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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군의 불법 정치 개입', 김관진 전 장관이 답해야 할 질문들

[취재파일] '군의 불법 정치 개입', 김관진 전 장관이 답해야 할 질문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
 
대한민국 헌법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2중으로 규정합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조항이 있는데도 별도로 제5조 2항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다시 명문화했습니다. 정치 군인이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던 어두운 역사의 교훈이 반영된 겁니다. 그런데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또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총과 탱크가 아니라 댓글과 합성물로 군이 불법 정치 개입을 했습니다. 그 중심에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 있습니다.

군은 만신창이가 됐고, 부하 군인들은 군 조사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부하 군인들은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나에게 책임을 물어라"는 입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방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낸 공인의 면모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김관진 전 장관은 답해야 할 질문에도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이 군대입니다. 그래서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정치 개입 활동은 김관진 전 장관을 빼고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김관진 전 장관은 2010년 12월 국방장관 취임 다음 해인 2011년, 사이버사령부를 국방장관 직속으로 개편합니다. 사이버사령부 산하의 심리전단(댓글부대)와 해킹부대의 보고 체계도 단장->사령관->장관으로 바꿉니다. 장관이 직접 결재한 문서를 통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명분은 보안유지를 위해서라고 했지만 군 안팎에서는 왜 이렇게 개편했는지 이상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 [단독] "대선 때 '550단' 해킹부대, 장관 지시로 별도 활동"

국방부 자체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이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청와대 지시로 이미 기무사에서 '국정 운영 관련 사이버 검색 결과'를 주기적으로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기무사 댓글 부대는 사령부가 지정한 공개 자료를 퍼 나르거나 지지 댓글을 작성했습니다. 심리전에서 승리하자며 '스파르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2009년까지 기무사는 불법 댓글 활동을 벌이는데, 2010년 말 사이버사령부가 만들어진 뒤부터는 불법 정치 개입 활동이 사이버사령부로 넘어갑니다.

이걸 왜 합참이나 다른 소속이 아닌 장관 직속으로 바꿨는지가 이해 안 된다는 군인이 많습니다. 김관진 전 장관은 왜 이걸 지시했는지, 자신의 판단인지, 청와대 지시였는지 답해야 합니다. 장관 직속 부대로 재편된 군 사이버사령부는 매일 심리작전 결과를 국방장관과 청와대에 보고했습니다. 국방장관에게는 블랙 북이라는 이름의 보안 서류로 전달했고, 청와대는 국방비서관실로 보내는 전산망을 통해 보고 했습니다. 이제는 다 드러난 사실이지만 매일 보고했던 심리작전 결과에 담긴 내용은 국내 정치 이슈에 관한 댓글과 야당 정치인 비방 댓글을 통해 여론을 어떻게 바꿨는지 입니다.

또 국정원이 블랙리스트로 지정한 유명인들에 대한 비방 합성물 제작과 유포 활동으로 어떤 타격을 주었는지 등도 포함됐습니다. 이걸 대면 보고 받은 김 전 장관이 군의 불법 정치 개입을 몰랐다고 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과연 김 전 장관은 이 보고를 받고 어떤 지시를 했는지, 왜 헌법 위반 행위인 군의 정치 개입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답해야 합니다. 
블랙리스트, 김미화
답해야 할 질문이 쏟아지는 건 2012년 총선과 대선이 있던 해, 군 사이버사령부 활동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김관진 국방장관이 직접 결재한 2가지 문건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밀문서로 분류됐다가 최근 해제된 '2012년 사이버심리전 작전지침' 문건입니다. 사이버사령부 전체 활동을 규정하는 이 문서는 사이버사령부 산하 심리전단의 한 부대인 댓글 부대 부대장 박 모 씨가 작성했습니다.

원칙대로면 사이버사령부 간부가 작성해야 하는 계획을 박씨가 작성한 건데, 그가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과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실상 연락책으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이 문건 내용이 사령관과 단장의 지침에 따라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비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이 작전지침이 장관의 지침이었는지, 국정원의 지침이었는지, 청와대의 지침이었는지 명확한 답을 김 전 장관은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중요 문서는 2012년 3월 10일 장관이 결재한 '사이버사령부 관련 BH(청와대)협조 회의 결과'입니다. 이 문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명시적으로 '대통령 지시'라고 강조하며 기획재정부에 대통령이 두 차례 지시한 사항이니 사이버사령부 TO를 증원하라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군무원 한 명 증원하려 해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닌데 이런 '대통령 지시' 덕에 사이버사령부는 2012년 군무원을 79명이나 채용합니다.

