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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00골 이동국과 50살 미우라…"우리는 누구나 좌절하니까"

이정찬 기자 jaycee@sbs.co.kr

작성 2017.11.03 08:56 수정 2017.11.03 14:44 조회 재생수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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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200골 이동국과 50살 미우라…"우리는 누구나 좌절하니까"
내년에도 이동국 선수가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어제(2일)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열린 우승 기념 미디어데이에서 "더 뛸 자신감이 있다"면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앞서 최강희 전북 감독은 "이동국은 내년 시즌에도 꼭 필요한 선수다. 구단에 꼭 잡아달라고 말했다"고 했고, 백승권 전북 단장도 "당연히 함께 가겠다. 누구보다 이동국 선수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화답했습니다. 이제 사인만 남겨둔 셈입니다.200호 골을 넣은 뒤 골 뒷풀이를 펼치고 있는 이동국 모습1998년 19살 나이에 프로축구에 데뷔한 이동국은 어느덧 불혹을 앞두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이동국은 K리그에서만 무려 200골을 넣었습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우라 가즈요시. J2리그 요코하마의 공격수입니다. 1967년생으로 1979년생 이동국 선수와는 띠동갑인데 여전히 '현역'입니다.    

● 최다골 이동국 vs 최고령 미우라, 기록의 사나이들

'라이온 킹' 이동국과 '킹 카즈' 미우라.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기록의 사나이들입니다. 이동국이 골을 넣을 때마다 K리그 개인 통산 최다골 기록을 새로 쓰는 것처럼 미우라는 경기에 나설 때마다 최고령 출전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두 선수에게 2017년은 모두 기록의 해였습니다. 먼저 미우라는 지난 3월 5일, 나가사키전(1:1 무)에 출전해 프로 선수 최고령 출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만 50세 7일로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스탠리 매튜스가 1965년에 세운 만 50세 5일 기록을 이틀 경신했습니다. 그리고 꼭 일주일 뒤 군마전(1:0 승)에서 결승골을 넣었습니다. 최고령 골 기록은 덤입니다. 최근 출전은 지난 9월 16일 도쿄 베르디전(1:1 무)이었습니다. 후반 23분, 한국의 22살 신예 정충근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그 뒤 출전 기록은 없지만 당장 이번 주말 출전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주 토요일 교토상가전 출전선수명단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미우라의 최고령 출전 기록, 득점 기록 경신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이튿날, 이동국은 제주와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통산 200호 골을 터뜨렸습니다. 전북의 2017 K리그 클래식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나온 쐐기 골이라 더 값졌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17일 포항전에서는 역대 처음으로 '70골-70도움'도 달성했습니다. 이동국은 남은 두 경기에서 두 골을 더 넣어 2009년 전북 입단 후 9년 연속 두 자릿수 득점 기록을 이어가겠다는 각오입니다.이동국 선수● 51분 vs 0분…월드컵, 그 좌절의 시간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이동국은 자신의 월드컵 데뷔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이들에게도 좌절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월드컵'이 공교롭게도 이들에겐 한이 서린 무대입니다. 이동국은 데뷔시즌, 19살의 나이에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깜짝 발탁됐습니다. "한국 축구의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라는 게 차범근 당시 대표팀 감독이 밝힌 선발 배경이었지만 네덜란드전에 서정원과 교체투입 돼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지만 월드컵 데뷔전의 상대 사령탑이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은 2002년 이동국을 외면했습니다. 이에 절치부심해 2006 독일 월드컵을 준비했지만, 대회를 두 달여 앞두고 무릎 부상으로 꿈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어렵사리 최종명단에 든 2010년에도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허벅지 근육을 다쳤습니다. 극적으로 회복해 12년 만에 밟은 월드컵 무대의 기억은 쓰라렸습니다. 우루과이와 16강전 박지성의 패스를 받아 상대 골키퍼와 1:1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지만 빗맞은 공은 골라인 앞 수비수에게 걸렸습니다. 51분. 이동국에게 월드컵이 허락한 시간은 딱 그만큼이었습니다.미우라는 끝내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습니다미우라의 월드컵 시련은 더 가혹했습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미우라는 한국(1:0 승)을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사상 첫 월드컵 진출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이라크와 최종전(2:2 무)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해 '도하의 비극'을 맛보며 분루를 삼켰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모두 14골을 터뜨리며 일본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지만 정작 최종 명단에선 나카야마, 조 쇼지, 로페스 등에 밀려 빠졌습니다. 일본 대표로 55골을 넣으며 가마모토 구니시게(80골)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도 월드컵 출전 꿈은 끝내 이루지 못한 겁니다.       

