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에볼라'보다 비만이 더 무섭다

외면 받는 만성 병

[취재파일] '에볼라'보다 비만이 더 무섭다
● 에볼라 사태 때 바빴었죠?

"아프리카 대륙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가 벌어졌을 때 여러분들 바빴었죠?"

미국보건기구(Pan American health Organization) 소속의 실비아나 루치아니(Silviana Luciani) 박사는 질문으로 자신의 강연을 시작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2017년 세계과학기자대회 만성병 분야에서였다.

"여러분들(전 세계 의학-과학 분야 기자)은 지난 2014년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을 취재하며,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새로운 국제 감염병의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알렸습니다. 여러분들이 바쁘게 하는 일은 성과를 만들어내더라고요."

세계 각국의 언론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적절한 치료제와 백신이 없고, 전염성이 높아 국제 보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또 아프리카 국가들만의 보건 능력으로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것이 역부족인데도 세계보건기구는 그 위험성을 간과해 국제 공동 대응 시기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비중 있게 보도됐다. 당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인 마가렛 챈이 국제 공동 대응책 마련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건 관련 보도의 이후였다. 한발 늦긴 했지만, 세계보건기구를 축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보건의료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현지에 의료팀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에볼라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모으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볼라 사태는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타고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과 이에 대한, 보건 당국의 대응 방침에 대한 기사가 연일 방송과 신문에서 주요하게 보도됐다. 우리 정부도 예산을 편성해 에볼라 구호대를 아프리카 대륙에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세 차례 파견했고, 국제감염 병에 대한 방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 그런데 말입니다.

"질병에 대해 국제 공동 대응을 이끌어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는 말과 함께 새로운 슬라이드가 강연장 스크린에 올라왔다. 2014-15년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사망한 환자의 통계였다. 파란색 막대 그래프는 그 기간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희생된 사람이 만 명 정도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빨간색 막대 그래프가 7만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동찬 취재 파일 중 (사진1)  (사진 2) 입니다. 편집시 첨부하여 주십시오.
세계보건기구가 집계한 2015년 아프리카 대륙 만성병 사망 환자 통계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만성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에볼라 바이러스로 희생된 사람보다 7배 많다는 것인데, 에볼라 바이러스는 2년을 기준으로 한 것이고, 만성병은 1년 동안의 통계이므로, 단순하게 사망자를 비교한다면 14배 차이이다.

이것이 아프리카 대륙의 사정만은 아니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집계한 전 세계 질병 비율을 보면, 외상(Injuries)은 9%, 감염병(communicable disease)은 21%를 차지하는 정도이지만, 만성병(non-communicable)은 71%로 압도적인 1위였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4천만 명이 만성병으로 사망하고 있었다. 만성병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만성병 사망자가 1990년에 2천 5백만 명이었는데, 2015년에는 4천만 명으로 40%가 늘어난 것이며, 만성병의 특성을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라고 강조했다.
조동찬 취재 파일 중 (사진1)  (사진 2) 입니다. 편집시 첨부하여 주십시오.
만성병 중에서도 비만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진단했다. 성인 비만 인구는 1976년 1억 명에서, 2016년 6억 명으로 6배나 증가했다. 더 큰 문제는 어린이 젊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어린이 및 젊은 층 비만 인구는 1976년 12만 명에 불과했으나 2016년에는 120만 명으로 열 배나 늘었다. 비만 인구의 증가 속도가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타당했다. 그녀는 만성병 사망자가 감염병보다 더 많고, 앞으로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근거를 통해 기자들에게 만성병 보도를 촉구했다.              

● 만성병에도 국제 공동 대응이 필요합니다.

"저개발 국가(developing country)는 자신에게 닥친 보건의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제 공동 대응이 필요합니다. 에볼라의 예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성병은 어떨까요?" 만성병 사망자의 80%는 소득 수준이 중간 이하인 국가(low and middle income countries)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제시했다. 감염병은 후진국병, 만성병은 선진국병이라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라는 것이다. 만성병의 국제 공동 대응 필요성을 설파한 그녀의 논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만성병의 가장 큰 단일 위험 요소는 흡연으로 분석됐다. 전 세계적으로 11억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남성이 여성보다 5배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서 흡연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젊은 층에서 더 가파르게 나타났다. 그리고 술, 소금, 설탕, 트랜스 지방, 탄산음료 등이 만성병의 주요 위험 요소로 조사됐다. 저개발 국가에서 담배, 술, 설탕에 대한 관련 대책을 마련하도록 국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 시간에 서툰 영어 실력으로 용기를 냈다.

"지난 6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 학술 대회에서, 세계보건기구 응급수술 관리팀 연구자는 지난 세계보건기구의 예산 중 80% 정도가 감염병 대책에 쓰인다고 발표했다. 만성병에 대한 세계보건기구의 예산 비중은 적절한 것인가?"

뜻밖에 다른 발표자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감염병은 공포를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신종 감염병이 그렇습니다. 공포는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언론은 사람들의 관심을 좇습니다. 그리고 예산은 언론이 만들어 낸 여론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인류의 건강을 가장 위협하는 질병은 만성병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