특히 2012년 7월 특별 채용은 여러 가지로 수상합니다. 통상 채용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50명을 채용했고, 사이버사령부에 근무하던 현역 군인 중 '충성심이 검증된' 군인들 위주로 골라서 군무원으로 채용했습니다. 군인들은 군무원으로 전환되는 걸 선호하고 경쟁률도 상당히 높다는 점에서 이렇게 뽑힌 사람들이 심리전 단장의 별동대로 활동했다는 것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채용한 50명 가운데 47명을 댓글 부대에 배정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정신 교육을 직접 한 사람이 김관진 당시 장관입니다.
군 사이버사령부 불법 정치개입
국방장관이 사이버사령부 신입 군무원을 상대로 정신 교육을 직접 한 적은 한 번도 없던 일입니다. 이례적인 사이버사령부 증원을 결정했던 청와대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를 보면 청와대는 한미 FTA나 제주 해군기지 같은 주요 이슈에 대해 사이버 사령부가 집중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고 돼 있습니다. 군이 국내 정치 이슈에 댓글을 달고 합성물을 제작해 유포시킨 배경에 청와대 지시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 회의를 주관했던 인물이 실세로 불렸던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관입니다. 과연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독자 판단으로 이런 이례적인 증원과 군이 선거에 개입한 불법 활동을 지시했는지 아니면 청와대 지시를 받은 건지 이번에 검찰에 소환되면 반드시 답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軍 댓글부대 증원, MB 지시"…사이버사 제작물 입수

대선이 있던 2012년 김관진 당시 장관의 수상한 지시는 하나 더 있습니다. 2012년 총선 당시 사이버사령부를 이끌던 연제욱 사령관이 2012년 11월 장관 직속의 국방정책기획관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런데 김 전 장관 지시로 대선 당시 사이버사령부 산하 해킹부대의 지휘 통제를 연제욱 국방정책기획관이 했다는 증언이 있습니다. 옥도경 당시 사이버사령관의 지휘 통제를 받지 않았다는 건데 이런 지휘계통을 무시한 활동을 한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얼마 전 공개된 옥도경 당시 사이버사령관과 이태하 당시 심리전단장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530단(심리전단)을 계속 씹는데, 의혹을 가지려면 31센터(해킹부대)에 가서 하라고 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킹부대가 바로 연제욱 당시 국방정책기획관이 지휘통제했다고 내부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부대입니다. 연제욱 씨는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국방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래서 김 전 장관이 왜 당시 그런 지시를 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하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도 조사돼야 합니다. 검찰의 송곳 같은 수사를 기대합니다.

MB 정부가 임명한 김관진 국방장관은 2012년 대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방장관을 계속 수행합니다. 정권교체기 사이버사령부에서 제작해 유포한 합성물과 댓글을 보면 대놓고 정치 개입을 하면서 정부 여당을 옹호하고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김관진
2013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정치 개입 댓글 활동의 일부가 터져 나왔고, 김관진 당시 장관은 국방부의 조사를 지시합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당장 국방장관에서 물러날 것을 추궁하고 정홍원 국무총리는 조사가 끝나면 김관진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것처럼 답했지만, 국방부 조사결과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끝났습니다. 이태하 심리전단장의 개인 일탈일 뿐 김관진 장관은 몰랐던 일이고 국정원, 청와대와 관련이 없다는 조사결과였습니다. 사령관들은 관리 책임 정도만 물었습니다.

지금 국방부 재조사 TF가 2차례 발표한 중간조사결과를 보면 당시 발표는 꼬리 자르기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과 국방장관에게 매일 보고했고, 국정원으로부터 활동비를 받는 등 연계가 됐으며, 청와대 지시로 이례적인 증원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첫 국방부 조사에선 왜 이런 사실들이 은폐됐는지, 당시 장관이던 김관진 씨는 답해야 합니다.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군의 헌정 유린 행위를 누가 지시했는지가 명확히 밝혀져야 하며 그걸 지시한 군 수뇌부에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검찰이 이미 출국 금지한 김 전 장관이 검찰 청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 그가 후배 군인들에게 더 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히 입장을 밝히길 바랍니다. 그것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수행했다는 이유로 조직이 만신창이 된 군에 할 수 있는 전직 장관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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