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무 살인 화진씨는 고교 2학년이던 지난 2014년 갑자기 숨이 차고 몸이 붓기 시작했고, 2015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엔 심 정지를 겪을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지난 6월 장기이식센터에 뇌사자 폐 이식을 신청했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기준 폐 이식 평균 대기 시간은 1456일로, 약 4년을 기다려야 한다.
화진씨의 부모님은 계속 건강이 나빠지는 딸에게 자신들의 폐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국내에서는 수술이 불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생체 폐 이식 선진국인 일본으로 가려던 중 생체 폐 이식을 준비하고 있던 서울아산병원과 연결됐다. 화진씨의 아버지는 “이미 한 차례 심정지가 왔고 언제 또 상태가 나빠질지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두려움은 느낄 새도 없었다”고 말한다. 화진씨에게는 생체 폐 이식이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다.
상당한 위험을 부담해야 했기에 병원 내부에서 일부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 설득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내부 의료윤리위원회는 물론, 보건복지부의 장기등 이식윤리위원회, 대한이식학회, 대한흉부외과학회 윤리위원회에 생체 폐 이식이 불가피한 화진씨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실상 허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일정 절차를 밟은 뒤 시행령을 개정해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출할 수 있는 장기에 폐를 포함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번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국내 장기 이식 역사에서 수술이 이뤄진 뒤 법 개정이 뒤따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수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뇌사가 인정되지 않았던 1988년 국내 첫 간이식 수술을 감행했다. 당시 법에 따르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2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7세 소녀에게 위를 포함한 7개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이 이뤄졌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한때 수술을 거부했던 화진씨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1인실에서 지내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서너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는데, 이제 숨이 차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엔 말수가 적고 잘 웃지 않는 환자였는데, 수술 후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스무 살 화진씨에게 웃음을 돌려준 이는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을 살리려고 애쓴 부모님과 위험을 무릅쓴 의료진이다. 법이 한 걸음만 더 빨리 움직여줬다면, 좀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