 인권에 대한 낮은 인식이 맞물리면서 심각한 복지사각지대를 만든 것입니다.

● 지적장애인 상당수 "정서적·신체적·경제적 학대 경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경북, 전남, 경기 지역의 재가 장애인 실태 조사를 벌여 최근에 그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재가 장애인 1,165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실시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정서적 학대와 경제적 학대,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정서적 학대 경험이 144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제적 학대와 신체적 학대 경험자가 각각 58명으로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이어 성적 학대도 32명이나 됐습니다. 정서적 학대는 주로 언어를 통한 정서적 고통을 말하고, 경제적 학대는 재산권 침해나 임금 착취, 의사에 반한 채무 발생을 일컫습니다. 신체적 학대는 말 그대로 폭력이나 폭행, 신체 억압 등을 뜻하고 성적 학대는 주로 20~40대 여성 지적장애인에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3개 시도에서만 실시한 실태조사가 이 정도인데,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하면 장애인 인권유린 사례는 이보다 몇 배 더 심각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노예노동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면서 노예노동과 인권유린 사례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음지로 숨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2014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남 신안군의 염전노예 사례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20건의 염전노예 사례 중 실형은 단 6건에 불과하고 1건 무죄, 13건은 집행유예 판결이 났습니다.

● 장기간 학대해도 처벌은 솜방망이…피해보상도 '산 넘어 산'

지적장애인을 고용하고 학대한 염전 업주들에게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린 건 “지역의 오랜 관행이었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학대 피해자의 상당수는 제대로 된 피해보상을 받지 못해 국가가 방기한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배상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적장애인의 노동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해도 관대한 판결이 나고, 착취당한 지적장애인은 힘겨운 민형사 소송을 한다해도 보상받기 힘든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학대 장애인을 발굴해 돌봐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서동운 센터장은 “피해를 겪은 지적장애인에게 숙식제공 등 보호시설 확충도 필요하지만, 이들의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들을 보다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애인의 노동능력, 노동권에 대한 착취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하고 관대했는지, 이로 인해 노예노동 사례가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게 장애인 인권단체 등 관련 전문가들의 판단입니다.  결국 국가가 우리 사회의 최약자인 지적장애인 보호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참에 전국적인 장애인 노예노동 실태조사와 인권 유린에 대한 대국민 인식 강화는 물론, 궁극적으로 지적장애인을 비롯한 발달장애인에 적정한 일자리 제공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관련기사
▶ 갖은 폭행에 착취까지…'현대판 노예' 돼버린 지적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