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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청량리재개발비리] "정말 무서운 사람"…'청량리 황제'의 첫 구속 ②

김관진 기자 spirit@sbs.co.kr

작성 2017.11.03 11:39 수정 2017.11.03 14:44 조회 재생수1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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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게 다행이죠…."

A 씨는 주변을 수시로 두리번거렸다. 깊게 눌러 쓴 모자와 목 끝까지 올려 채운 상의 지퍼가 그의 불안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청량리를 떠난 지 2년째. 하지만 '날것'의 현장에서 15년간 온몸으로 겪어낸 폭력조직원들의 공포를 떨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잔뜩 움츠러든 어깨는 쉽게 펴지지 않았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죠." A 씨가 한숨과 함께 토해내듯 말을 이어갔다. "저도 참 어리석어요. 떠나면 될 것을…,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버텼으니까요."

A 씨는 장사 수완이 좋았다. 대인관계도 좋아 동네 노인분들이 자주 챙겨줬다. 하지만 청량리에서 '편하게' 장사할 순 없었다. 조직원들의 상습적인 폭행과 갈취 때문이었다. 조직원들은 A 씨에게 "똑바로 장사 안 하냐" "인사 제대로 안 하냐"며 수시로 '병풍'을 쳤다. 조직원 여러 명이 둘러싸 주변의 시선을 차단한 뒤 폭행을 하는 조폭스런 방식이었다. 매타작은 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A 씨가 청량리파 두목 김 모 씨의 인정을 받는, 김 씨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A 씨는 "내가 자신(김 씨의) 소개로 청량리에 들어온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산에 끌려가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하고, 최선을 다해 '형님'에게 상납을 하는 지옥 같은 생활에도 이들을 신고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물론 신고를 위해 '증거'를 만들어 놓는 일도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청량리 황제로 군림하던 그가 처벌받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준비할 여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두목 김 씨는 조직범죄로 제대로 된 처벌 한 번 받은 적 없는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 "악명 높은 포주 출신…알아주는 현금부자"

지금은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인 집창촌 청량리588. 이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은 김 씨를 "악명 높은 포주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조직폭력배는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씨는 노점상으로 이 지역에 처음 들어왔다. 이후 성매매 업소 2~3곳을 관리 운영하는 포주가 됐다. 김 씨는 업소 여성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고 한다. 한 주민(*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특정하지 않겠다)은 "김 씨는 업소 여성들에게 손님 수를 채우지 못하면 일당을 주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 하루 8명의 손님을 받아야 한다면, 한 명이 모자란 7명을 받았을 경우 일당을 아예 주지 않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성매수 남성들이 주로 현금으로 화대를 지불했기 때문에, 김 씨는 이 지역에서 알아주는 현금부자로 알려졌다. 처음 2~3곳이던 관리 업소도 오래되지 않아 100곳에 가깝게 늘어났다. 업소가 늘어난 만큼 김 씨가 손에 쥐는 현금도 많아졌을 것이라는 게 이 지역 주민들의 얘기였다.
청량리 옛 집창촌 재개발, 비리, 조폭● 토착 폭력조직의 와해…기회를 잡은 포주 김 씨

청량리588을 중심으로 한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에는 원래 지역 토착 폭력조직이 있었다. 1980~90년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까불이파'와 '백승화파'가 그것. 이 조직들은 1991년과 1999년 검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 이후 사실상 와해됐다. 이들의 검거는 당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사람이 바로 김 씨였다. 김 씨는 오갈 데 없는 조직원들을 규합해 지금의 '청량리파'를 만들었다. 포주 출신의 김 씨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기존 조직원들도 이내 돈 많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이후 까불이파의 두목으로 있던 윤 씨를 형님으로 우대했다. 한 주민은 "김 씨가 윤 씨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조폭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 A 씨는 김 씨의 강압에 못 이겨 10년 이상 윤 씨의 '수발이' 역할을 했다. 용돈, 교통비, 식대 등 윤 씨가 필요한 돈이 있다면 무조건 가져다 바쳐야 했다. 말이 용돈이지 직장인 월급의 2배가 훨씬 넘는 돈이었다. A 씨는 "김 씨가 자기 대신 윤 씨를 정성을 다해 '모시라'고 했다"며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개인금고'였다."

단순 포주가 아닌 폭력조직을 등에 업은 김 씨는 본격적으로 전농동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주민은 "김 씨가 이끄는 폭력조직이 상납을 강요하고 갈취, 폭행을 일삼은 게 바로 이때쯤부터다"며 "오랫동안 포주로 있으면서 다져놓은 경찰·공무원 인맥도 상당한 듯했다"고 말했다. 이후 청량리파는 10여 년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서도 단 한 차례도 '조직폭력 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조폭으로서 처벌된 적이 없다.

● 옥중에서도 기세등등 '청량리 황제'…강한 처벌 가능할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청량리588 일대를 떡 주무르듯 하던 김 씨.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김 씨는 결국 재개발 비리에 발목 잡혀 서울북부지검에 구속됐다. 기업가로 변신하려던 김 씨의 계획에 '당장은' 차질이 생겼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김 씨의 구속. 뒷배가 있는 듯 법망에 걸려들지 않았던 그가 죗값을 치르게 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김 씨가 구치소 안에서도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의 엄포를 놓고 있다고 말했다.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지만 여전히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다. SBS 보도 이후 김 씨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청량리파 행동대장 염 모 씨가 라오스로 도주하는 등 조직원들의 이탈은 이미 시작됐다.

▶ 조폭 폭행·갈취에 주민 '덜덜'…"청량리파 엄정 수사 촉구"
[SBS 보도 기사링크] https://goo.gl/sbVZfw

<③부에 계속>

▶ [취재파일][청량리재개발비리] "정말 무서운 사람"…'청량리 황제'의 첫 구속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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