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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의 비밀지하공간? 미리 다녀와 봤더니…

[취재파일] 서울의 비밀지하공간? 미리 다녀와 봤더니…
석 달 전 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던 지난 7월의 오후, 경희궁 옛터를 찾았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는데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뒤쪽 주차장 한 켠에 정체 모를 콘크리트 구조물이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구조물 앞쪽은 굳게 닫혀 있는 육중한 철문. 그 위로는 수풀이 우거져 있는 이상한 곳.  일제 말기였던 1944년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만든 방공호로 추정될 뿐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 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태평양 전쟁 말기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가 비상통신시설용으로 만든 대피시설이라는 게 가장 근접한 추측일 거다. 경희궁 방공호 얘기다.
경희궁 방공호 내부
'삐거덕~' 묵직한 소리를 내며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음습하고 서늘한 특유의 콘크리트 향이 엄습해왔다. 컴컴한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화장실로 쓰였을 것 같은 공간이 옆으로 보인다. 1층과 2층으로 만들어 졌는데 전체면적 1,378㎡ 규모로 이뤄진 방공호는 길게 뻗은 통로 옆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10여개의 방들이 줄지어 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이 공간이 한 때 한 대기업의 사무실로 사용된 적이 있는데, 원래는 뻥 뚫려 있던 내부를 콘크리트 벽으로 구분지어 사무공간으로 사용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여하튼 돔형태로 생긴 방공호의 높이는 8.5m나 되는데 외벽의 두께가 무려 3m에 이른다. 폭격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신설동 유령역 (좌) 지하방 (우) 미디어아트
방공호 안으로 들어가면 어디선가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비상사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반복적으로 귓가를 때린다. 식민지 말기 암울했던 당시 상황과 방공호의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조명과 음향을 설치한 것이다. 또 천장에는 3D로 재현된 폭격기 영상과 서치라이트가 연신 눈길을 끈다. 내부 벽면은 옛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방공호 공사에 동원됐다는 고등학생들의 장난기 섞인 낙서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1층 중간 쯤 걷다보면 독특한 방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기억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3만 장의 관련 사진을 미디어아트로 만들어 놓았는데 본인의 모습이 내부벽면에 확대돼 나타나게끔 만들어 놨다. 2층엔 방공호 내부 전체를 조망하거나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신설동 유령역
신설동 유령역
또 다른 비밀지하공간이 있는 곳, 지하철 신설동역 한 쪽엔 보라색 철문이 있다. 평상시엔 항상 잠겨져 있는 문.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라색 철문을 열고 내려가면 지하 3층. 이 곳이 일명 '신설동 유령역'이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지하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너무 고요한 나머지 왠지 이름 모를 생명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나타날것만 같은, 영화 속에서 자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역은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할 당시 5호선의 일부가 될 신설동 역을 동시에 건설했지만, 노선이 변경되면서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1974년에 완공된 뒤 지금까지 43년 동안 폐쇄된 곳으로 현재는 군자차량기지로 입고하는 열차가 통과하는 선로로 활용되고 있다.  
여의도 벙커 (좌) 과거 (우) 현재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비밀스런 지하공간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 '여의도 벙커'가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됐다. 비밀지하공간의 영상이 방송으로 소개된 지 석 달 만이다. 과거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방치돼 있던 지하공간을 이제서야 시민들 품으로 되돌려 줄 수 있게 된거다. 일단 이 두 곳은 주말에 한시적으로 사전 신청을 받아 시간대별로 인원을 제한해 공개한 뒤 내년에 중장기 활용방안을 다시 모색하기로 했다.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채 새로운 시민공간으로 변화한 비밀지하공간을 직접 느껴보시길 권한다. 70년대 박정희 대통령과 주요인사들의 비상 대피처로 알려진 여의도 지하벙커도 전시와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돼 시민에게 첫선을 보였다. 경희궁 방공호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useum.seoul.kr ▶바로가기)에서, '신설동 유령역'은 서울시 홈페이지(http://safe.seoul.go.kr ▶바로가기)에서 신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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