● "우리는 모두 좌절한 경험이 있으니까"

두 선수 모두 아직 현역이지만 월드컵은 이들에게 '좌절의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미우라는 2000년 이후 대표팀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동국은 여전히 K리그 최고 공격수 중 하나로 꼽히지만 신태용 감독은 지난 30일 "놔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는 내년이면 39살이 되는 이동국을 뽑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여기엔 신 감독의 배려도 녹아있습니다. 200호 골을 넣은 'K리그의 영웅' 이동국 선수가 '전설'로 남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K리그에서 성남의 6회 우승을 이끌며 신인상, '베스트 11' 9회, MVP를 두 번이나 받고, 지도자로서도 성남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2010년), FA컵 우승 (2011)등을 이끌며 '전설' 대접을 받다가 대표팀 사령탑 부임 후 4경기 만에 벼랑 끝에 몰린 신태용 감독으로선 후배가 걱정됐던 모양입니다.

대표팀에 소집돼 중압감 속에 경기를 치르고, 혹여 기회를 놓칠 경우 비난의 중심에 서게 되고, 이로 인해 K리그에서 세운 위업까지 평가절하될 것을 우려한 겁니다. 물론 지금의 이동국이 최전방에서 끊임없이 뛰고 부닥치며 상대를 압박하길 바라는 신 감독의 요구를 100% 해내기는 어렵겠지만, 국가대표 이동국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그 책임은 격려보다는 비판에 익숙한 우리 축구 문화도 함께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신태용 축구대표팀 감독(사진=연합뉴스)일본 사회에서 존경받는 축구 선수로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미우라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 커집니다. 미우라와 한 살 차이로 1999년 일본 J리그에서 득점왕에 올랐던 황선홍 서울 감독은 아쉬움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상으로 은퇴하긴 했지만 저보다 한 살 위인 미우라 선수가 아직도 뛰는 모습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아요. 경기에 나오면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스포츠 신문 1면, 골을 넣으면 전국 뉴스에 나온 게 벌써 몇 해가 됐어요. 이런 일본 문화는 선수로서 또 지도자가 된 지금도 참 놀랍습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요시자키 에이지씨는 "일본의 월드컵 사상 첫 승, 나아가 첫 16강을 이끈 나카타 히테토시보다도 미우라를 존경하는 일본 사람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나카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드필더로 98 프랑스 대회부터 2006 독일 대회까지 일본이 치른 월드컵 10경기에 모두 출전한 영웅입니다. 에이지 기자는 "미우라가 월드컵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게 오히려 그를 더 존경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합니다. 

"가즈가 여전히 뛰는 모습만으로도 많은 일본인에게 용기를 줍니다. 월드컵 출전 좌절을 겪고도 계속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즈가 열심히 하니까 우리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 모두 좌절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미우라의 대기록은 개인 트레이너와 피지컬코치, 영양사 등 '전담팀'의 체계적인 지원과 개인의 피나는 노력에 더해 좌절한 그를 꾸준히 격려하고, 응원한 일본의 문화가 함께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동국의 활약 뒤에 붙는 얘기 중에 하나는 '언제적 이동국이냐'입니다. 이동국 선수 역시, 최근 슈틸리케 전 대표팀 감독이 'K리그에 이동국을 뛰어넘는 선수가 아직도 없다는 게 한국 축구의 문제다'고 한 쓴소리에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빨리 은퇴를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를 은퇴로 모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이동국은 자전적 에세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2013)'에서 "역경은 극복하면 경력이 된다"고 썼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냉혹한 잣대가 그를 더 단단하게 단련시킨 부분도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미우라가 우리나라에서 뛰었다면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을지. 그렇다 하더라도 '철인'이라는 찬사보다는 '언제적 미우라냐'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지. 아마도 어려웠을 겁니다.인터뷰하는 전북 현대 이동국 선수 (사진=연합뉴스)이동국 선수는 신태용 감독의 배려에도 "선수로서 국가를 대표해 뛰는 건 최고의 선물"이라며 "축구를 은퇴하는 순간까지 대표팀 꿈을 접지 않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