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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 사격, 조작과 파기 ③ 시민이 폭도?…조작이 무서운 이유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1.09 09:56 수정 2017.11.09 11:02 조회 재생수5,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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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③ 시민이 폭도?/댓글사진
● "총으로 무장한 폭도를 곤봉으로 진압하나?"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립니다. 무장한 폭도들이 군을 향해 공격하니 군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입니다. 물론 거짓입니다. 계엄군의 본격적인 집단 발포가 시작된 80년 5월 21일 전에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시민들이 무장 폭도였다는 거짓은 계속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5.18 연구자들은 이를 ‘조작의 여파’로 해석합니다. ‘5.11 위원회’라 불리는 보안사령부 조직이 대표적이지요. 이 위원회는 5.18 관련 첫 진상조사가 이뤄진 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기록 조작과 관련자들의 진술을 맞추는 게 주요 임무였습니다.
 
● 하루 만에 만든 '5·11 위원회'
 
5.11 위원회는 13대 국회 때 만들어졌습니다. 88년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두 달 만에 구성된 13대 국회는 헌정 사상 최초의 여소야대였지요. 당시 정부와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은 야3당이 주장하는 ‘광주문제 조사 특별위원회’ 구성과 국정조사 등을 거부하기 어려웠습니다. 원만한 정국 운영을 위해 5월 30일 국회 개원을 앞둔 5월 9일과 10일 열린 당정대책회의에서 ‘광주 사태 재조사’ 방침을 세웠습니다. 5.11 위원회는 방침을 세운 지 하루 만인 5월 11일 만들어졌습니다.
 
위원회는 비밀리에 움직였습니다. 청문회를 앞두고 주요 쟁점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보안사령부 주도로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육군본부는 물론 안기부와 민정당과도 협의했습니다. SBS 기획취재부가 입수한 5.11 위원회의 ‘문서 검증 대비 준비 사항’에는 이들이 얼마나 철두철미하게 기록을 조작, 은폐하고 관련자들의 입을 맞췄는지 잘 드러납니다.
 관련 사진● "문서 창고는 무기고로 바꿔라"…철저한 은폐
 
광주 관련 기록은 철저하게 은폐했습니다. 5.11 위원회는 문서 검증을 앞두고 “사무실 안에 서류 보관을 최소화하고 관련 서류도 정리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심지어 “문서 존안 창고는 무기고로 바꾸라”는 지시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기자에 대한 부대 공개도 극히 제한적이었지요. 광주 지역 출신 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기자들도 엄격히 통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몸싸움도 감수하라”는 지침이 내려질 정도였지요.
 
진술도 철저히 맞췄습니다. ‘자료는 없고, 현재 보관 중인 문서는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기본 방침이었습니다. 5.11 위원회는 “문서 수발 대장도 1년 보관 후 파기하는 게 관행”이라며 검증반에 제출할 문건이 없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또 “보안부대는 광주 관련 자료를 정리한 게 없고 계엄사령부가 역사 자료를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을 통일했습니다. 5.11 위원회의 정체를 물을 거라는 질문을 예상해 “사랑부에서 요즘 부대 기능과 편제를 연구하는 팀을 잠정 운영하는데 그걸 5.11 연구단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모범 답안'도 만들었습니다.
 
● 시민이 먼저 무장해 집단 발포?
 
5.11 위원회의 철저한 조작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게 80년 5월 21일 집단 발포와 관련한 사실관계입니다. 집단 발포가 이뤄진 오후 1시 이전에 시민들이 무기를 탈취해 무장한 상태였다고 조작한 것입니다. 보안사가 국회에 제출한 서류에 “전남 나주 경찰서 반남지서에서 21일 오전 8시에 무기피탈 사건이 이뤄졌다”고 꾸며낸 것입니다. 최근 전남경찰은 자체 조사 결과 “이런 기록은 조작됐으며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에 시민들의 무장이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조사위의 발표에서도 80년 5월 21일 계엄군 중 총격에 의한 사상자가 없다는 게 확인된 바 있습니다.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 확인이 계속 나와도 거짓은 여전히 횡행합니다. 전두환 씨는 올 초 낸 자신의 회고록에서 “21일 오전부터 이미 무기고 습격이 진행됐다는 기록들이 있다”면서 집단 발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조작 방식도 전수?…'성공한 조작' 막아야
 
SBS 기획취재부는 앞서 '기무사가 핵심 기록은 사본 조차 만들어 두지 않고 이미 다 불태워버렸다’는 기록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2001년 기무사 내부 조사 결과 문건이었지요. 5.18 직후인 81년부터 84년까지의 핵심 자료는 자료 처리실에서 보안 자재를 만드는 창고로 옮겨집니다. 언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핵심자료는 다시 한 번 이 창고에서 나무상자 8개에 나눠져 구석에 만든 칸막이에 갇혀 완전 폐쇄됩니다. 나중에는 끝내 소각되지요.
 
자료 보관실이 아닌 창고로 핵심 기록을 옮기는 것은 5.11 위원회의 방식과 똑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5.11 위원회도 “문서 보관실을 무기고로 바꾸라”고 지시한 바 있습니다. 핵심 문서가 있는 곳을 위장하라는 지시지요. 37년에 걸쳐 조작하는 방식까지 전수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국방부 5.18 특조위와 향후 특별법 통과로 꾸려질 수 있는 조사위원회는 이런 철저한 조작과 맞서야 합니다. 그들의 조작이 성공으로 기록돼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